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예수님의 재림, 천년왕국, 흰 보좌 심판! V (변승우 목사님의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 중에서)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20.06.04조회수720 목록 댓글 0■ 9. 예수님의 재림, 천년왕국, 흰 보좌 심판!
(2월 9일 토요일 밤과 2월 11-12일 재림과 천년왕국에 대한 궁금증들이 풀림)
2) 통과설이 옳다면 천년왕국의 백성은 누구인가?
전에 휴거가 환난 전, 환난 중, 환난 후 중 어느 때 일어나는가를 다룰 때, 환난 전 휴거설 신봉자들이 제기하는 "통과설이 맞다면 누가 천년왕국의 백성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후에 답해드리겠다고 약속한 일이 있습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휴거: 환난 전, 환난 중, 환난 후 휴거설의 근거』라는 책에서 환난 전 휴거론자인 폴 파인버그는 이런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휴거와 재림 사이에 상당한 시간 간격이 있어야 할 이유는, 그래야 천년왕국이 개시되었을 때 영화로운 몸으로 변형되지 않은 채 들어가는 성도들이 생길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좀 더 상세히 다뤄보도록 하자. 우선 시작하기에 앞서 영화로운 몸을 입지 못한 신자들이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비록 천년왕국이 개시되면 악이 현저히 감소될 것이로되 여전히 죄는 존재한다(겔43:13-27은 희생 제사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으며, 요한계시록 20:7-10은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가 반역으로 마감하게 되리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질병과 사망도 여전히 존재한다(사65:20). 또한 집을 짓기도 해야 하며 포도원을 경작해야 한다(사65:21-22). 이 모든 것은 영화로운 몸을 이미 입은 성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왜 이 점이 환난 후 휴거론자들에게는 문제가 되는가? 그들의 입자에서는 휴거와 재림이 단일한 사건의 여러 양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살아있는 의인은 모두 재림 시에 휴거되며 또한 영화로운 몸으로 변형될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5:51, 52). 또한 재림 시에 부활하여 그들과 함께 주님이 다스리는 왕국에 들어갈 옛 성도들도 영화로운 몸으로 변형되게끔 되어 있다. 이와 동시에 악인들은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심판에 던져지게 된다(마25:31-46). 이런 식으로 모든 의인이 영화로운 몸을 입고 모든 악인은 아예 천년왕국에서 배제된다면, 천년왕국 안의 영화로운 몸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서 온 존재들이란 말인가?"
같은 책에서 그는 또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여하튼 환난 전 휴거론이나 환난 중 휴거론은 환난 후 휴거론이 이 문제에 있어 아무런 설명도 제시하지 못한다고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난 후 휴거론대로라면 그 누구도 영화로운 몸을 입지 못한 채 천년왕국에 들어갈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의인은 모두 휴거된다. 악인은 거듭되는 심판 속에 모두 멸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어떤 구절이 천년왕국 내에 악인의 존재를 말한다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도대체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을까?"
또한, 같은 책에서 환난 중 휴거론자인 글리슨 아처도 같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사야서의 여러 구절이 천년왕국의 백성들 가운데는 혈과 육을 그대로 지닌 성도들이 있어 평화와 번영 그리고 장수와 행복을 누리리라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도들이 아마겟돈 전쟁 전에 휴거되어 부활의 몸을 입는다면(살전4: 고전15:), 이 변형되지 않은 그리스도 지상왕국의 주민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단 말인가?"
같은 책에서 그는 또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분명히 해둘 것은 이 천년왕국 시대에는 부활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게 될 많은 성도들이 있게 되리라는 점이다(계20:4). 그렇지만 백세 정도의 장수를 누리는 걸로 족한 천년왕국의 주민들은 또 누구인가? 환난 후 휴거론자의 주장대로라면 환난의 마지막 때에 가서 모든 신자들이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진다. 그렇다면 이들 모두가 멸망받지 않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된다는 말이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 ... '(고전15:52-54). 그리고 그렇게 되면 휴거 후에는 새로운 신자가 생길 시간 여유도 아예 차단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천년왕국 동안 지상에 거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시간이 할당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휴거와 그리스도의 지상재림 사이에 상당한 정도의 시간 간격을 두는 것이 적절하다. 만일 아마겟돈의 최후 전쟁이 있기 전에 7년 혹은 삼년 반의 시간 여유가 있다면, 진정으로 거듭난 모든 신자들의 급작스러운 증발이 어떤 영향이나 결과를 낳을 시간 여유를 갖게 되는 셈이다. 아마 휴거된 신자들의 친구나 친척들, 직장 동료들은 이전에 그들이 증언한 것이 사실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진리를 확신하고 많은 수의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짐승과 그 추종 세력의 방해가 있겠지만 말이다. 이 휴거 이후에 더해지는 신자들이 천년왕국의 백성으로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환난 후 휴거론에는 아예 이러한 가능성이 닫혀있다."
이처럼 환난 전과 환난 중 휴거설을 믿는 학자들은 환난 전이나 환난 중에 휴거가 일어나면 휴거한 사람들과 대환난 때 순교한 사람들이 천년왕국 때 왕 노릇 하고, 대환난을 통과하며 믿음을 지키다가 지상재림 때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천년왕국 백성들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문제가 없지요.
그러나 통과설이 옳다면 지상재림 때 준비된 성도들은 다 변화되거나 부활해서 휴거되고 나머지는 전부 진멸될 터인데, 천년왕국의 백성은 누가 되느냐? 라고 묻습니다.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아니 답변이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환난 전이나 환난 중 휴거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의기양양해서 환난 후 휴거설이 아니라 환난 전이나 환난 중 휴거설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것은 환난 후 휴거설을 믿는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그래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① 아마겟돈 전쟁 때 불신자는 모두 멸망하는가?
통과설이 진리라면 천년왕국 백성들은 어디서 오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전제로 이것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재림 때 일어날 아마겟돈전쟁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63:1-6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냐?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같은 전쟁이 요한계시록에 더 자세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11-18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로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이것이 재림 때 일어날 아마겟돈전쟁입니다. 그런데 저도 오래도록 그랬고, 거의 모두가 아마겟돈전쟁 때 불신자들은 전부 멸망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 때문에 이런 생각이 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양과 염소의 비유에 보면 지상재림 때 "의인은 영생에 악인은 영벌에 들어"간다고(마25:46)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휴거하는 사람들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멸망받는다는 생각이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비유들은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미련한 처녀도 재림을 기다리고 등을 갖고 있었다는 것에 주목하라),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과연 불신자들이 주님의 종인가? 아니다. 그들은 마귀의 종이다), 양과 염소(불신자들을 염소라고 하지는 않는다. 교회에 다니지만 반항적이고 제대로 신앙생활하지 않는 사람들을 염소라고 부른다. 또, 과연 불신자들이 사랑을 실천하며 구원받는가? 아니다. 이것은 믿음의 열매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3:10, 14-15, 18-19절과 같은 의미이다)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교회에 대한 심판입니다. 재림 때 믿는 자들을 미련한 다섯 처녀냐 슬기로운 다섯 처녀냐? 충성된 종이냐 악하고 게으른 종이냐? 양이냐 염소냐?로 가르는 심판입니다. 그리하여 휴거되느냐 못 되느냐?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느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느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느냐 영원한 불에 던져지느냐?를 결정하는 심판입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심판일 뿐 교회 밖의 모든 불신자들을 포함한 심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들은 재림 때 휴거하는 자들 외에 모든 인류가 멸망당한다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그렇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주장이 옳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재림 때 일어나는 아마겟돈전쟁에 대한 기록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은 재림하시면 만국을 치십니다.
요한계시록 19: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그래서 그때 불신자들은 모두 멸망하는 것 같지요? 그러나 정확히 만국의 누구를 치십니까?
요한계시록 19:17-18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얼핏 보면 전 인류를 멸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시면 전 인류가 아닙니다. 계시록 16장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6:12-14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이 둘을 비교해보면 적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는데 그들을 진멸하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19장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19-21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무심코 21절의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라는 부분을 읽으면 전 인류를 죽이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머지"는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뒤에 나옵니다. 그리고 19절에 비추어볼 때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제외한 나머지 즉 "그들의 군대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전쟁 때 전 인류가 멸망당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그리고 그를 따르는 군대들이 멸망당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계시록을 읽다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저도 오래도록 전 인류가 멸망한다고 생각했고 그동안 알던 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하는 고민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저보다 먼저 깨달은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드웨인 린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겟돈전쟁 시의 군대들은 파멸될 것이나, 그들 나라의 백성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또, 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상재림 시에 악인이 모두 멸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의인은 모조리 휴거되고 악인은 모조리 멸절된다면, 지상의 인구는 격감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꼭 재림 때에 모든 불신자가 멸절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적극적으로 반항을 시도한 자들만이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요한계시록 19:15-18이나 예레미야 25:31이 제대로 성취될 수 있다. 따라서 진리를 거역한 많은 혹은 대다수가 멸절되긴 하겠지만, 여하튼 다는 아니다."
심지어, 환난 전 휴거론자인 폴 파인버그도 "이상과 같은 벨의 설명은 나무랄 데가 없다"고 깔끔하게 인정했습니다.
제가 이것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재림 때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군대 외에 살아서 천년왕국으로 유입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곧 천년왕국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② 적그리스도의 군대에 가담하지 않은 자들은 모두 천년왕국의 백성이 되는가?
우리는 재림 때 일어나는 아마겟돈전쟁 때 인류가 전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천년왕국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 재림 때 적그리스도의 군대에 가담하지 않은 자들은 모두 천년왕국에 들어갈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천년왕국도 일종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성도들이" 나라 즉 천년왕국을 얻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나 다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인류 중 구체적으로 어떤 이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백성이 될까요? 지금부터 그것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세 가지 성구를 통해 단계적으로 설명해드리길 원합니다.
먼저, 마태복음 23장 39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은 이 구절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학자들은 대부분 재림 때 그동안 예수님을 배척했던 유대인들이 뒤늦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깨닫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그런 의미라면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11:26)라는 바울의 말과 정면 배치됩니다. 왜냐하면 곧 살펴보겠지만, 바울의 말도 재림 때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바울이 말한 대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는 재림 직전까지 마음이 둔해지겠지만, 재림 때에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이 구절을 이런 의미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몇 안 됩니다. 제가 찾은 것은 고작 세 개뿐입니다.
첫째로, WBC 마태복음 주석에서 도날드 헤그너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대적들에게 종말에 자신이 영광스러운 인자로 나타날 때(참조. 24:30)까지 그들이 자신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참조. 요14:19) 엄숙하고 강조적으로 알리신다.("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 그때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단지 예수께서 누구신지 알고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복된 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말씀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을 묘사한다는 주장도 희박하기는 하지만 가능하다(이 구절을 조건적인 구원의 약속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Allison을 보라)."
둘째로, 위즈덤 종합강해에 보면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끝나가고 그의 재림까지 유대 백성은 예수님을 보지 못할 것이나 그의 재림 때 그들이 메시아를 알아보고 영접할 것이다(슥12:10, Howard F. Vos)."
셋째로, 제자원에서 제작한 그랜드종합주석에 보면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 구절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환호하며 불렀던 찬송의 내용이다(마21:9). 동시에 예수께서 종말에 재림하실 때, 모든 백성들이 부를 찬송이기도 하다. 이 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이 인정할 것이며, 심지어 예수님을 박해한 유대인들조차도 본 구절의 찬송이 그분에게 합당한 것임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심판의 선언 가운데서도 회복에 대한 암시란 면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롬11장)."
이처럼 극소수의 학자들이 이 구절이 통한의 눈물이 아니라 회개를 통한 구원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회개할 기회는 재림 전까지고, 그 전에 회개해야만 구원받는다는 생각이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두에게 재림 때 믿지 않는 모든 인류가 멸망받는다는 생각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는 진리지만 다른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진리는 아닙니다.
다음으로, 요한계시록 1장 7절을 보겠습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는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먼저, 이 구절과 정확히 같은 것을 말하는 구절이 마태복음에 있는데 그 구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4:30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정말 같은 것을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구절에 나오는 "통곡"을 회개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비일은 계시록 1장 7절이 다니엘 7장 13절과 스가랴 12장 10절을 인용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24:30에 단7장과 슥12장이 사용된 것은 요한이 여기서 동일한 조합으로 본문을 사용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 마24:31에 비춰볼 때 회개를 언급한다."
또한, NIV 적용주석 마태복음에서 마이클 윌킨스는 이 구절의 통곡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것은 회개를 낳은 일종의 통곡이거나 임박한 심판을 인식한 것에서 기인한다. 바울이 장래에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롬9-11장: 참조. 마23:39). 회개가 더 적합하다."
마찬가지로 같은 것을 다루고 있는 계시록 1장 7절에 나오는 "애곡" 역시 회개로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이 구절은 앞에서 살펴본 마태복음 23장 39절과 같은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구절 역시 여기에 나오는 "애곡"이 단지 후회와 통한인가? 아니면 회개인가? 가 주안점입니다. 그런데 둘 다 같은 내용인데도 주석들을 보면 단순히 통한의 눈물이 아니라 회개의 눈물이라는 해석이 급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구절이 스가랴 12장 10절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회개를 뜻합니다. 좀 더 읽어볼까요?
스가랴 12:11-14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분명히 회개를 뜻하지요! 그런데 계시록 1장 7절은 이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그래서 그 구절의 애곡을 회개의 눈물로 보는 학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중 몇 가지만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보링은 그 구절의 애곡이 회개일 가능성을 살짝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스가랴서의 본문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자들에게 제한되어 있지만, 요한은 그것을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을 포함시키며 보편화하고 있다. 그들의 애곡(RSV, 'wailing')이 원래의 스가랴서의 상황에서처럼 회개의 애도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출현이 단지 '심판과 재난'만을 의미하는 자들이 가지는 비탄인지 명확하지 않다. 우주적 화해라는 요한의 일반적인 신학과 에스겔에서의 '치료'를 '만국의 치료'로 요한이 변화시키고 있는 아래 22:2의 특수한 유추는 전자의 것을 논하고 있다. 이 경우에서 요한은 심지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로마 군인 같은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회개와 애통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게 될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의 원수들을 포함해서 모든 인류를 이기실 것이라는 승리(십자가에서 명백히 드러난 사랑을 통해 이기는 승리)의 강한 확신이라는 예언적인 선포로 그의 책을 시작한다. 그러나 요한은 아마도 이 문제를 변증법적으로 애매모호하게 내버려 두어서, 이러한 말씀들이 약속 혹은 위협으로 취해질 수도 있게 되었다."
둘째로, 비일은 이 구절의 애곡을 회개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1:7b에서 나라들은 자신을 위해 애곡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애곡한다. 이것은 심판보다는 회개로 이해하는 데 더 적합하다."
셋째로, 오즈번은 이 구절의 애곡이 회개를 의미한다는 것을 거듭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본문은 다니엘서 본문에 나오는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를 앞부분에, 스가랴서 본문에 나오는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을 뒷부분에 인용하고 있다. ... 스가랴서 12장 10-14절은 이스라엘의 회개 곧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구성원이 '그들이 찌른 자' 때문에 '통곡하고' '애통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 본문에서 열쇠가 되는 말씀은 12장 10a절의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다. 앞부분인 12장 1-9절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만국에 대한 승리를 베푸실 것이고, 12장 10014절에서는 그들에게 회개를 제공하실 것이다. 만약 본문이 스가랴서를 인용한 것이라면 1장 7절의 '그들은 애곡할 것이다'는 또한 회개의 눈물도 가리킬 것이고, 요한은 만국(이스라엘 대신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들어가 있다)의 회심을 지적하기 위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일 것이다. 케어드(Caird 1966: 18-19)는 이 기초에 따라 '그를 보겠고 ... 애곡하리니'는 임박한 심판에 따르는 후회가 아니라 회개의 슬픔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스위트, 크라프트, 해링턴, 보링, 월 등도 보라). ... 요한계시록 1장 12절의 '일곱 금 촛대'는 만국에 대한 복음 전도를 함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고, 그렇기에 이 부분을 '회개하며 슬퍼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를 볼' 각 사람의 눈과 '그를 찌른' 자들은 넷째 절의 '땅에 있는 모든 족속'과 동일한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분명히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비신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그를 '찌른')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하지만 또한 더 확대되어 타락한 인류전체(영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를 포함한다. 보쿰(Bauckham 1993b: 319-322)은 앞에서 언급한 케어드의 견해와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보쿰은 '모든 족속[사람들]'(스가랴서는 이스라엘 '지파(족속)'으로 되어 있다)은 70인역 시편 71편 17b(마소라, 본문 72:17b)를 인용한 것이고, 그것을 통해 창세기 12장 3절과 28장 14절의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아브라함 약속에까지 이른다고 믿는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애곡하는 것'은 경건한 근심과 회개를 가리키고, 따라서 케어드의 해석을 지지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실효성 있는 해석이고, 확실히 이후에 14장 6-7절, 15장 4절, 21장 24-26절에서 만국의 회심을 강조하는 것에도 적합하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1장 7절에는 심판 주제도 나타나 있다고 보는 것이 가능하다."
넷째로, 이한수 교수님은 이 구절에 두 가지 의미가 다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왜 역사의 주관자요 심판자로 오시는 그리스도로 인해 '애곡하게 될' 것인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목도하고 땅의 모든 족속이 예수님을 찔렀던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회개한다는 의미의 애곡을 뜻할 수 있다(이필찬 2006:57). 둘째로, 계시록에서 애곡은 때로 회한과 두려움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18:7-11, 15, 19) 본문에서도 사람들은 심판주로 오시는 인자를 보고 자신들의 악행에 대한 회한과 두려움으로 인해 애곡하는 것일 수 있다. 인자 되신 예수님의 오심은 땅의 모든 백성들에게 두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이 구절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온 이스라엘과 수많은 이방인들이 회개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천년왕국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한편, 환난 전 휴거론자인 폴 파인버그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딜레마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 유대인들은 즉각 영화로운 몸을 입으면서 휴거되지 않는가 하는 물음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고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입니다. 휴거하는 자들은 재림 때 궁극적인 구원을 받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고 궁극적인 구원을 기다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림 때 회개하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그때 단지 구원을 받습니다. 따라서 당장 영화로운 몸을 입거나 휴거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천년왕국 후에 사탄이 다시 놓여나서 천년왕국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고, 천년왕국의 백성들은 궁극적인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솎아냅니다. 그러므로 재림 때 회개한 사람들이 그때 변화되어 휴거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 11장 25-27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23장 39절이 별과 같고 계시록 1장 7절이 달과 같다면, 로마서 11장 25-27절은 해와 같은 말씀입니다.
먼저, 저는 마태복음 23장 39절의 의미를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구절에 대한 설명만 들으면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재림 때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구원받는다는 것이 지극히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계시록 1장 7절에 대한 설명에서는 스가랴 12장 10절의 인용이라는 것 때문에 믿음이 절반으로 올라갑니다. 비로소 '정말 그런 의미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고 100%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장될 수도 있었던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11장 25-27절을 알게 되면, 긴가민가했던 것이 해 아래서 보는 것처럼 100% 확실해집니다. 앞의 두 구절의 의미가 뚜렷하게 살아납니다. 그래서 해와 같은 구절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계시를 통해 알게 된 신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토머스 슈라이너는 그 신비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 신비의 내용은 무엇인가? ... 이 신비는 최소한 삼중적이다. (1) 이스라엘의 일부는 한정된 기간 동안 우둔해졌다. (2) 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구원보다 선행할 것이다. 그리고 (3) 온 이스라엘은 결국 구원을 받을 것이다. 무(Moo 1996: 716)가 신비의 초점이 이스라엘 구원의 때와 방식이라고 주목한 것은 옳다."
맞습니다. 바울이 자기 동족의 구원을 위해 고민하다가 받은 계시이므로 신비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그때가 정확히 언제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입니다. 이것은 100% 성경적인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생소한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성경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사실, 성경은 여러 가지를 통해 이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다니엘 70이레의 예언을 기억하시지요! 이스라엘을 위해 정한 기간인 일흔 이레 후에 다니엘이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이처럼 이스라엘이 그 죄를 용서받고 그들의 습관적인 반역이 끝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는 것도 다니엘 70이레를 다룰 때 해석해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이 아니라 성전을 뜻하며 결국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때가 언제입니까? 다니엘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 즉 후반이 대환난입니다. 대환난 직후 예수님의 재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70이레 후가 재림입니다. 결국 다니엘은 재림 때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이 예언이 빗나갈까요? 저는 적중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때는 재림 전이 아니라 재림하실 바로 그때입니다.
다음으로, 스가랴 선지자는 온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회개가 있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스가랴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초림 때는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즉 로마 군병에게는 이루어졌어도 온 이스라엘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언제 이 일이 이루어질까요? 당연히 재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 인용문은 스가랴서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주변 적대국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과 사자(즉 그들이 찌른 자)를 저버린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게 될 마지막 때를 다룬다."
생각해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초림 때 말고 또 언제 주님을 보게 됩니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3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요한은 계시록 1장 7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처럼 재림 때입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이 통곡하며 회개하게 되는 때는 예수님이 재림하는 바로 그때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에 의하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찬 후에 '바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는 것은 흔히 착각하는 것처럼 7년대환난 전이 아니라 재림 직전입니다. 왜냐하면 통과설이 진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여기서 "모든 민족"이 곧 이방인 아닙니까? 그런데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된 뒤에 "끝" 즉 재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시기는 재림 전이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바로 그때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해드린 것만으로도 충분하지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린 것보다 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로마서 11: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여기서 "구원자"는 당연히 예수님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이단이고 예수님 외에 구원자는 없습니다.
그러면 구원자가 '시온에서 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또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시온"의 의미에 달려있습니다.
히브리서 12:22-24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요한계시록 14:1, 3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그러니 시온이 어디겠습니까? 바로 천국입니다!
또, 예수님이 초림하셨을 때 이스라엘은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1:11). 그러나 예수님이 시온에서 오실 때는 온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이 일은 초림이 아니라 재림 때 일어납니다. 더구나 로마서 11장은 초림 이후에 미래에 대한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초림이 아니라 재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디에서 오십니까? 당연히 천국이지요. 그러므로 시온은 천국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시온"이 천국을 뜻한다고 해석합니다. 먼저, 더글라스 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9-11장에서 전개한 논의의 다른 주요 부분들의 결론에서 그랬듯이(9:25-29; 10:16-21; 11:8-1-10을 참조하라), 그는 자기의 교훈을 구약으로부터의 한 복합적 인용으로 보강한다. 그는 26b-27a절에서 이사야 59:20-21a을 인용한다. 그 인용의 두 부분 모두 70인역을 밀접하게 따르는데, 하나의 두드러진 예외가 있다. 이사야 59:20의 70인역은 '구속자가 시온을 위하여[헤네켄] 올 것이라'고 하는데, 바울은 '구원자가 시온에서[에크] 올 것이라'고 말한다. ...
이 변형문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바울이 이 텍스트를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온다고 말하는 구약의 다른 텍스트에 동화시킨 것일 수 있다(시14:7; 53:6; 110:2을 참조하라). 그가 어떤 점을 밝히기 위해 말을 바꾸었을 수도 있다. ... 또는 그리스도가 재림 때 '하늘의' 시온에서 내려와 이스라엘을 구원하리라는 것일 수도 있다. ... 전체적으로는 아마 히브리서 12:22에서 떠오르는 전승을 바울이 전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 전승에 따르면 '시온'은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곳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본문의 어투를 바꾸는 것은 아마 이스라엘의 최종적인 구원이 그리스도에 의해 그의 재림 때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따라서 ... 그리스도가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는' 것은 그가 하늘'에서' 오실 때다."
제임스 던도 이것에 동의합니다.
"시온을 사용함으로써 바울은 한 유대인으로서의 예수님의 기원이나 그의 성육신에 관해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의(그리고 "으로부터의") 그의 종말론적인 출현(참조. 살후2:4, 8) 또는 하늘의 예루살렘으로부터 그의 오심(참조. 갈4:26; 히12:22; 계3:12; 21:2), 즉 예수님의 파루시아에 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또, 토머스 슈라이너도 이에 동의합니다.
"바울은 '시온'을 통해 다윗의 자손으로서 그의 기원 장소, 혹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보다는 오히려 여호와가 오시는 하늘의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그리고, 총신대 이한수 교수님도 이것에 동의했습니다.
"시온에서"란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대인 출생 또는 성육신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 천상적인 예루살렘에서 구원자로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을 지칭한다(갈4:26; 히12:22; 계3:12; 21:2)."
이처럼 시온은 천국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천국에서 다시 오실 때 즉 재림하실 때 회개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재림 때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구원받는다!' 이것은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생소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매우 분명하게 이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이것을 인정합니다. 그중 두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토머스 슈라이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약에서 '구원자'는 분명히 여호와이지만, 바울에게 있어서는 거의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인데, 데살로니가전서 1장 10절에서처럼 이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언급에 나온다. 재림에 대한 언급은 또한 문맥에 의해서도 입증되는데, 이는 충만한 수의 이방인이 들어온 이후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오심의 결과는 야곱(즉 이스라엘)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들을 제거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여기서 '경건하지 않은 것들'은 다름 아닌 23절에 언급된 불신앙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스라엘로부터 불신앙을 제거하여 예수님이 돌아오실 때 이스라엘에게 믿음을 부여하실 것이다."
또한, 총신대 이한수 교수님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26절하의 '구원자'가 재림 때 '오실'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보는 점에서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 여러 유대교 문헌들도 이사야 본문을 장차 임할 메시아를 지칭하는 예언으로 간주하곤 하였다(b. Sanh. 98a). 그렇다면 '시온에서'란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대인 출생 또는 성육신을 가리키는 표헌이 아니라 천상적인 예루살렘에서 구원자로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을 지칭한다(갈4:26; 히12:22; 계3:12; 21:2). 구원자 예수께서 오시면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실 것이다."
이제는 확실히 믿어지시지요! 아무리 낯설어도 재림 때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구원받는다는 것이 성경적인 참 진리입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사람이 꼭 죽기 오래 전에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우편 강도처럼 죽는 순간에 회개해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 아니라 오시는 그 순간 통곡하고 회개하면 구원하신다는 것이 뭐가 이상합니까? 더구나 성경에서 다니엘, 스가랴, 바울 그리고 예수님이 그것을 말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때문에 제임스 던은 매우 인상적인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울과 동일한 방식으로 믿음에 이를 것이다! 즉 높이 되신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때 이스라엘만 구원을 받을까요? 아닙니다. 이방인들 중에도 회개하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우리가 살펴본 계시록 1장 7절에 그 점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우리는 로마서 11장 26절을 통해, 이 구절이 단지 회한의 눈물이 아니라 회개의 눈물을 가리킨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찌른 자는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 군병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대량 회심할 때 이방인들도 회개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또, 사도 요한은 이때 바울이 말한 유대인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족속이" 애곡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재림 때 이스라엘뿐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이 회개합니다.
스가랴 14:16-19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이것은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것은 아마겟돈전쟁 때 적그리스도의 군대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 멸망받지만 전 인류가 멸망받는 것은 아니라고 제가 말한 것과도 일치합니다. WBC 스가랴 주석에서 랄프 스미스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스가랴서의 마지막 장면은 아마겟돈 이후의 세계의 모습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가 될 것이지만, 이전의 세계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을 대적한, 최후의 전쟁에 참여한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남은 자들은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런데 천년왕국에 들어간 자들 중에 초막절을 지키러 오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휴거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구원을 받은 사람은 절대 이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가지고 천년왕국에 들어온 이방인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천년왕국에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처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회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년왕국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재림 때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도 회개하여 천년왕국에 유입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그룹이 천년왕국의 백성입니다. 이제,누가 천년왕국의 백성이 되는지 확실히 아시겠지요!
끝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재림 때 온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이방인들 중에도 많은 이들이 회개합니다. 그래서 천년왕국 백성이 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만들까요? 물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스가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했고(슥12:10), 바울은 예수님이 그들을 돌이키실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롬11:26).
그런데 저는 토머스 슈라이너의 책에서 독특한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계획의 본질과 절정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안목을 여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의 계시적인 영향을 아마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한수 교수님도 이와 유사한 독특한 말을 했습니다.
"재림 때 구원자 그리스도가 오시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바로 이 불경건의 죄를 제거시킬 것이다. 바울은 아마도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닌 계시적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면 이스라엘의 닫힌 눈을 열게 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정점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며 그 결과로 그들은 모든 불경건한 삶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이다."
재림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라는 가장 극적이고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 자체가 이스라엘의 안목을 열어주는 계시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예수님이 말씀한 "인자의 징조"가 일조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24:30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처럼 예수님은 인자의 징조를 보고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인자의 징조가 뭐기에 모든 민족이 보고 통곡하게 될까요? 저는 "인자의 징조"가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여러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도날드 헤그너는 원론적인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기가 어렵다. 분명히 어떤 특별한 사건이 곧 이어 일어날 일, 즉 재림 자체에 대하여 눈에 띄게 세상에 경고할 것이다."
제가 읽은 것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이상근 박사님의 주장을 보강한 것으로 한 주석 책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이 구절은 3절에서 인자의 재림을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다. 한편 여기서 '인자의 징조'가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어 왔다. 즉 1. 그리스도의 십자가(Cyril of Jerusalem, Chrysostom, Origen, Alford), 2.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영광의 광채(Meyer, De Wette), 3. 천군천사(Calvin), 4. 주의 탄생을 알린 것과 같은 별(Olshausen), 5. 예수 그리스도 자신(Bengel)일 것이라는 견해 등이다. 이 가운데 2, 3, 4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고, 5는 본 구절의 문맥상 흐름을 거스르고 있어 수용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본 구절은 인자의 징조와 인자 그 자체를 뚜렷이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징조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장 무난한 해석은 1인데, 십자가보다 더 인자를 더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 견해도 유력한 것일 뿐 단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가장 정확한 답변은 '인자의 징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때는 그것을 보는 자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제가 생각해도 십자가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모른다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징조를 "인자의 징조"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십자가'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즉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순간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징조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고 깨달은 사람들이 곧이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통곡하고 회개하며 그분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년왕국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재림 때 회개하는 것이 결코 이상하거나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사랑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인자하고 자비하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