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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나는 마음이 청결한 자인가? (변승우 목사님의 "나는 팔복의 사람인가?" 중에서)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21.03.15|조회수460 목록 댓글 0

  ■ 나는 마음이 청결한 자인가?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초베스트셀러였고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책이 있습니다. 바로 토마스 주남 권사님이 쓰고 조용기 목사님이 번역한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 보면 무려 다섯 번이나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갈 수 있는 곳

 

  ... 주님은 내 기도에 분명하고 단호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내 딸아, 우리는 천국에 갔었노라.' 주님은 내 마음 속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금방 아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기에 갔을까?'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순종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녀들 뿐이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2월 29일 이른 시간에 천국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내게 '오직 마음이 물처럼 깨끗한 자들만이 이곳에 올 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에 예수님은 나를 강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 나는 그 강물이 얼마나 맑고 고요한지를 보았습니다. 그 강물은 내가 이제껏 본 중에 가장 순수한 수정처럼 빛났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따르기 원하고 주님과 함께 천국에 영원한 집을 갖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초청의 말씀을 되풀이 하셨습니다. '오직 마음이 물처럼 청결하게 된 자만이 이곳에 올 수 있다.'"

 

  "천국은 순종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오직 마음이 청결한 자들만이 그곳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희고 정결하고 깨끗한 곳으로, 그곳에 있는 도로와 건물들은 흠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 천국은 어느 곳이든지 해같이 밝았습니다. 주님은 내게 세상의 모든 바다와 온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흰 눈이 온 땅을 덮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내 백성들을 나의 나라에 데려오기 전에 나는 그들을 정결케 해야 한다. 내 백성이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면 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때 나는 주님이 산상수훈으로 주신 팔복 중의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이 성경적일까요? 저는 토마스 주남 권사님의 체험이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 말들의 내용이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의 견해나 취향을 뒤로하고, 이 구절이 진짜로 그런 의미인지 아닌지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영혼의 안전 그리고 영원한 미래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모든 견해를 내려놓고 공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이 구절의 의미를 추적해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결론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마태복음 4장 17절에 근거할 때, 팔복은 회개하고 제자가 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또 마가복음 1장 15절에 근거해서 생각해보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과연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모든 이들의 마음이 청결할까? 다 이런 수준일까?'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이 구절을 다른 의미로 해석합니다. 일례로, 더글라스 헤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헬라어 형용사 카타로스는 '정한 세마포'(마27:59)라는 용례에서처럼 정결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정금'(계21:21)이라는 용례에서처럼 불순물이 섞이거나 합금이 된 것이 아닌 순전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 후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시편 24편에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깨끗하다'와 대구를 이루고 있으므로, 혹자는 도덕적인 결점('손이 깨끗하다')뿐만 아니라 악한 의도(마음은 의지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라고 여겨진다)도 없는 순결한 자가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여기고 싶어질 것이다. 여기에는 마태복음 5:28의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와 여타의 악한 생각들(15:19)까지 다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의미라면 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문에 마음의 청결은 나누어지지 않은 순전한 마음을 뜻하는 것일 뿐 마음이 청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옳을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이 문제를 연구해 보았습니다. 먼저, 저는 원어를 찾아보았습니다. "청결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다로스"는 "깨끗한(clean)", "순결한(pure)"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또 "카다로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헬라어에는 '순결, 정결'을 의미하는 두 개의 형용사, 즉 '하그노스'와 '카다로스'가 있다. '하그노스'는 본래 '거룩한'을 의미하는 어떤 어근과 관계가 있는 말로 신이나 그와 관련되어 있는 사물이나 사람(제사 물건이나 제사 직원)에게 속해 있는 질적인 '거룩함'이나 '순결함'을 의미한다. 이보다 더욱 일반적인 용어로는 '카다로스'와 이 단어의 동족어들이 있는데, 이 단어들은 사람이나 사물의 제의적, 육체적 혹은 도덕적 청결을 의미한다."

 

  또, 용법을 살펴보았는데 "신약성경의 용법'을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카다로스는 신약성경에서 2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카다로스는 물리적 정결을 나타낸다. ...

 

  (b) 카다로스는 제의적 정결과 깨끗함을 나타낸다. ...

 

  (c) 카다로스는 도덕적 순결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

 

  그래서 "청결한"을 마음의 청결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더글라스 헤어가 이것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은 단순히 원어 때문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마음이 청결하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또한, 사람의 마음에서 온갖 악이 기어나온다고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인간의 마음이 청결해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마음의 청결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마음의 청결이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순전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들의 말처럼 마음의 청결이 불가능할까요? 아닙니다. 마음의 청결은 이 땅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예수님은 마음의 청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셨다.

 

  마태복음 23:25-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마23:26)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깨끗이"에 사용된 단어는 마음이 청결한 자를 말할 때 사용된 "카다로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마음(안)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이것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토록 심하게 정죄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마음의 청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셨음이 틀림없습니다.

 

  또 주목해야할 점은, 마태복음 23장은 지옥을 피할 수 없는 외식자들에게 한 경고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런 상태 즉 마음이 청결하지 않은 상태로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자들의 특징을 열거한 팔복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들어 있다는 것이 무엇이 이상합니까? 그러므로 그것이 실제로 마음의 청결을 의미함이 틀림없습니다.

 

  ● 성경에 실제로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있다.

 

  시편 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시편 73: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잠언 22: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참고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름을 얻는다. 그러므로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 역시 그것을 얻게 된다.)

 

  디모데후서 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이처럼 성경에는 실제로 마음이 청결했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이런 증거들을 무시하고 마음의 청결이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이며 바른 것이 아닙니다.

 

  ●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청결하다고 말한다.

 

  앞에서 팔복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사람들의 특징인데, '과연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모든 이들 즉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청결할까? 다 이런 수준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이 구절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청결하다고 말하고 있는 구절들이 나옵니다. 그런 구절이 본문 외에도 두 개나 더 있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15장 9절입니다.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구절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가 실제로 청결한 마음을 뜻한다면 청결한 마음을 갖는 것이 이 땅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이 되는 셈입니다. 또 팔복처럼 이 구절도 구원받은 신자에 대해 말하고 있으므로, 팔복의 마음의 청결이 실제로 마음이 청결한 것을 뜻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주석들과 씨름하며 그 의미를 추적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글들을 발견했습니다.

 

  F.F. 브루스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 이방인들을 받으시고, 그들이 복음을 믿자마자 자신의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그들의 마음과 양심을 깨끗하게 하셨다면;"

 

  또, 하워드 마샬은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에 대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분으로 언급하며, 이와 같은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 안에서 하나님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깨끗케 하셨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방인들의 마음을 그들의 죄로부터 정하게 하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각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의 정화이고 할례와 같은 외적인 율법 준수는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것이 이해되어야 한다." 

 

  또, 존 스토트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믿음으로 그들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셨다'(9절). 그럼으로써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외적 음식물이나 의식상의 정결이 아니라 내적 정결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또, 대럴 벅은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는 일을 행한다. 이 신적 씻음은 믿음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에크하르트 슈나벨은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즉 이방인 죄인의 부정함을 제거하고 죄를 사하고 정결함을 주셔서 이방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분은 바로 하나님이다."

 

  무엇보다, 이 구절의 배경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 모든 이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마음의 깨끗함은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결과입니다. 즉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끗이 한 것을 죄 사함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보아야할 것은 디도서 1장 15절입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마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양심이 더러운지라." 

 

  이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깨끗한" 혹은 "더러운"이 실제로 마음이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을 의미하면 청결한 마음이 가능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또,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자가 모든 신자를 통칭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을 묘사한 팔복의 청결이 실제로 마음의 청결을 의미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구절의 실제 의미를 추적해보았습니다.

 

  먼저,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의 깨끗한 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뜻하며 도덕적이고 내적인 마음의 청결을 의미함이 분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부정하고 정한 음식들에 대한 규례가 폐해졌으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음식 즉 만물이 정결하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것이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가능한 해석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자들"이 마음이 청결한 자들을 의미함이 분명합니다. 이것을 존 스토트가 잘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정결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바리새인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내적이며 도덕적인 참된 정결보다 외적이고 의식적인 정결을 더 중요시했다. 내적이며 영적인 정결은 탁월한 것일 뿐 아니라('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내적으로 깨끗해지면 '모든 것이 깨끗해진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따라서 바울은 여기서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15절 상)고 쓰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결혼과 음식이라는 창조주의 좋은 선물도 포함된다."

 

  다음으로, "그러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윌리엄 마운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바울의 대적자들은 금욕적인 율법을 따름으로써 의식적 정결을 이룰 수 있다고 분명히 가르쳤다. 하지만 바울은 도덕적으로 부정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이 부정하기 때문에 의식적인 정결에 의해서도 하나님께 용납될 수 없다고 확증한다. (도덕적으로) 부정한 것은 모든 것이 (의식적으로) 부정하다. 그들의 진정한 문제는 의식이 아니라 도덕에 있다."

 

  이것이 이 구절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그 앞에 있는 "깨끗한 자"가 마음이 청결한 것을 뜻한다는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존 스토트는 이 부분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오직 저의 마음(그들이 믿는 것)과 양심(그들이 행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15절 하).

 

  상당히 매력적이지요! 그러나 WBC 주석에서 윌리엄 마운스는 이것을 각각 '부패한 마음'과 '화인 맞은 양심'으로 이해했습니다. 특히 두안 리트핀은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14절의 '명령'("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저자 주)은 특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그레데인들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먹고 마시는 것과 정결 의식에 관한 금욕적 규칙들을 포함하는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참조 골2:20-23; 딤전4:1-5). 바울은 정결의 문제는 외부적인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라는 주님의 가르침(참조 막7:15; 눅11:39-41)을 상기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즉시 해결하고 있다. 외부적인 것은 그 어느 것이라도 내적으로 정결한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 그러나 내적으로 불결한 자는 그가 건드리는 모든 것을 더럽히는 것이다. 거짓 교사들의 문제는 그들이 내적으로, 즉 마음과 양심이 더럽다는 사실에 있었다. ... 그들의 내적인 불결로 말미암아 그들은 외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하여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참조 딛1:10), 모든 선한 일(참조 딤후3:17)을 버린 자(문자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의 뜻 참조 고전9:27)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 역시 이들과 달리 모든 신자의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팔복의 마음이 청결한 자를 실제로 마음이 청결한 자로 해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저는 더글라스 헤어처럼 청결한 마음을 희석시키고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설명해드린 것처럼 그들은 이 세상에서 청결한 마음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장에서 예수님이 제7계명을 이렇게 해석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27-30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이처럼 손(행동)으로 간음하는 자뿐 아니라 눈(마음)으로 간음하는 자도 지옥에 던져집니다. 즉 마음이 청결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렇게 해석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다시 15장에서 장로의 유전을 따라 손만 씻고 마음은 씻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병행구절에 보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에 생각으로 하는 음란과 간음과 음탕이 들어있습니다.

 

  마가복음 7:21-22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또한, 예수님이 다시 한번 23장에서 대접의 겉만 씻고 속은 씻지 않는 바리새인들의 상태를 지적하시면서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신랄하게 성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도 마음에 가득한 방탕이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그렇다고 마음의 청결이 단지 음심에 대한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모든 악한 생각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음심이 대표적인 것이라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본문을 제외하더라도 마태복음에서만 세 번이나 마음이 청결한 자들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마음의 청결하지 않은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토마스 왓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청결이 마음속에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가?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리새인의 청결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의 성결은 주로 겉치레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청결은 바깥의 청결이었다. 그들은 결코 마음속은 상관하지 않았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5, 27) ...

 

  우리는 이들보다 낫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우리의 청결이 바리새인의 청결일 뿐이고 그리스도께서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5:20)."

 

  옳습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활적으로 중요한 마음의 청결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너무도 영혼들을 위태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최근 기독교 TV들에서 유명 교회 목사들이 산상수훈을 강해하면서 그렇게 설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설교에 절대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상 증명해드린 바와 같이, 마음의 청결은 실제로 마음이 깨끗한 것을 의미합니다. 존 스토트는 이에 대해 아주 명쾌한 설명을 했습니다.

 

  "'심령이'라는 말이 예수님께서 뜻하셨던 종류의 가난함을 나타냈던 것처럼 '마음이'라는 말이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청결함의 종류를 나타낸다는 것은 명백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다만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과는 다른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어떠한 사람과 구별이 되는가?

 

  마음이 청결함이란 내적인 청결함 즉 도덕적 - 의식적에 반대가 되는 - 불결함으로부터 깨끗케 된 자들의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성경적인 훌륭한 전례가 시편에 있다. 누구든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정결하지' 않는 한 그는 여호와의 산에 오르거나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없다는 것이 인정이 되었다(시24:3, 4)."

 

  그렇습니다. "심령이"라는 말이 예수님이 말씀한 가난의 종류를 말해주듯이, "마음이"라는 말도 예수님이 말씀한 청결함의 종류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마음의 청결입니다.

 

  또한, 본문은 시편 24편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24:3-6 "여호와의 산에 오른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는 표현과도 잘 조화가 되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이곳에 나오는 "여호와의 산"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그리고 "거룩한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여호와의 산"은 '시온 산'을 뜻하고 "거룩한 곳"은 시온 산에 세워져 있었던 '성전'을 가리킵니다. 즉 마음이 청결하지 않은 자는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날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성전에 올라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가 감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없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마음이 청결한 자들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락한 상태에 기준을 맞춰 하향조정한 잘못된 해석에 절대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누가 뭐래도 반드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으십시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반드시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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