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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1.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의 비밀 II (변승우 목사님의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 중에서)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20.04.02|조회수114 목록 댓글 0


  ■ 1.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의 비밀

           (2019년 2월 5일 구정 새벽 1시경)


  (2)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의 내용은 언제부터인가?


  5장에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가 나오고 6장부터 예수님이 인을 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6장부터 두루마리의 내용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6장은 두루마리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랜트 오즈번이 이에 관해 매우 중요한 이런 지적을 했습니다.


  "두루마리가 일곱 인이 모두 떼어질 때까지는 펼쳐지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일곱 인이 다 떼어지기 전에는 두루마리가 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이한수 교수님도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모든 인이 떼어질 때까지 두루마리 책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봉인된 인들은 두루마리의 내용을 은폐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들을 뗀다는 것은 두루마리의 책의 내용 공개를 위한 준비 단계 구실을 한다."


  WBC 주석도 이 견해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일곱 인을 모두 떼어낼 때까지 이 두루마리의 내용이 실현되기 시작할 수 없다고 한다. 즉 이 두루마리의 내용은 8:1까지 나타나지 않는 사건이며, 8:2로 시작하여 드러난다는 것이다(Swete, 75; Beckwith, 263-64; Bornkamm, ZNW 36[1937] 132-49; Jeremias, TDNT 4:872 n.250; Stroble, "Apokalypse," TRE 3:178-79)."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적이지요! 그러나 너무 당연한 지적입니다.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인이 되었습니다. 두루마리를 다 쓴 후 말아서 일곱 인으로 봉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을 뗄 때마다 조금씩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을 다 떼야 비로소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그랜트 오즈번은 이렇게 썼습니다.


  "'비블리온'(두루마리)은 파피루스 작은 조각들의 끝과 끝을 아교로 접착시켜 긴 조각을 만들어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은 주전 3000년인 이집트 시대에서부터 로마제국 시대까지 약 3천 년 동안 가장 인기 있는 기록 도구였다. ... 이런 문서들, 특별히 봉인된 문서들은 보통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개인적인 계약 내용을 담고 있었다. ... '봉인'은 두루마리 끝부분에 밀랍이나 진흙조각을 발라두는 것으로 이루어졌고, 종종 문서를 공식문서로 만들기 위하여 추가로 도장이 새겨진 반지로 봉인을 하기도 했다."


  또한, 크레이그 키너도 이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현재의 본문에서 두루마리(겔2:10에서 심판을 포함하고 있는 두루마리를 상기시킨다. 계10:8에 대한 설명을 보라)는 말할 내용이 많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두루마리의 사용자는 두루마리를 말아서 실로 감아 매었으며, 법률 문서는 누가 손대지 못하도록 여러 개의 실로 묶기도 하였다.


  법률 문서는 통상적으로 대개 여섯 명의 증인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봉인하였다. 그러한 문서들은 대개 작업이 끝난 두루마리를 묶은 실 위에 뜨거운 밀랍을 발라 단단히 봉인하였다."


  그러므로 인을 다 떼야 두루마리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놓쳐온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알레로, 바이스와 엘리오트는 두루마리는 일곱 부분으로 인봉되어 개봉할 때마다 각 부분이 나타났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리씨(Rissi, Babylon, 14)는 일곱 인을 갖고 있는 두루마리가 각각 독립적인 인을 갖고 있는 일곱 개의 분리된 책장들을 함께 두루마리로 말은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그는 고대의 유사한 예를 인용하지 못했습니다. 추측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곱 인을 다 떼기 전에는 두루마리의 내용을 전혀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세 가지로 정리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인을 다 떼야 내용을 볼 수 있다는 증거들


  제가 이 견해에 동의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① 인 사이의 간격이 불규칙하다.


  두루마리를 인을 떼면서 부분을 볼 수 있느냐? 아니면 인을 다 떼야 내용을 볼 수 있느냐? 는 고고학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시대 상황을 다 확인할 수도 없고, 어떤 형태의 두루마리인지 성경에 딱 부러지게 나온 것도 아닙니다. 다분히 추정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답을 찾기 위해 온종일 두루마리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저와 견해가 같은 학자들도 있지만, 다른 학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후자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후자를 지지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두루마리를 단계적으로 일곱 번 인봉한 것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 경우 인 사이의 간격이 일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섯째 인까지 계시록 6장에 다 나옵니다. 그 후 8장에서 일곱째 인이 나옵니다. 8장부터 22장까지 모두 일곱째 인의 내용이 되어버립니다. 누가 봐도 너무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한이 본 두루마리가 인을 다 떼야 내용을 볼 수 있는 형태의 두루마리라고 생각합니다.


  ② 계시록 자체의 내용에 의해 증명된다.


  우리는 두루마리의 내용을 다니엘서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두루마리의 내용은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예수님의 재림 때 일어날 일들입니다. 그런데 8장부터 22장까지 정확히 그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서로 일치합니다. 이것은 일곱 인을 다 떼야 두루마리의 내용을 볼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③ 일곱 인봉은 비밀 즉 완전한 비밀을 뜻한다. 


  봉인은 비밀을 위한 조치입니다. 따라서 일곱 봉인은 완전한 비밀을 뜻합니다. 곧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지만 계시록 6장은 말세의 징조를 다룬 것입니다. 그런데 말세의 징조는 마태복음 24장에 더 길고 자세하게 쓰여 있습니다. 계시록 6장이 아니어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말세의 징조를 두루마리의 인을 떼면서 비밀이라며 보여주겠습니까? 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대환난과 재림은 마태복음 24장이나 다른 곳에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신구약 어디에도 충분한 설명이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계시록에 가장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충분하다는 면에서 계시록이 독보적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두루마리의 인을 뗌으로써 진짜로 보여주시고자 한 하나님의 비밀임이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두루마리의 내용은 마지막 인이 떼어진 8장부터이고, 인을 다 떼야 내용을 볼 수 있는 두루마리라고 보아야 합니다. 


  2) 제3의 견해 


  저는 두루마리의 인을 뗄 때마다 조금씩 내용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인을 다 떼야 비로소 내용을 볼 수 있다는 두 견해 중 후자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3의 견해가 있습니다. 계시록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보쿰과 이필찬 교수님의 견해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의 비밀을 깨달은 후, 저는 계시록 주석들과 강해책들 중 해당 부분들을 모두 찾아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책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필찬 교수님의 『내가 속히 오리라』라는 책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책에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1b에서 그 책이 '일곱 인으로 봉하였다'라는 것은 단8:17, 19, 26과 12:4, 9 그리고 사29:11의 말씀을 연상하게 한다(Beale, 1999, 345; Osborne, 250).


  '그가 나의 선 곳으로 나아왔는데 그 나아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8:17)


  '가로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일임이니라.'(8:19)


  '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을 간수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니라.'(8:26)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12:4)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12:9) ... 


  단8:17, 19, 26은 다니엘 8장의 전반부에서 주어진 환상과 그 해석을 말하고 12:4, 9은 10-12장에서 주어진 환상과 그 해석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이러한 일련의 환상들은 주로 이 세상에 출몰하는 크고 작은 나라들을 절대적으로 능가하고 압도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종말적 도래가 그 중요한 주제가 된다. 그렇다면 위에서 주어진 구절들은 전체적으로 다니엘서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종말적 도래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 


  이상에서 우리는 저자 요한이 '책'의 이미지를 어떻게 사용하려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다니엘서의 기록들과의 관련성에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그리스도를 통해 비로소 그 종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마침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을 능가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같은 구속 계획들이 계시되고 이루어지게 되어 이제 만천하에 밝히 드러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 


  특별히 다니엘 12장의 두 본문에서 사용된 70인경의 '간수하라'와 '봉함하라'는 두 개의 동사 중에서 사용된 '봉함하라'는 1b의 요한계시록의 본문에서 채택되어 요한계시록과의 병행적 관계를 더욱 강화시켜 준다. 이러한 관계는 다니엘 8장과 12장의 본문을 요한계시록 5장의 '인으로 봉함된 책' 이미지에 대한 구약적 배경으로 간주할 수 있는 더욱 확고한 근거를 제시해 준다. 그러므로 책의 이미지는 다니엘 8장, 12장, 겔2:9-3:3의 말씀과 함께 심판을 포함하는 하나님 나라의 종말적 도래와 같은 하나님의 계획 성취의 메시지를 형성한다." 


  어떻습니까? 제가 깨달은 것과 굉장히 비슷하지요! 다니엘 12장의 봉함과 계시록 5장에서 인을 떼는 것의 관계를 지적한 것이나, 일곱 인을 다 떼기 전인 계시록 6장에서는 두루마리의 내용을 볼 수 없다는 것까지도 저와 견해가 일치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에 대해서만큼은 견해가 일치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더 읽어보고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들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저와 다릅니다. 보쿰의 『요한계시록 신학』이라는 책에 그 차이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 책은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다(5:1). 그리고 6장 1절에서 8장 1절에 걸쳐 어린 양이 그 인을 차례로 떼게 된다. 그러나 그 인들을 뗄 때에 발생하게 되는 사건들은 그 책의 내용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의 해석자들은 너무도 자주 이 점을 간과해 왔다. 단지 인을 떼었다고 해서 그 안의 내용이 자동적으로 드러나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이상한 책이 될 것이다. 일곱 인을 뗄 때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단지 인을 뗌과 동시에 수반되어 나타나는 사건일 뿐이다. 인들을 차례로 떼는 것은 요한으로 하여금 그 책 내용의 계시를 예비하는 일련의 환상들을 전개하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문화적 장치인 것이다. 인을 떼는 것에 수반되는 일곱 심판들이나 혹은 일곱 번째 마지막 인(참조, 8:1-6)을 뗌과 동시에 시작되는 일곱 나팔의 울려 퍼짐들은 모두 그 책의 내용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 책은 이제 인이 떼어진 상태로 10장 2절, 8-10절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10장 2, 9-10절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비블라리디온은 크기에 있어서 매우 작은 책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시 헬라어의 많은 소형의 의미들과 마찬가지로 비블리온과 의미의 차이를 둘 필요는 없다)를 잘못 오해하여 10장에 등장하는 책이 5장의 책과는 다른 것이라고 가정해 왔다. 그러나 요한은 그 책들이 동일한 것임을 주의 깊게 암시한다."


  이필찬 교수님의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에도 그 차이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책(5장의 두루마리-저자 주)의 내용은 무엇인가? 보쿰은 그 책을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한 그의 비밀스런 목적'으로 정의한다. 달리 말해서 그 책은 4장에서부터 선포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도래하게 될 것인지를 계시해 줄 것이다. 그의 이러한 논증은 5장에서 어린 양이 들고 있는 책과 겔 2-3장, 단 8:26 그리고 단 12:5-7을 배경으로 하는 10장에서의 작은 책과 동일시하여서 주어진다. 이 경우에 그 책의 마지막 인은 8:1에서 떼어지고, 그 책은 10:2에서 열린다." 


  이 안에 제 견해와 다른 두 가지 차이점이 나타나 있습니다. 


  ① 일곱 인을 떼기 전뿐 아니라 후에도 인과 내용이 무관하다는 주장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두루마리의 인을 다 떼었는데도 내용이 아니라는 것은 이상한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을 왜 뗍니까? 무엇보다 이 주장은 다은 구절과 불일치합니다. 


  요한계시록 5:2-5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이 구절에서 거듭 '인을 떼거나', '펴거나 보는 것'이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을 다 뗀 후에는 두루마리의 내용이라고 간주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일곱 인과 계시록의 내용이 무관하다고 볼 경우, 6째 인과 7째 인 사이에 7장의 삽입이 부자연스럽습니다. 일곱째 인을 뗀 후에 새로운 내용 즉 두루마리의 내용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면 왜 여기에 이런 서론적인 삽입이 필요할까요? 또, 6가지 인과  7째 인 이후의 내용에서 시간순이라는 질서가 깨집니다. 뒤죽박죽이 되어 버립니다.


  무엇보다, 앞서 지적했듯이 두루마리에는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예수님의 재림 때 일어날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8장부터 22장까지 정확히 그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루마리의 내용과 8장 이후의 내용이 일치합니다. 그런데도 인을 뗀 후에도 두루마리와 계시록의 내용이 무관하다는 것은 터무니없고 엉뚱한 발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②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와 작은 책이 같은 책이라는 주장 


  보쿰은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를 10장에 나오는 작은 책과 동일시합니다. 그러면서 두루마리가 10장 2절부터 열린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더 이상스러운 주장입니다. 그러나 저는 속단하지 않고 정말 두루마리가 작은 책과 같은 책인지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는 안팎으로 썼고 내용이 많음을 뜻합니다. 윌리엄 바클레이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파피루스는 값비싼 물건이다. 그 품질은 차이가 많으며 가격은 품질에 따라 한 장에 4페니에서 1실링 정도다. 그래서 쓸 것이 많을 때는 앞뒤에 쓴다. 뒷면, 즉 베르소에 글을 쓴 것을 오피스토그라프(opisthograph), 즉 뒤에 쓴 종이라고 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파피루스를 그렇게 쓰면 그것은 그가 무엇인가 무척 많은 것을 쓸 것이 있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손에 있는 두루마리는 양면에 쓰였다. 그것은 그 두루마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기록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는 쓸 것이 많아 렉토와 베르소가 다 같이 꽉 찼다. 그 두루마리에 적힌 이야기는 길고 꽉 차 있었다." 


  반면에, "작은 책"이란 표현은 상대적으로 내용이 적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같은 책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보쿰과 이필찬 교수는 '두루마리'와 '책'의 원어를 들이대며 같은 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랜트 오즈번의 글이 이에 대한 좋은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10장 2절에서 이 힘 센 천사는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이것이 5장의 큰 두루마리와 동일한 두루마리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큰 논란이 있다. 많은 학자들(예, R. 찰스, 로마이어, 로제, 코트, 롤로프, 마운스)이 다른 두루마리라고 주장한다. 5장 1절에서 두루마리에 해당하는 말은 '비블리온'(두루마리)이지만 여기서는 '비블라리디온'(작은 두루마리)이다. ...


  그러나 이 견해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고, 그래서 다른 학자들(비슬리-머리, 스위트, 보링, 월)은 5장과 10장의 두루마리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 요한은 이 '작은 두루마리'를 10장 8절에서'비블리온'으로 부른다. 따라서 이 두 용어(비블라리디온과 비블리온)는 동의어일 것이다. 보쿰(Bauckham)은 요한계시록에서는 작은 두루마리라고 해서 하찮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비블라리디온'은 초대교회에서 예언과 관련된 기독교 계시를 전하기 위하여 사용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비블라리디온'을 선택한 것은 확실히 의도적이었을 것이고, 따라서 어느 정도 축소된 의미를 전달한다. 두 두루마리는 이처럼 악한 현재 세상의 종결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이 사건들 속에서의 교회의 위치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는 전체 두루마리의 '작은' 한 부분이다."


  답이 되셨습니까! 맞습니다. 작은 책은 두루마리의 내용 중 핵심적인 부분을 계시한 것입니다. 작은 책과 두루마리의 내용은 상당부분 일치합니다. 그러나 작은 책과 두루마리가 동일한 책은 아닙니다.


  3) 두루마리를 통해 알게 된 계시록 구조의 중요성!


  제가 왜 두루마리를 설명하는 데 이렇게 공을 들이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두루마리로 파악한 계시록의 구조가 심히 보배롭기 때문입니다. 그 구조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을 읽다 보면 끝없는 의문들이 생깁니다. "흰 말 탄 자는 누구인가?", "144,000명은 누구인가?", "두 증인은 누구인가?", "광야로 피신한 여자는 누구인가?" 이 외에도 '이게 누구지? 이건 뭐지?'라는 의문들이 쉴 새 없이 일어납니다.


  그때 대부분 그 장이나 단락을 가지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성경 본문을 읽으며 의문들과 씨름합니다. "이 숫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게 뭘까?" 하며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고 발휘합니다. 또, 해당 본문을 비슷한 다른 구절들과 비교하고 대조해 봅니다. 그리고 상상합니다. 그리고, 여러 계시를 주석과 강해집들을 사서 읽습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상상과 학자들의 견해를 믹스해서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오면 '이게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설교하고, 강해집도 내고, 주석도 씁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맞는 해석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그런 식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통일성이 없고, 중구난방이고, 천차만별입니다. 해석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계시록은 절대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저는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로 계시록의 구조를 파악한 후, 가짜 해석들이 걸러지고 진째 해석이 확실히 드러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저처럼 계시록의 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엉터리 해석들이 난무하게 된 것은 계시록의 구조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구조를 알고 세부적인 것을 해석해야 하는데, 무턱대고 해석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계시록의 세부적인 면까지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계시록 해석의 아우트라인이 형성됩니다. 각 장에 대해 어떤 해석이 불가능하고 어떤 해석이 가능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이 해석해볼 만한 책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입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계시록 5장에 갑자기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가 나타난 것은, 다니엘이 봉함한 것을 계시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두루마리의 내용은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예수님의 재림 때 일어날 일들입니다. 즉 전 삼년 반을 포함한 7년 대환난과 천년 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리고 두루마리의 내용이 펼쳐지는 시점은, 흔히들 착각하는 것처럼 계시록 6장(혹은 보쿰이 주장하는 것처럼 10장이 아니라)이 아니라 8장입니다. 왜냐하면 인을 다 떼야 두루마리의 내용을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8:1-2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간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그러므로 8장 2절부터 두루마리의 내용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1절에 보면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간쯤 고요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는 폭풍전야와 같은 고요입니다. 왜 폭풍전야일까요? 그 이유는 7장에서 붙잡아 두었던 "땅의 사방의 바람"이 곧 놓여날 것이고 불어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여기에 "바람"은 환난을 뜻하고(인 맞은 자가 그 후 보호받는 것을 볼 때 9:4), "땅의 사방의 바람"은 전 세계에 임할 7년 대환난을 의미합니다. 바꾸어 말해서 다니엘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를 뜻합니다.


  다니엘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적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박해하지 않습니다. 7년 언약을 맺고 첫 삼년 반은 조용히 지나갑니다. 그러나 그 기간에도 재앙이 쏟아집니다. 이것은 대환난을 일으킬 적그리스도를 위한 무대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특히 전 삼년 반에 임할 둘째 화가 인류의 3분의 1이 죽는 세계대전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계9:12-18). 계시록 8-9장은 이 기간에 임할 재앙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즉 전 삼년 반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기간이 전 삼년 반이라는 것을 저는 거듭 입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 70이레를 통해서 마지막 한 이레가 계시록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 때 두 때 반 때와 적그리스도와 그가 행하는 박해는 10장의 작은 책을 받아먹은 후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큰 그림으로는' 그 부분이 후 삼년 반인 대환난에 대한 기록이고, 그 전의 8장과 9장은 전 삼년 반에 대한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는 대환난과 재림에 대한 계시, 즉 이 둘에 대한 다니엘서보다 더 자세한 계시입니다. 그래서 대환난뿐 아니라 전 삼년 반부터 다릅니다. 이것은 재림뿐 아니라 천년왕국과 신천신지까지 다룬 것과 그 이치가 같습니다.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두루마리가 열린 직후인 8-9장이 7년 대환난의 전 삼년 반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세에 즉 장차 될 일 중에서 전 삼년 반 전에 일어날 일이 뭐가 있을까요? 말세의 징조밖에 없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전 6장이 '말세의 징조장'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만, 6장에서는 7년 대환난 전에 일어날 말세의 징조뿐 아니라 재림 직전에 일어날 말세의 징조까지 기술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8장과 시간적으로 안 맞습니다. 두루마리가 8장 1절 이후에 열리기 때문입니다. 즉 6장과 8장 모두 종말에 대한 메시지지만, 서로 별개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두루마리는 대환난과 재림이 초점입니다. 그런데 6장의 여섯 인은 대환난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재림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뭘 다루느냐? 말세의 징조를 여섯 가지로 다뤘습니다. 반면에 8장부터는 대환난과 재림에 초점을 맞춘 두루마리의 내용이 공개됩니다. 서로 독립적인 내용입니다. 말세에 일어날 일이라는 면에서는 하나지만, 하나는 인을 떼면서 말세의 징조를 전반적으로 보여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환난과 재림에 대한 두루마리의 내용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두루마리의 내용은 시간순이지만, 6장은 두루마리의 내용이 아니라서 후미에 시간순에 맞지 않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아무튼, 6장은 두루마리가 열리기 전 계시록이 종말에 대한 계시이므로, 그에 걸맞게 인을 뗄 때마다 말세의 징조를 전체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7장은 70이레의 마지막 이레 즉 7년 대환난이 곧 시작된다는 것과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삽입장입니다. 그 후 8장 1절에서 일곱째 인을 떼고 두루마리의 내용이 공개됩니다. 그러므로 7년 대환난이 언제 시작되느냐? 8장 2절부터입니다. 따라서 진실로 8장과 9장은 전 삼년 반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 다음, 10장에 작은 책이 나옵니다. 이것은 후 삼년 반 즉 "한 때 두 때 반 때"라 불리는 대환난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런데 왜 10장에서 갑자기 작은 책을 갖다 먹으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후 삼년 반에 대한 계시는 전 삼년 반에 대한 계시와 비중이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예수님과 바울이 종말에 대해 예언할 때, 하나같이 대환난에 큰 비중을 두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다니엘 12장에서 다니엘이 주로 다룬 것은 후 삼년 반이었고, 마태복음 24장도 전 삼년 반은 언급도 하지 않고 후 삼년 반에 집중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바울도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후 삼년 반에 대해 주로 예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계시록도 대환난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왜냐하면 대환난이 말세의 징조 중의 징조이고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잘 예언할 수 있도록 작은 책을 가져다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해석이 옳다는 것은, 11장부터 전에는 안 나오던 "마흔두 달", "천이백육십 일", "한 때 두 때 반 때"가 몰아서 나온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대환난이지요! 또, 그 안에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 짐승의 표인 "666"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제국인 "큰 음녀"와 "큰 성 바벨론"이 나오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책은 대환난과 재림에 대한 책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후 계시록 19장의 재림 직전까지가 대환난에 대한 예언입니다. 19장 11절 이후는 재림입니다. 그리고 20장은 천년왕국과 흰 보좌 심판, 21-22장은 새 예루살렘성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를 통해 밝히 드러나는 계시록의 구조입니다. 우리가 이 구조를 시금석으로 삼으면, 참 해석과 거짓 해석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각 장과 단락에 대한 여러 해석들 중 어떤 해석이 그 부분에 맞는 해석이고 어떤 해석이 그 부분과 맞지 않는 해석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함께 실제로 그 작업을 해볼까요? 먼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린 계시록의 이런 구조는, 4장 1절을 휴거로 보거나 24장로를 휴거한 성도들의 대표로 보는 것에 제동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 구조에 의하면 아직 그 시기가 도래하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한 우리의 해석이 맞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또, 이 구조는 6장 전체를 대환난에 대한 예언으로 보거나, 같은 장의 흰 말 탄 자를 적그리스도로 해석하는 것에 제동을 겁니다. 역시 이 구조에 의하면 아직 그 시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이 구조는 8-9장을 후 삼년 반으로 해석하는 것에 제동을 겁니다. 왜냐하면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이므로 당연히 전 삼년 반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구조는 삽사만 사천을 교회로 해석하는 것에도 제동을 겁니다. 7장과 14장에 의하면 그들은 대환난, 좀 더 넓게 보면 70이레의 마지막 이레인 7년 대환난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 기간은 특히 유대인들을 위한 기간입니다(단7:24). 따라서 교회가 아니라 유대인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또, 이 구조는 7장의 셀 수 없는 무리 역시 '그때' 휴거한 무리로 해석하는 것에 제동을 겁니다. 왜냐하면 통과설이 옳고 아직 예수님이 재림하실 시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이 구조는 "한 때 두 때 반 때", "마흔두 달", "천이백육십 일"을 교회시대로 해석하는 것에도 제동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대환난 기간이지 전체적인 신약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이 구조는 천이백육십 일 동안 예언할 두 증인을 교회로 해석하는 것에도 제동을 겁니다. 그들이 활동하는 장소가 예루살렘이고, 그들이 활동하는 기간이 유대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천년왕국을 후천년설이나 무천년설로 해석하는 것에도 제동을 겁니다. 왜냐하면 문맥과 이 구조에 따르면 천년왕국이 대환난 전이 아니라 대환난 후 즉 재림 후에 일어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를 통해 파악한 계시록의 구조가 정말로 요한계시록 해석들을 분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어주지요. 이것을 잘 활용하면 계시록 해석과 분별에 신기원이 열립니다. 그래서 제가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를 통해 계시록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두루마리로 파악한 계시록 구조를 잣대와 시금석으로 삼고서 계시록을 읽으십시오. 그러면 계시록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제가 계시록의 구조를 파악할 때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 하나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전에 다른 것들을 통해서 계시록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고, 일곱 인봉한 두루마리를 통해 재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두루마리에 대한 해석이 흔들려도 제가 알고 있는 계시록의 구조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억하고 신뢰감을 가지고 계속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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