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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9. 예수님의 재림, 천년왕국, 흰 보좌 심판! II (변승우 목사님의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 중에서)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20.05.23|조회수165 목록 댓글 0


  ■ 9. 예수님의 재림, 천년왕국, 흰 보좌 심판!

        (2월 9일 토요일 밤과 2월 11-12일 재림과 천년왕국에 대한 궁금증들이 풀림)


  2) 하나님은 왜 재림 전에 전무후무한 대환난을 허용하시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왜 인류의 마지막이 우리가 기대하는 대부흥이나 대추수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대환난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주권을 갖고 계시는데, 왜 적그리스도가 세력을 잡게 허용하시고 무시무시한 대환난이 일어나게 하시는지, 왜 인류의 마지막을 이런 식으로 끝내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계시록 19장에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7-9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대환난이 끝날 무렵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가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비로소 준비가 되었다는 뉘앙스입니다. 즉 대환난을 통해 준비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사람이 환난을 통해 준비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매우 성경적인 진리입니다.


  로마서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야고보서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1:6-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들은 대환난을 통해 진짜로 끝이 다다랐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알기 때문에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때 마지막 때라는 것을 깨닫고 필사적으로 회개하고, 필사적으로 기도하고, 필사적으로 순종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린양의 신부로 준비가 될 것입니다. 동일한 내용이 다니엘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12:7-10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가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그러므로 대환난은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는 최고의 박해시기일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대환난은 하나님의 진노인 동시에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영원을 좌우하는 마지막 회개의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동원 목사님도 『이렇게 종말을 대비하라』라는 책에서 이와 유사한 말을 했습니다.


  "환난의 목적


  1,260일의 환난을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왜 창세 이후에 없었던 대환난이 일어나야 할까요?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10절)


  환난의 기간에는 두 부류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즉, 환난을 당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요 심판인 것을 깨닫고 환난을 연단으로 받아들이며 겸손히 자기를 돌아보아 스스로의 삶을 새롭게 하고 주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과 오히려 하나님께 반항하고 삶을 포기하여 될 대로 되라 하면서 악을 여전히 행하는 사람이 있게 될 것입니다. ... 이 메시지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과도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보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계22:10) ... 다행스러운 것은 마지막 환난을 겪으며 돌이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길을 바꾸어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되며 희게 될 것'(단12:10)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연단'과 '정결'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마침내 소망을 이룹니다(롬5:4). 대환난을 단순한 환난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이 환난 속에서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채찍으로 겸손하게 수용하면서 자기의 삶을 바꿀 줄 아는 사람들에게 그 기간은 연단과 정결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풀무불 속에서 순수해지고 제련되어지는 순금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환난 속에서 더욱 새로워지고 거룩해집니다."


  이것이 대환난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예언한 대로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처럼 됩니다. 동성애가 관영하고, 모든 윤리의 기준이 무너지고, 노아의 때처럼 사람이 육체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세상만 이렇게 악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바울이 예언한 대로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기 전 배도하게 됩니다. 이미 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WCC와 NCCK 소속 교단들과 교회들을 보십시오.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고,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정하고, 동성애를 허용하고, 공산주의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분명 배도지요. 그런데도 순복음, 통합, 침례교의 가장 큰 교회 목사들이 부산 WCC 총회 유치에 앞장섰습니다. 배도의 물결입니다.


  연합단체들과 교단들과 기독교 언론은 또 얼마나 타락했는지요. 교만과 탐심, 거짓과 이기심으로 가득해서, 형제사랑은커녕 기본적인 공의조차 기대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개교회들도 은사중지론의 영향으로 성령의 은사와 기적을 터부시하고 지식적이 되어버려 선교와 전도의 동력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곳곳에서 구원파적인 것짓 복음이 정통 행세를 하고, 그 위에 설상가상으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거짓 교리가 다수의 교회와 목사와 신자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많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은 심히 적습니다. 교회 안에서 천국 가는 비율이 20% 정도밖에 안 된다는 밥 존스와 하워드 피트만 목사님의 충격적인 사후체험 간증에 격하게 공감이 가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의 현주소입니다.


  이런 상태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정말 큰일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지옥에 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이 부득불 대환난이라는 카드를 꺼내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매서운 매를 듦으로써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사생결단하고 회개하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음녀와 같은 교회들을 어린양의 신부로 변화시키길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환난이 필요할까요? 안 필요할까요? 필요하지요. 아무리 대환난이 무서워도 지옥에 떨어지는 것만 하겠습니까? 대환난을 겪고 회개하고 정결케 되어 지옥을 면하는 것이 백배는 더 낫습니다. 그러므로 대환난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대환난을 허용하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3)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가? 백마를 타고 오시는가?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예수님이 재림 때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말씀합니다.


  다니엘 7: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마태복음 24:30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태복음 26:64 "예수께서 이르시되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가복음 13:26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마가복음 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누가복음 21:27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저는 전에 이런 구절을 읽을 때마다 '구름은 단지 수증기인데 손오공도 아니고 어떻게 구름을 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육체를 갖고 계실 때도 바다 위를 걸으셨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도 한동안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마태복음 14:25-29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니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그런데 예수님이 왜 구름을 타지 못하시겠습니까? 더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 같은 몸이 아니라 영화로운 몸을 갖고 계십니다. 영화로운 몸은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보여주신 것처럼 하늘을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시편 104:3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이사야 19: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요한계시록 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요한계시록 14:14-15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상전으로부터 나와 구를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우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을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에수님은 실제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 여러 곳에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정작 재림을 묘사한 계시록 19장에서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11-14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서로 충돌하지요! 그래서 환난 전 휴거설을 믿는 학자들이 재림이 구름 타고 오시는 공중재림과 백마 타고 오시는 지상재림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구절을 환난 전 휴거설의 결정적인 증거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통과설을 믿는 그 누구도 이런 현저한 차이를 조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우리는 이미 통과설이 진리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요? 과연 어떻게 이 둘을 조화시킬 수가 있을까요? 보통 골치 아프고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전에 제가 수양관에 있을 때 이에 대해 함께한 목사님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서울대를 졸업한 이주섭 목사님이 냉큼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구름을 닮은 백마를 탄 것이 아닐까요!"


  한편, 과거에 저는 휴거의 시기가 환난 전, 환난 중, 환난 후 중 어느 때냐를 다루면서 나중에 이 의문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계시록을 해석하면서 저는 솔직히 이 부분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한동안은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 은혜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는 계시록이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라 수많은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묘사한 것, 사탄을 용으로 묘사한 것, 적그리스도를 짐승으로 묘사한 것, 바벨론을 음녀로 묘사한 것을 위시해서 계시록에는 수많은 상징들이 나옵니다. 이런 점에 착안해서 저는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오신다는 것도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라 상징적인 표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즉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사실적인 표현이지만 백마를 타고 오신다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약 저의 추측이 옳다면 둘 사이에 모순은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로 백마를 타고 오신다는 것이 상징일까요? 예! 정확히 상징입니다. 저는 그 증거가 되는 단서를 계시록 1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발견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10-16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그 다음에 보면 예수님이 요한에게 손을 얹으십니다. 


  요한계시록 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그래서 이 환상을 실제 모습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열린 환상'에서는 모든 것이 실제처럼 보이고 환상 속에 나오는 자들도 실제처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교훈을 주기 위해 예수님이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구절은 금 촛대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일곱 촛대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상징입니다. 또 예수님 오른손에 일곱 별도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의 예수님의 모습도 실제 모습이 아니라 상징적인 모습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랜트 오즈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위트(Sweet 1979: 70)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 역동적인 장면은 문자적인 묘사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유적인 이미지로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 이미지들을 전부 모아 예수님의 모습을 만들 이유는 없다. 흰 머리카락, 불꽃 같은 눈, 주석 같은 발,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 날선 검이 나오는 입. 이 이미지들의 집합은 예수님의 용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여준다. ... 이것은 사진 예술이 아니다. 요한의 목표는 기억과 연상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게 하는 데 있다." 


  이필찬 교수님도 이것을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13-16절까지의 내용을 예수님께서 문자 그대로 존재하는 분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구약적 내용을 사용하는 저자의 의도를 깊이 인식하지 못한 해석임이 자명하다." 


  맞습니다. 이것은 상징입니다. 


  그다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계시록 1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계시록 19장에 나오는 예수님 사이의 일치점입니다. 


  요한계시록 1:14, 16 "그의 눈은 불꽃같고 ...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요한계시록 19:12, 15 "그 눈은 불꽃같고 ...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서로 정확하게 일치하지요! 그러므로 계시록 1장과 마찬가지로 계시록 19장의 예수님의 모습도 실제가 아니라 상징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 뒤 저는 실제로 제가 추론한 대로 많은 학자와 목사들이 계시록 19장의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으로 이해함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저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WBC 요한계시록 주석 하권에서 데이비드 아우내는 계시록 19장 11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백마 탄 자가 천사들로 구성된 기병대를 이끌고 출현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재림(파루시아)을 극화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아마도 이 견해가 옳을 것이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에서 파루시아를 포함하는 종말론적인 시나리오 속에는 예수님께서 백마를 타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파루시아에 관한 이 독특한 인식은 다른 곳에서 가져와 각색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또, 로버트 마운스도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의 복된 장면 뒤에 돌연히 백마를 타고 전쟁을 준비하시는 전사 메시아의 환상이 등장한다. ... 요한계시록의 어디에도 이처럼 사탄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어린 양이 마침내 승리한다는 것을  강하게 확신시켜 주는 상징과 언어로 그리스도의 승리를 묘사한 본문은 없다." 


  상징이라는 말이지요. 심지어는 환난 전 휴거설을 주장한 존 왈부드까지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여기서의 백마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사악한 세력들을 이기신 데 대한 상징이다." 


  이 외에도 이상근 박사님과 이동원 목사님도 이 장면을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 요즘 누가 말을 타고 전쟁합니까? 너무 구시대적인 표현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것은 실제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언어로 표현한 상징입니다. 따라서 이 장면은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과 모순이 아닙니다. 당연히 이 구절은 환난 전 휴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환난 전 휴거설의 결정적인 증거도 아닙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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