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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장기적출 당한 예언의 은사 III (변승우 목사님의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중에서)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20.12.09|조회수174 목록 댓글 2

  ■ 장기적출 당한 예언의 은사!

 

  (4)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14장 3절은 어찌 된 것인가?

 

  지금쯤, 여러분은 큰 깨달음과 함께 하고 싶은 질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있을 것입니다. 즉 이 질문이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14장 3절은 뭔가요? 왜 바울이 거기서 예언의 은사에 대해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이요'라고 말했을까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 구절을 선지자의 직임이 아니라 예언의 은사를 정의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예언이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계시와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현재 이런 주장은 성령운동하는 교회들 안에 널리 퍼졌고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을 통해서 살펴보면 이 구절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게도 여러분이 궁금해하시는 것과 똑같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갑자기, 이 구절이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예언의 내용이 아니라 예언의 목적을 기록한 것인데 해긴 목사님을 위시해서 많은 이들이 착각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런가? 하고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에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부분적인 고찰

 

  먼저, 이 구절을 부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덕을 세우며"에 대하여!

 

  "덕을 세운다"는 것은 헬라어로 "오이코도메"라고 하며 '세움', '건물'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서신에서 오이코도메는 건축 활동이나 과정 혹은 덕성의 함양 활동(건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롬14:19, 롬15:2, 고전14:3, 5, 12, 26 고후12:19). 그래서 공동번역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키워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려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덕을 세운다"는 것이 마치 디모데후서 3장 17절의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가 성경의 내용이 아니라 목적이듯 예언의 내용이 아니라 목적을 기록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덕을 세운다"는 표현은 다른 곳에서도 모두 목적을 뜻합니다.

 

  로마서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고린도전서 14: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고린도전서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린도후서 12:19 "너희는 이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에베소서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그리고 이 구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우리는 "덕을 세운다"는 것을 방언이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것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2-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그런데 방언이 자기 덕을 세운다고 할 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의미가 방언의 내용입니까? 아니지요. 그것은 방언의 효과 혹은 목적을 뜻합니다.

 

  사도행전 2:11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고린도전서 14:15-17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물론 이것이 방언 내용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들이 방언의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은 전도를 위한 방언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이 "하나님의 큰 일"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하신 구원의 전 사역에 관한 것일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방언은 우리가 하는 방언입니다. 그 내용은 '기도', '찬송', '축복', '감사' 등입니다(우리의 평소 기도도 이런 내용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방언의 내용이지, 덕을 세우는 것이 방언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방언의 목적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마찬가지로 덕을 세우는 것은 예언의 내용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 "권면하며"에 대하여!

 

  고든 피는 "권면"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두 번째 단어는 더 모호하다. '격려' '위로' 내지 '권면(간청)' 중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이 경우 함께 나오는 단어 '위로'와 뜻이 비슷하다."

 

  웨인 그루뎀도 "권면"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두 번째 용어, 권면(헬라어로 '파라클레시스')은 '위로'를 의미할 수 있고(슬픔으로부터, 눅2:25, 6:24; 고후1:3-7) 혹은 '권면'을 의미할 수 있고(용기를 잃은 자들에게, 롬15:4-5; 고후7:4, 13), 혹은 '권유 혹은 호소'를 의미할 수 있다(다시 말해 어떤 사람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촉구하는 것, 고후8:17; 살전2:4; 히12:5; 13:12). ...

 

  '위로-격려-권고'의 의미 영역은 바울의 독자들에게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서, 문맥에서 계속해서 정의되지 않은 고린도전서 14:3에서의 용례와 같이 어떤 신약의 용례도 그 의미가 제한적이지 않아 청자들에게 때로는 '위로' 때로는 '격려' 때로는 '권고'를 가져다주는 다양한 종류의 언술을 예언이 포함할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지막 용어인 '위로'(헬라어로 '파라무씨아')와 관계해서 두 번째 용어인 '권면'과 그 의미에 있어 많은 다른 점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권면에 대해서만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권면"도 예언의 내용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그것은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덕을 세운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저자 주)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하고', '하기 위하여'라는 말에 나타나 있듯이 권면이 예언의 목적이지요! 더구나 그 전 절에 '계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해긴 목사님의 관점에서 이 구절의 '계시'는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그리고 영분별의 은사에 의한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영계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런데 31절은 예언뿐 아니라 30절의 계시를 포함합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계시가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전서 14장 3절의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과 기능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계시적인 사역을 포함한 것이 아닙니다. 예언이 분래 계시의 은사이기 때문에 계시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14장 3절과 실질적으로 같은 것이 목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해긴 목사님이 오해한 것처럼 계시가 없는 예언이 아니라 계시를 포함한 예언이 권면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안위하는 것이 예언의 내용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2) 전체적인 고찰

 

  이제, 고린도전서 14장 3절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 구절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많은 학자들이 고린도전서 14장 3절을 예언의 내용이 아니라 목적을 기술한 것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찰스 하지는 고린도전서 14장 3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예언자는 덕을 세울 목적으로 말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그 다음의 두 말의 의미를 내포하는 총괄적인 용어이다. 예언자는 권면과 안위를 함으로써 교회에 덕을 세웠다."

 

  또, 웨인 그루뎀은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예견은 예언으로부터 제외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예견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4:3에 정리되어 있는 대로의 목적에 부합하게 기능할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즉 그 목적은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다."

 

  또한, 이한수 교수님도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면 예언의 목적은 무엇인가? 예언은 무슨 목적으로 주어지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바울은 본문 3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바울은 여기서 예언의 목적은 교회의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속 시원하게 확증이 되고 좋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합니까? 그 사람이 뭘 잘못했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권면할 것 아닙니까? 예언사역은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권면합니까? 그러므로 권면이 지식의 말씀이라 불리는 은사와 전혀 무관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어떻게 위로합니까? 예언사역은 처음 보는 사람을 상대로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위로합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와 당신의 수고를 알고 계신다든지, 미래에 이런 복을 주시고 이렇게 쓰실 것이라든지 뭐 이런 말을 해주어야 위로가 될 것 아닙니까? 즉 미래를 알아야 위로할 수 있습니다. 마치 다음 성구처럼 말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8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또, 예언을 통한 권면과 위로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권면과 위로에 필요한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당연히 그것들을 사용해서 권면하고 위로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한, 고린도전저 14장 30-31절의 문맥에 계시를 통해 권면이 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나 있습니다.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해긴 목사님의 관점에서는 이 구절의 '계시'가 세 가지 계시의 은사를 통해 오는 계시를 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예언에 본래 계시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구절들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계시를 사용하여 권면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계시와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4장 3절은 예언의 목적을 보여주는 것이지, 예언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계시를 분리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 전 절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은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방언하는 자나 다른 이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비밀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비밀'은 앞장에 나오는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또, 방언은 성령에 의해 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비밀입니다. 또한, 바울은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전14:5) 즉 방언 통역이 예언과 동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언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방언도 단순히 전도를 위한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 즉 복음진리나(외국어 방언의 경우) 기도, 찬송, 축복, 감사뿐 아니라 비밀과 지식을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고든 피는 이에 동의했습니다.

 

  "방언의 내용은 '성령으로' 말한 '비밀'이다. '비밀'은 이전 용법(고전13:2)과 비슷한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는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를 수반한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방언이 개인의 덕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이 교회의 덕을 세운다는 것 역시 계시적인 비밀과 지식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다시 말하지만 예언에서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영계에 대한 계시를 분리시켜서 은사들을 정의한 것은 성경적으로 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비성경적인 것이고 비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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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성태 | 작성시간 20.12.09 형제님이 올리는 글은 치유면 치유(헌터 부부), 기름부음이면 기름부음(해긴), 방언이면 방언(해긴), 계시록이면 계시록(변승우) 모두가 오늘날 살아가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최고의 수준과 정확성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들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변승우 목사님의 예언에 관한 글을 올리셔서 살펴보니 정말 놀랍군요. 변 목사님은 1%도 이단이 아니며,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앞에 가기 전에 어쩌다 경험할 수 있는 영적 지식을 계속하여 제공해주는 그야말로 사도와 선지자라고 아니할 수 없군요. 얼마나 저에게 힘들이지 않고 무지와 어둠에서 벗어나게 해주는지요! 형제님, 이건 형제님의 사역이요, 씨 뿌림이요, 상급이 될 것입니다. "주님, 형제님의 수고에 백배로 갚아주세요.". 할렐루야~
  • 답댓글 작성자진리수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2.10 샬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내게 유익으로 여기던 것을 해
    로 여길뿐 아니라 배설물처럼 버리노라"

    "나의 달려갈 길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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