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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는 이유! (변승우 목사님의 "다이아몬드 같은 진리!" 중에서)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20.12.27|조회수2,897 목록 댓글 0

  ■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는 이유!

 

  율법의 행위에 대해 상식적인 것도 모르는 목회자들이 많기 때문에 상식적인 것부터 말해야겠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회개의 열매'나 '믿음에 따르는 행함'이나 '거듭남에 따르는 변화된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를 구원의 조건으로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것이며 율법주의와 무관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이 세 가지를 강조해왔습니다. 그런데도 합동을 비롯한 일부 교단들이 우리 교회에 대해 '신율법주의'라는 누명을 씌운 것은 스스로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며 파렴치한 범죄행위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대한 대표적인 성구는 로마서 3장 20절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도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을까요?

 

  1)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율법이 그런 목적으로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건도, 사람도 용도대로 써야 합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율법은 의롭다 함을 받는 용도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율법은 구속사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갖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구원에 이르는 수단으로 의도된 적이 없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것을 입증했습니다. 율법은 그로부터 430년 후에 주어졌고 약속을 폐기하거나 헛되게 하지 못합니다(갈3:17).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에 대항하는 또 다른 구원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갈3:21-22)

 

  언약의 결과인 유업은 율법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갈3:18). 율법은 언약 수립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조건이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 누구도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왜 주어진 것일까요?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의무로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경우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고 바다와 구름 가운데서 세례를 받은 이후(고전10:1-4)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구원의 방법이 아니라 의무로 주어졌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2절에서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언약 관계 안에 머무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언약 안에 머무를 수 있고, 어기면 언약이 깨어집니다. 그 결과 율법의 저주를 받고 고린도전서 10장에 기록된 유대인들처럼 멸망을 받습니다. 이상 설명해드린 바와 같이, 율법은 구원의 방법이 아니라 언약의 의무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2)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거룩하지만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구원문제를 능력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사람이 칭의를 받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능력'입니다. 결국 구원은 능력의 문제입니다. 구원은 죄를 사할 뿐 아니라 죄에서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어햐 합니다. 그런데 율법은 그런 힘이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평생 죄에게 종노릇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그런데 율법은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그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이 구절은 율법의 무능을 잘 보여줍니다. 먼저, 이 절에서 "육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단어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단어를 선택했을까요? 마크 싸이프리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 육체도'(no flesh)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없다. 이 표현(파사 사르크스'pasa sarx') 으로 바울은 '모든 육체가 부패했다'는 창세기 6:12를 암시한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부패한 육체 때문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다른 곳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 " (롬8:3)

 

  바꾸어 말해서, 우리 몸 안에서 역사하는 죄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를 보여줍니다. 율법의 무능입니다. 유대인들이 의지했던 율법은 생명과 의를 주지 못합니다. 죄를 깨닫게 할 뿐입니다. 마크 싸이프리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율법을 통해 오는 것은 칭의가 아니라 '죄의 지식', 즉 죄짓는 경험이다(롬7:7-13을 보라)."

 

  홍인규 교수님은 더 적나라하게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물론, 율법은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그렇지만 율법은 그 자체로 회개하게 하는 능력이나 죄의 세력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달리 말하면, 율법은 인간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행위를 전심으로 행하게 하는 능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율법으로는 다만 우주적인 세력인 '죄'를 깨달을 뿐이다(3:20b).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참조 3:9, 7:13). 인간은 율법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자신이 한없이 무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더 나아가 죄의 권세에 넘겨진 절망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사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로 죄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참조 롬5:12 이하, 7:7 이하). 죄가 다스리는 한, 인간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 그런 상태에서 인간의 노력과 추구는 오히려 위험을 초래한다. 인간은 밖에서부터 오는 구원을 바라보아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인간에게 새로운 시작을 줄 수 있다."

 

  율법은 죄와의 싸움에서 도움이 안 됩니다.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히7:18-19)

 

  여기서 '온전함'이라고 번역된 '텔레이오시스'는 히브리서에서 이곳에 유일하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누가복음 1장 45절에서는 '성취'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완전한 대제사장 예수님의 희생 제사를 통해, 죄가 실제로 제거되고 양심이 깨끗게 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루는 목표가 성취됨을 뜻합니다. 율법은 이런 온전함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율법은 연약하고 무익합니다. 그래서 폐해졌습니다. 또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권연경 교수님은 절묘하게 율법을 '착하지만 수영을 못하는 친구'에 비유했습니다. 한 사람이 강물에 빠져 죽어갑니다. 강가에는 착한 그의 친구가 서 있는데 문제는 수영을 못합니다. 그 친구가 용기를 내어 물에 뛰어든다 해도 허우적거리며 꼭 붙들어서 오히려 더 빨리 가라앉게 할 뿐입니다. 이런 친구가 바로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율법의 무능은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리얼하게 설명한 곳이 로마서 7장 14-25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그 부분을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옥한흠 목사님이 서점에서 로마서 관련 도서를 고를 때에 제일 먼저 읽어보는 데가 이 단락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로마서 주석이나 강해집을 고를 때에 제일 먼저 이곳을 펼쳐보곤 했습니다. 이 단락은 바울서신 중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며, 성경 전체에서도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굉장히 난해한 구절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찰스 피니의 책에 나오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지금까지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오고 있는 주장 하나는, 본 장의 후반부가 그리스도인 경험의 축소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상황과 실재를 묘사하고 있으며, 내재하는 죄와의 전투를 보여주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교적 현대적 견해입니다. 본 장이 쓰인 후 수세기 동안 그러한 견해를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히 이 문제를 검토한 스튜어트(stuart) 교수에 의하면, 어거스틴이 이러한 해석을 시도한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 그렇게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해석은 제1세기에 통용되었던 것인데 유럽 대륙에서는 아직도 일반적을 채택되고 있으며 영국과 미국에서도 상당수의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입니다. 그것은 본문이 죄를 깨달은 죄인, 즉 율법의 동기하에서 행동하고 있으나 아직도 복음의 경험으로 인도되지는 못한 사람의 체험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 견해 중 어느 것을 믿으십니까? 어떤 분은 '그냥 쉽고 은혜스러운 말씀들을 전하지 왜 이렇게 논쟁적이고 어려운 구절을 집요하게 파헤치시나?' 하고 의아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단순한 나머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단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단지 난해한 성경구절을 명쾌하게 해석하는 사변적인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실제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 단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이 단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영혼구원과 관련이 있는 모든 사활적으로 중요한 진리들이 그 힘을 잃어버립니다.

 

  이 단락을 오해하고 있는 자에게 죄를 끊어버리는 회개, 행함이 있는 산 믿음, 성령으로 거듭나고 새로워져야 할 필요성에 대해 전해보십시오. 또 마태복음 7장 21절과 야고보서 2장 14절에 나타나 있는 진리를 전해보십시오. 그들이 이런 진리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일부는 그러겠지만, 대부분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냥 죄를 짓고 있는 로마서 7장의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따라서 자신은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단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 영혼의 진정한 상태에 대해 심각한 기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 7장을 자기가 구원받았는지 아직도 구원받지 못했는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시금석으로 삼습니다. 그 결과 무서운 자기기만에 빠집니다. 거짓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자주 경고한 자기기만에서 벗어나려면 이 단락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 중요성을 가장 잘 지적한 사람은 위대한 부흥사 찰스 피니였습니다. 그의 말을 인용해드리겠습니다.

 

  "로마서 7장에서 자기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는 사람은 회심한 사람이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그들의 습관적 특징이라면 그들은 중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를 깨달은 상태에 있을 뿐이지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

 

  여러분은 단순한 소망을 경건으로 오해할 위험을 보셨을 것입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 소망은 그 속에 아무 선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악마도 그런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

 

  진심으로 회심하고 복음의 자유 속으로 들어온 사람은 자기 자신이 부패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육신의 세력이 분쇄된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도 많고 심한 갈등과 시험을 겪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정욕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죄에 대한 승리를 구가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쉽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은 그들에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

 

  진정한 회심자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립니다. 그는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는 그것을 즐깁니다. 그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부패에 대한 승리를 느낍니다.

 

  이 주제로부터 여러분은 엄청나게 많은 교인들의 진정한 위치를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율법하에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계명과 그 형벌을 다 시인합니다. 그들은 정죄되었다고 느끼며 안식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불행합니다. 그들에게는 기도의 영이 없으며 하나님과의 교제도 없으며 양자 됨의 증거도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로마서 7장을 자기의 증거로 언급합니다. 그런 사람은 '그게 바로 나의 경험이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만일 그것이 여러분의 경험이라면 여러분은 아직 죄의 속박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죄책의 굴레 속에 있으며 죄에게 패배당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것이 쓸개즙처럼 쓰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도 바울의 옆자리에 앉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여전히 육신적이며 죄 아래 팔렸으며 만일 복음을 붙들지 않는다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또한, 이 단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로마서 8장의 가르침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적인 것이 되어 버립니다.

 

  로마서 7장을 바르게 이해하고 8장을 읽으면 그 교훈들이 우리에게 절대적인 것이 됩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삶이 구원받은 자의 삶이요, 필수적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성령을 따라 살아야겠구나! 이것 외에는 길이 없구나!' 하고 바르게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나 7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8장을 읽으면 성령을 따르는 삶이 일반적인 교훈이 되어버립니다.

 

  '그래 8장 말씀이 맞아. 이것이 정석이야. 하지만 로마서 7장도 있잖아. 그러니 8장대로 살지 못한다고 염려할 것 없어. 어쨌든 천국에는 갈 테니까!'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고 살다가 멸망당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단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 이 단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아셨으면 집중해서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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