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인가?
5) 박해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으나 박해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친히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박해하는 자에게는 뭐가 있을까요? 당연히 화 즉 저주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본문의 문맥, 그리고 다음 성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6-7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그러므로 차라리 박해를 받을지언정 우리는 절대 박해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박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시기심부터 벌려야 합니다. 믿는 자가 믿는 자를 박해하는 배후에는 항상 시기심이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을 핍박했습니까?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7: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마가복음 15: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또 왜 그들이 12사도와 바울을 대적했습니까? 역시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5: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행전 13: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사도행전 17: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시기심이 박해의 주원인입니다. 그래서 주로 크게 부흥하는 교회들을 대상으로 이단시비가 벌어지곤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백석 교단에 있을 때 교단이 보호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단에서 가장 큰 교회 양0희 목사가 성가대원이 한 명 우리 교회로 옮긴 것에 앙심을 품고 이단으로 만들어달라고 이대위에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사 결과 성경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는 교수들의 보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도해서 총회 때 저를 불법적으로 제명 출교시켰습니다. 또 우리 교회가 소속되어 있는 울산노회도 노회에서 가장 큰 교회를 담임했던 김0복 목사가 역시 시기심 때문에 전혀 저를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서 도리어 노회장이 변호하려는 것조차 자신이 쓰러졌다는 거짓말로 노회장을 급히 총회석상에서 불러내어 변호하지 못하게 방해했습니다. 둘 다 시기심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박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시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외에도 박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두 가지를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 박해자가 되고 싶지 않으면 절대 교리적이 되지 말라!
성경에 의하면 유대교 안에 사람의 계명과 하나님의 계명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7:6-8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사람의 계명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전하는 자를 박해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도 사람의 계명과 하나님의 계명이 있습니다. 각 교단의 교리 중 성경적인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고 비성경적인 것은 사람의 계명입니다. 그런데 분별력이 없어서 사람의 계명에 세뇌된 자들이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전하는 자들을 도리어 박해하곤 합니다.
『예수 열린 문』이라는 책에 보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처음에는 '신유' 때문에 나중에는 '방언' 때문에 박해를 받은 것이 나옵니다. 박해 받을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은사중지론이라는 사람의 계명 때문에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에 의하면, 성경의 진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유나 방언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구원론입니다. 사탄의 미혹과 공격이 가장 심한 것 역시 구원론입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왜곡되고 무너져 내린 것이 바로 구원론입니다. 그러니 구원론을 성경 그대로 가르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훨씬 더 심한 박해가 일어날 것이 뻔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세례요한과 예수님뿐 아니라 사도들과 존 웨슬리와 찰스 피니가 왜 박해를 받았습니까? 이분들에게는 구원론을 바르게 전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구원론을 바르게 깨닫고 타협하지 않고 전하면 반드시 박해를 받습니다. 때문에 아더 핑크는 『실천적인 기독교』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오늘날 은혜를 구하는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는 방식은 신약성경의 표준에 비춰볼 때 얼마나 저급한가?
... 아, 슬프도다. 오늘날 전해지는 복음은 많은 격려를 받으면서 그리스도를 불명예스럽게 하는, 마치 추악한 기형아와 같은 사람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부분에서, 심지어 정통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과 '근본주의자들'조차도 구원받는 것은 굉장히 간단한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믿고 '그 말씀을 의지하거나' 혹은 '그리스도를 그의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면' 그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했다고 평해진다. 사람이 은행을 신뢰하듯, 혹은 아내가 남편을 의지하듯 죄인이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향하기만 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들 한다. 이런 생각이 아주 널리 퍼졌기 때문에 이 생각을 틀렸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이단으로 정죄받기 십상이다."
그는 또 현대 교회에 가득한 거짓 복음에 대해 깊이 우려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복음전도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이란 용어를 잘못 전하고 있다. 대부분의 복음전도자들이 전하는 내용은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며 값없이 선물로 받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셨기 때문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고, 단지 그리스도의 피의 무한한 공로를 믿고 신뢰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지금 '정통' 기독교계에 널리 유행하고 있고, 그들의 귀가 멍하도록 자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이제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이 부적절하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사람을 미혹하며 잘못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면, 그는 즉시 이단이라는 낙인을 찍히고 행위구원을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손상시킨다는 비난을 받는다."
정말로 사실 아닙니까? 실제로 오늘날 성경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이단사냥꾼과 비양심적인 교단들이 어이없게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이단'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바로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든 교리적이라면 성경적인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박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론과 견인의 교리에 있어서 교리적이 되지 말고 꼭 성경적이 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 박해자가 되고 싶지 않으면 절대 종교적이 되지 말라!
교회 안에서 영적인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많은 이들이 종교적이기 때문입니다. 즉 비성경적인 은사중지론의 영향을 받아 성령께로부터 오는 계시(조명적 계시)와 은사와 기적들을 터부시하기 때문입니다.
조용기 목사님과 윤석전 목사님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서 이단 시비로 곤혹을 치른 여러 목사님들을 보십시오. 기도 많이 하고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난 목사님들이 대부분입니다.
일찍이 찰스 피니는 '성령 충만케 될 때 따르는 결과들'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이 성령 충만할진대 당신은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똑같이 많은 반대에 부딪힐 것을 각오해야 한다. 교회 내의 주도적 인물들이 당신에게 반대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도 그랬다. ... 당신이 성령 충만하다면 장로들이, 심지어 목회자까지도 당신에게 대적할 것이다. 사탄과도 힘든 다툼을 자주 벌이게 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또,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교회의 설립자인 잔 오스틴 목사님은 담대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은 모든 교회시대를 위한 교회의 원형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언제나 하나뿐이었습니다. 모든 교파에 속한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이 하나 된 교회의 일부입니다.
사도행전 1장은 성령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성령 세례가 어떻게 우리의 영을 풀어놓아서 진정한 예배와 경배와 찬양을 통해 아버지와 교제할 수 있도록 해주는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은 성령 세례가 끝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기적의 흐름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행전 4장에 나타난 원형을 보겠습니다. 여기는 핍박의 흐름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핍박의 원형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제자들처럼 성령의 능력이 있으면 우리는 똑같은 핍박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근본주의자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근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당시의 교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핍박을 했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 핍박은 사도행전에서 발견되는 원형의 일부입니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신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자마자 그 당시의 종교인들이 핍박을 가했습니다. 행복해하는 대신 이 종교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행4:16)
이것이 바로 오늘날도 교단의 가르침에 더 충실하고, 영적으로 눈이 멀고, 종교적인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이것이 민간에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행4:17)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 말라 하니'(행4:18)
잘 들으십시오! 이 종교적인 사람들은 이 소식이 더 퍼져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불치병자가 낫는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역사도 더 나타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취한 얼마나 끔찍한 태도입니까?
나는 모든 교파에 속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 이런 것을 빼앗고 자기 교단주의의 울타리 안에 사람들을 가두어 두고 이런 어리석은 것만을 가르치는 분파주의의 영을 나는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나를 불러 일으키셔서 눈먼 교단의 신조와 사람의 전통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는 목소리가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 우리 교단 교회에서 나는 사도행전에서 발견된 그런 교회의 모형을 따랐습니다. 나는 능력으로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자 당연하게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초자연적인 흐름이 흐르기 시작하면 즉시 조직적인 종교의 핍박이 따라올 것입니다. ...
초자연적인 흐름을 따르기 시작할 때는 핍박을 예상하십시오. 너무 충격을 받지 마십시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핍박이 온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우선순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교단에 소속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분파적이고, 악하고, 마귀적인, 교단주의의 영은 열정을 가지고 대적해야 합니다."
그분은 또 웃지 못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한 침례교회의 목사였을 때 나는 성경말씀에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나는 경건한 삶을 살았지만 박해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나는 누구든지 범할 수 있는 모든 죄에 대해서 언급하는 설교를 하려고 작정했습니다. 나는 회중들을 불편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종류의 핍박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핍박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회중들은 나를 사랑했습니다. 예배 후에 그들은 나와 악수를 하고 즐겁게 돌아갔습니다.
그 시절에는 핍박이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반대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습니다. 우리가 방언을 말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강력한 강을 따라 흐르기 시작하자마자 사방에서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분파주의를 일으키는 종교의 영이란 것이 존재합니다. 종교의 영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종교의 영은 모든 성령의 역사를 비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박해를 피해 갈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저는 오래도록 박해를 피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박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피해갈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응당 지불해야 할 대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저처럼 마음을 고쳐먹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원수는 항상 성령 충만한 교회와 목회자들을 표적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 많은 목회자들이 종교적입니다. 성령과 성령의 은사와 기적들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즉 성령 충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혀 핍박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적이어서 도리어 박해자가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누구든 종교적이 되어 성령의 역사를 겁도 없이 귀신의 역사요, 신비주의요, 이단이라고 떠들어대면 성령훼방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성령훼방 죄를 지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무조건 지옥행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이 되어 박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6)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예수님은 놀랍게도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성경은 다른 곳에도 같은 권고들이 나옵니다.
야고보서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베드로전서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또한, 실제로 그런 사례들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5:40-41 "그들이 ...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행전 16:22-25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러면 왜 예수님은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기뻐하라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요?
● 박해를 받아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천국이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당연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기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할 대가 중의 하나가 박해입니다.
누가복음 14:25-27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박해는 그 사람이 대가를 지불하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 참 제자라는 증거입니다. 즉 박해는 참 신자 혹은 참된 경건의 표식입니다.
요한복음 15:18-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오래전에, 저는 찰스 스펄전의 『기도 황금의 열쇠』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한 사람이 크리스천이 될 때 그는 바로 자기의 동료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이 됩니다"라고 한 후 이런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어느 날 찰스 스펄전이 창문 옆에 서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새들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새들중에는 새장을 뛰쳐나온 카나리아도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새는 반대 방향의 집 지붕을 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 20마리의 참새와 다른 거친 새들이 그 새를 뒤쫓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스펄전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운명이 얼룩무늬가 있는 저 카나리아와 같구나. 주위를 나는 새들이 그 카나리아를 공격한다.
왜일까? 마치 새들이 이렇게 서로에게 말하는 것 같다.
"여기 한 노란 놈이 있어. 우리는 런던에서 이런 종류는 보지 못했어. 여기에서 사업을 하지 못하게 그의 밝은 옷을 벗기고 죽이거나 아니면 우리처럼 어두운 색깔을 입히자."'
찰스 스펄전은 그때 한 이런 생각을 소개한 후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을 향해 취하는 방법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때문에 존 라일은 "세상의 미움은 ...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만족스러운 증거"라고 했습니다. 또 블레즈 파스칼은 박해가 "경건에 대한 최선의 표징"이라고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존 스토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핍박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보증하는 진정함의 표인데 왜냐하면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기 때문이다(12절). 만약 우리가 오늘 핍박을 받는다면 우리는 고귀한 자손에 속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뻐해야만 하는 주된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인하여, 즉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와 의의 표준에 대한 우리의 충성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가장 큰 이유입니다.
우리는 팔복의 사람이 되면 세상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칭찬이 아니라 박해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19-20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의 됨됨이와 처신은 다른 이들의 죄를 드러내고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미움을 받고 박해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누구보다 신자들에게 나타나야 할 의를 탁월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할 정도로 지독한 미움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주님은 우리 가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24-25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썬다 싱의 책에 보면 예수님이 또 이렇게 말씀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세상이 너를 욕하고 박해하면 그로 인하여 놀라거나 또 괴로워하지 말아라. ... 세상이 너를 버리더라도 놀라지 말라. 하나님을 버린 세상이니 도리어 이로써 네가 하늘 아버지의 참 아들인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뱀은 절대로 죽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 자연 다큐에서 뱀이 다가오자 두꺼비가 쓰러져서 죽은 척했습니다. 그러자 뱀이 잡아먹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옛 뱀인 사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사데 교회 신자들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즉 진짜들만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박해를 받을 때 절대 슬퍼하거나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 박해를 받아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의를 위해 박해를 받으면 하늘에서 상이 큽니다. 핍박받는 자에게는 상이 그것도 큰 상이 주어집니다. 이것이 박해를 받을 때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입니다.
필리핀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는 윤필립 선교사님이 쓴 『그들에게는 예수의 심장이 뛰고 있다』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천국에는 상이 있는데 각자 상이 다르다. ... 이것은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는 것보다 내게 더 충격적이었다. 가뜩이나 후발주자로 교회에 나왔기 때문에 따라잡아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상급까지 각각 다르다니! 그렇다면 하나님께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왕초보 신자로 죽는다면 천국에 가더라도 한쪽 구석에서 완전히 쭈그러져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한 번 가면 되돌아 올 수 없는 영원한 본향에 빈손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세상에서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채로 하나님께 왔는데, 천국에서까지 밑바닥으로 살 수는 없었다. ... 꿈은 접었지만, 천국에서만큼은 왕같이 영광스럽게 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상급이 크단 말인가? 나는 성경에서 답을 찾았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1-12)
나는 곧 '예수님으로 인한 핍박'을 받음과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전력투구하기로 했다.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 자체가 세상으로부터 핍박의 연속이었지만, 특별히 전도할 때 핍박과 조롱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전도는 핍박과 기쁨을 동시에 충족하니 상급에 있어서 최고의 양쪽 날개였다. '질'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가장 핍박이 많고 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인 '전도'를 놓지 않고, '양'으로도 승부하기 위해 주일은 물론 평일에도 모든 저녁기도회에 참석하고, 음치와 박치 주제에 성가대도 들어갔다. 토요일 교회 대청소도 절대 빠지지 않았다."
참으로 순수하고 귀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웃픈 얘기지만, 우리 교회의 성도가 되면 핍박을 자동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엄청난 상이 쌓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다면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받을 상은 얼마나 클까요? 얼마나 크기에 예수님이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크기를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많은 사람들이 재벌을 부러워합니다. 드라마에서도 걸핏하면 재벌이나 재벌 2-3세를 소재로 삼습니다. 그래야 대리만족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오늘날 말로 하면 미국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엄청나지요!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들이 받게 될 상은 이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또, 빌립보서 2장에 의하면,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주가 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를 위해 받는 핍박을 통해 '주'가 됩니다. 제 말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 성경구절에 암시가 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0:35-39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는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4-5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여러 해 전, 윈 형제의 책에 나오는 중국 지하교회 최대 계파의 지도자인 수융쩌 형제님이 대전 한밭감리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사모하는 마음으로 집회에 참석해서 수융쩌 형제님의 설교를 직접 들었습니다. 그때 들었는데, 수융쩌 형제님이 중국에 있을 때 형제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기차를 탔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자신도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감옥생활에서 반복되는 구타와 고문에 지쳐서 "주님, 왜 우리를 잡히게 하셨습니까?"라고 원망조로 질문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너희는 특별히 선택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천국에서 상을 받고 왕 노릇 하기에 합당한 자로 선택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나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 너희가 붙잡히도록 하였다."
그 말씀과 함께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이 '특권'임을 가르쳐주셨다고 합니다. 이처럼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큰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억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 박해를 받아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전에 선지자들에게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최근에 한 유명한 기독교신문사 사장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지난 15년 동안 지켜본 결과, 한국 교회로부터 가장 심하고 가장 지독하게 그리고 가장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 바로 변 목사님입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당할 수가 있나?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나? 싶을 정도로 계속 지독하게 당하셨습니다. 통합 사면위가 자신들의 결정을 번복했을 때는 어떻게 기독교가 이럴 수가 있나? 충격을 받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설교와 치유사역, 구제와 선교 등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교회들에게 큰 모범이 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매도당하고 계속해서 당할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당해도 어떻게 이렇게 지독하게 당할 수가 있을까요?
여러분, 그 이유를 알고 싶으십니까? 지금부터 제가 소개해드리는 말들 안에 그 답이 들어있습니다. 『타오르는 전도의 열정』이라는 책에서 라인하르트 본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귀가 여러분을 적으로 취급할 때마다 기뻐하십시오! 마귀는 여러분에게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과거에 미워했던 사람들, 즉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종들과 같은 반열에 여러분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또, 『교회사에 감춰진 예언』이라는 책에서 릭 조이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크리스천들이 밟아 온 길을 돌이켜보면, 핍박을 받는 것은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정상적인' 상태다. 기독교는 악한 세상을 본받아 사는 사람들과 세상과 타협한 무늬만 크리스천인 이들에게 언제나 치욕과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그러니 핍박받는 것 때문에 충격을 받거나 낙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핍박을 받지 않고 있다면 오히려 그 사실을 더 걱정해야 한다. 핍박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진정으로 경건한 삶을 살지 않고 있으며, 결국 어둠의 세력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늘 생명수』라는 책에서 윈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과 전략을 알려주시면, 우리는 순종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공격과 반대에 부딪혀도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의 부르심이 우리 삶에 주어졌다고 해서 이제부터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오히려 사탄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계획들만 공격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 외에 그리스도인들이 벌이는 온갖 계획들과 프로그램들은 사탄의 지상 나라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적 사탄은 한나님의 기름부음이 느껴지는 계획은 두려워합니다. 그런 전략은 사탄의 사악한 나라를 박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사정이 이러하므로, 여러분이 받은 비전이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해도 놀랄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걸어가는 길에 고난과 핍박이 가득하다 해도 놀랄 것 없습니다. ...
하나님을 따르고 그분의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고 싶습니까?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열매 맺는 삶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많은 반대와 비방, 비난과 거짓 고소, 그리고 고통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오해하고 여러분의 동기를 의심할 것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의 진전을 가로막기 위해 여러분의 앞길에 온갖 장애물을 가져다 놓을 것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런 일을 겪었고, 사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께 쓰임받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경험을 했습니다."
같은 책에서, 윈 형제는 유럽에서 열린 한 모임 중에 어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다가와 해준 이런 말을 소개했습니다.
"'윈 형제, 저는 형제님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형제님이 몹쓸 사람이라는 온갖 비열한 고발과 소문들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탄이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수많은 주요 기독교 지도자들을 속이고 형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보아, 형제가 흑암의 나라에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중국 정부조차도 형제의 명성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형제가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람들이 형제를 공격하느라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우리 교회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그렇게 지독한 음해를 당하고 핍박을 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선배 목사님을 비롯해서 많은 타교단 목사님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단성이 전혀 없는 사랑하는 교회가 이토록 지독하게 한국 교회로부터 매도를 당하고 있는 것은 마귀가 이 교회 때문에 큰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도 아시지요! 그러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을 주의해서 잘 보십시오! 예수님은 "너희 전에 있던 제사장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혹은 "너희 전에 있던 서기관 혹은 랍비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오늘날은 제사장이나 서기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기록한 대로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들이 있습니다(엡4:11). 그런데 사람들은 목사나 교사를 거의 핍박하지 않습니다. 복음전도자들은 조금 핍박을 받습니다. 선지자들은 더욱 핍박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지독한 핍박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은사에 대해 설교할 때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이 곧 구약의 선지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토록 지독한 박해를 받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과 같은 토대적인 사도(성경 기록에 쓰임받은 사도들)는 아니지만 사도들의 뒤를 잇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토대적인 사도로서 그들이 전한 진리를 그대로 전하고 그들이 했던 성령사역을 그대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큰 기쁨이지만 사탄에게는 큰 골칫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그까짓 박해 때문에 슬퍼하지 말고 주님이 명령하신 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제, 팔복의 총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팔복은 복입니다. 복중에서도 최고의 복입니다. 다른 복은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팔복은 그 사람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구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팔복의 복은 천국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복보다 팔복을 사모하고 반드시 그 복을 받아야 합니다.
팔복의 서론에서, 저는 팔복이 그리스도인의 초상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을 충분히 증명해드렸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모두 큰 도전을 받았고 팔복의 사람이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런데 균형이 필요합니다.
팔복은 그리스도인을 묘사한 것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팔복의 사람이고, 그런 사람만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복에서 완전한 자만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땅에 그리스도인이 단 한 명도 없게 될 것입니다.
팔복은 완전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애통' 그리고 '의에 주리고'는 이 땅에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데이비드 터너는 주기도문을 설명하면서 "용서를 위해 기도할 때 제자들은 자신들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다. 즉, 제자들의 태도들과 행동들은 종종 천국 표준에 미달한다"고 썼습니다. 또, 헤르만 리델보스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만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는 단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더 나은 의를 요구하였을 뿐이다"라고 썼습니다. 또한, 로이드 존즈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것은 죄를 짓지 않는 완전주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산상설교 마지막 장면들을 읽고 다음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즉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되었거나, 혹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란 산상설교를 읽고 항상 어디서나 그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일 이곳의 가르침이 이런 것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는 기독교인이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며 이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팔복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약화시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설정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팔복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전체적으로, 실제적으로 팔복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수준이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팔복의 사람이지만, 동시에 팔복은 그리스도인의 목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화를 통해 점점 더 온전히 팔복의 사람이 되어가는 사람입니다. 마치 아기로 태어나서 성인으로 가라가듯,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팔복의 사람으로 태어나서 완벽한 팔복의 사람을 목표로 자라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모두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