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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문제들! II (변승우 목사님의 "너 자신을 알라!"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6.06.23|조회수23 목록 댓글 0

  ■ 영과 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문제들! 

 

  1.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주장

 

  두 번째 오류는, 자기 역량 이상의 무거운 짐을 들려고 하는 사람과 물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려면 그의 힘이 다 빠질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말하면서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율법으로부터 구원받는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좀 과장된 말일지는 모르나, 그 말은 내가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위하여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내가 다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의무에서 해방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물론 우리가 무법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와 정반대이다. 그 말은 우리가 그 뜻을 우리의 힘으로 행하는 것에서 해방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 뜻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확신할 때에 우리는 옛 사람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그치게 된다. 마침내 우리가 완전한 절망의 지점에 도달할 때 노력하는 것까지도 중단하게 되고, 주님의 부활 생명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도록 주님을 의지하게 된다."

 

  "우리도 노력하는 것을 빨리 포기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유익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일을 독점하고 있다면 성령님이 역사하실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나는 그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나를 위해 그 일을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강한 능력으로 그 일을 해내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1923년에 나는 유명한 캐나다인 전도자 한 사람을 만난 일이 있다. 내가 위와 같은 내용의 설교를 하고 난 후에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걸어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로마서 7장에 관한 내용은 오늘날 좀처럼 듣기 힘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다시금 들어보니 기쁩니다. 내가 율법에서 구원받은 날은 땅 위에서의 천국과 같은 날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지 여러 해가 지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노력하면 할수록 그만큼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우주 가운데서 가장 큰 요구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요구들 중 가장 작은 것도 이룰 수 없는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로마서 7장을 읽을 때 빛이 비춰 나는 내가 죄로부터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율법으로부터도 구원받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주님, 주님은 정말 나에게 아무 일도 요구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나는 주님을 위해서 아무 일도 더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요구를 이룰 자들이 아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라! 하나님은 보좌 위에서 율법을 주시고 내 마음 가운데서 그 율법을 지키시는 분이다. 율법을 주신 그분 자신이 그것을 지키신다. 하나님은 요구를 하시지만 또한 그 요구를 이루신다. 

 

  그 친구는 자기가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벌떡 일어나 소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일한 발견을 하는 자는 모두 그렇게 할 수가 있다. 우리가 무엇이든 해보려고 노력할 때에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실 수가 없다. 우리가 실패를 거듭하는 것은 우리가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완전히 깨달을 때까지 실망과 환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유명한 청교도 설교자 존 오웬을 비롯해서 여러 책과 설교에 자주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중 우리 힘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은 옳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죄를 이기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어떤 시도나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보혜사로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지 우리를 대신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은혜도 "돕는 은혜"(히 4:16)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되 온 힘을 다해 죄와 싸워야 합니다(히 12:4).

 

  김옥경 목사님은 이와 관련하여 죄와 싸우는 것을 총력전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옳습니다! 성경은 단지 성령을 의지하라고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라,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켜라, 영혼을 거스리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범죄케 하는 눈을 뽑아 버리고 손과 발을 잘라 버리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항상 기도하라, 근신하라,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워치만 니의 주장은 진리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나 성경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세 번째 오류는, 이 둘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즉, 바울이 로마서 6-8장을 통해 설명한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그것보다 한 단계 높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왜곡하여 그런 삶을 살지 못해도 정상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속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워치만 니는 그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있는 주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의인(義認)과 관련해서 언급되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여기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위치이다. 그러나 로마서 6장 4절에서는 부활이 거룩한 생활을 위해 새 생명을 주는 것으로 언급되었다. ' ...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행실이다. ...

 

  믿음으로 인한 칭의의 보배로운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여전히 이야기의 절반밖에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겨우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위치의 문제만을 해결하였을 뿐이다. 계속해 나아가 보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것은 곧 우리의 행동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들 가운데 계속되는 사고의 진전은 이 사실을 강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각각의 경우에 후자는 전자를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전자만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비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구원받기 전에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한 일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성경을 읽고, 기도도 하고, 교회에 나가고, 구제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의 눈이 뜨여지자 당신은 완전한 구원이 이미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발견하였다. 당신은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평강과 기쁨이 당신의 마음 가운데 흘러들어 왔다. 그런데 좋은 소식은, 성화도 구원과 동일한 기초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죄 사함을 받은 것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거룩한 생활을 하는 문제를 포함한 우리의 모든 구원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인식하는 데 있다고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특정한 죄들에 대해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성과 범죄를 처리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계속적인 효능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보혈이 모든 것을 해결하여 주는 줄로 생각한다. 그들이 믿는 거룩은 사실상 과거에서 분리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흘려진 그리스도의 보혈을 근거로 과거에 그가 범한 모든 죄를 지금 도말시킴으로써, 하나님은 그를 세상으로부터 성별하여 자기의 소유가 되게 하신다. 그들은 그것이 거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서 멈춘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기본적인 요구와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완전한 것에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멈추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우리들이 이것의 불충분함을 이제 분명히 깨달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우리는 교회를 단순히 '구원받은 죄인들'의 회집이라고 생각하여 왔다. 그것은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은 죄인들'과 '교회'라는 말을 거의 동일한 뜻으로 생각하여, 마치 교회가 구원받은 죄인들만을 의미하는 것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이처럼 워치만 니는 죄 사함과 죄에서 자유케 되는 것, 그리고 칭의와 성화를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 즉 앞의 것만 갖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워치만 니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바로 불충분한 혹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전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후자만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상 설명해드린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워치만 니는 로마서와 칭의의 기초인 행위심판에 대한 무지 때문에, 구원파와 흡사한 구원론을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사소한 오류가 아닙니다. 영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오류입니다. 때문에 저는 실망이 너무 컸고 깊이 탄식했습니다. 그리고 워치만 니의 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보다 더 확실히 알게 되었고, 주의가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그의 책들을 읽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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