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Q&A 게시판

기억해야 할 여인 III (J. C. 라일의 "거룩"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5.03.06|조회수69 목록 댓글 0

  ▣ 기억해야 할 여인
 
  3.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롯의 처에게 내린 징벌을 보겠습니다. 
 
  롯의 처의 죽음에 대해 성경은 단순한 몇 마디로 언급합니다.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하나님은 범죄한 이 여인을 기적을 통해 심판하셨습니다. 그녀에게 생명을 주셨던 전능자가 그 팔로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생명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녀는 순식간에 살아 있는 육신에서 소금 기둥으로 변했습니다. 
 
  정말 끔찍하고 두려운 결말입니다! 어느 때나 죽음은 엄숙한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벗이 보는 가운데 죽든, 자기 침상에서 조용히 혼자 죽든, 경건한 사람들의 기도가 귓전을 울리는 가운데 죽든, 복음의 약속을 따라 부푼 희망 가운데 주 예수를 의지하면서 죽든, 죽음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죄 중에 급작스럽게 맞닥뜨리는 죽음이나, 건강한 상태로 있다가 갑자기 죽는다거나,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죽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롯의 처의 결말이 그랬습니다. 공동기도서에 "선하신 주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라는 기도가 있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지만, 저는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롯의 처와 같이 죽는 것은 아주 절망적인 결말입니다! 무덤으로 내려가는 영혼을 보면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임종을 맞이한 형제나 자매를 보내며 그가 마지막에라도 회개하여 구원받았을 것이라고, 마지막 순간에라도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부여잡았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설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떠올리고 성령의 능력을 기억합니다. 회개한 강도를 떠올립니다. 침상에서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말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도, 구원의 역사는 계속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죄 중에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게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은 정말 부질없는 짓입니다. 악한 일을 하다가 단 1초라도 기도하거나 생각할 틈도 없이 급작스럽게 부름을 받는 영혼에 대해서는 자비도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롯의 처의 결말이 그렇습니다. 절망적인 결말입니다. 그녀는 지옥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죄인 줄 알면서도 죄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을 엄히 벌하시고, 주신 특권을 오용하는 자에게 가공할 만한 진노를 내리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로는 모세가 행하는 모든 기적을 코앞에서 보았습니다. 고라와 다단, 아비람은 시내 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홈니와 비느하스는 대제사장의 아들이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가장 왕성하게 사역할 때 살았습니다. 아합은 엘리야 예언자의 경고를 자주 들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로서의 모든 특권을 누렸습니다. 벨사살은 다니엘 예언자를 바로 곁에 두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도들이 기적을 베풀던 때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우리 주님이 직접 택하시고 함께 다닌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자신들이 받은 빛과 지식을 거슬러 멋대로 죄를 지었고, 어떤 구제책도 없이 갑작스럽게 멸망했습니다. 회개할 틈도 없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지내다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급작스럽게 하나님을 만나러 간 것입니다. 새롭게 되지도 못하고, 용서받지도 못하여, 천국에 전혀 맞지 않은 자신의 모든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떠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말합니다. 롯의 처와 같이 빛을 거슬러 죄를 짓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고, 지옥은 실재한다고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지옥의 주제에 대해 거침없이 말한다는 것이 좀 부담스럽기는 합니다만, 롯의 처의 결말이 주는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지옥의 실재와 영원성에 대해 분명히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최근에 거짓 교리가 홍수처럼 우리를 엄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영혼을 영원히 벌하실리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옥의 밑창에도 드리워져 있다. 그러므로 사악하고 불경건한 사람이 개중에 좀 있기는 하지만 결국 모든 인류는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사도적 신앙의 옛길에서 떠나라고 호소합니다. 지옥과 마귀와 징벌에 대한 믿음의 조상들의 가르침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식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인도적인 신학(kinder theology)"을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지옥을 이교적 설화들과 같이, 나쁜 아이들이나 바보짓 하는 아이들을 겁주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 정도로 취급하라고 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저 혼자만 남았다 해도, 저는 이 거짓 가르침에 대항할 것입니다. 지옥에 대해 바로 이야기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껄끄럽고, 거북하다고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직면해서 분명히 다루어야 합니다. 저는 아무리 혼자일지라도 결연히 옛 자리를 지키고, 지옥의 실재와 영원성을 주장할 것입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지옥의 문제는 단순히 사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예전이나 정치에 관한 논쟁으로 분류해서도 안됩니다. 에스겔의 성전이나 요한계시록의 상징이 갖는 의미처럼 신비적인 문제로 치부해서도 안됩니다. 지옥의 문제는 전체 복음의 근간에 자리한 물음입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과 그분의 정의와 거룩과 성결이 모든 이 문제와 결부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인격적인 믿음의 필요와 성화가 모두 이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옥에 대한 옛 가르침을 거부하면, 모든 기독교 신앙의 체계가 흔들리고, 나사가 빠지고 핀이 뽑힌 것처럼 무질서하게 될 것입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문제는 사람이 만든 이론과 허구를 우리가 의지하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지옥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성경이 지옥에 대해 말하는 것을 회피하면서, 성경을 정직하게 다루기란 불가능합니다. 성경이 무엇인가 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을 제대로 해석한다면, 지옥에 던져질 자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지옥이 영원하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의 증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성경이 지옥의 실재와 영원성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논증하는 것보다, 차라리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쉬워 보입니다. 
 
  (1)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 죄인을 대신해 죽게 하셨다고 가르치는 바로 그 성경이, 하나님은 본성상 죄를 미워하시고, 죄에 탐닉하는 자를 반드시 벌하시고, 이런 자들의 구원을 거부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라고 선언하는 바로 그 장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고 불신앙에 대해 선언합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고 이 땅에 선포된 그 복음이, 또한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선포합니다(막16:16). 
 
  (2)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실 뿐 아니라, 믿음이 없는 완악한 자를 벌하시고 원수에게 보응하시는 분이라는 무수한 증거들이 성경에 나타납니다. 
 
  홍수 심판을 받은 세상, 불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 홍해에서 몰살당한 바로와 그의 군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에게 내린 심판, 가나안 일곱 부족의 완전한 파괴 등은 모두 한 가지 무서운 진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실들은, 그것을 듣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고와 표지와 경계로 주어졌습니다. 이 모든 사실들이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고 있는 휘장을 걷어 올리고, 하나님의 진노가 실제로 있음을 우리가 잊지 않도록 해줍니다. 이 사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시9:17).
 
  (3) 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지옥의 실재와 영원성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말씀하신 분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는 두려운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만이 아닙니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14:24)고 말씀하신 그분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지옥의 끔찍함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옥, 격심한 고통, 영원한 멸망, 심판의 부활, 고통받는 곳, 바깥 어두운 곳, 벌레도 죽지 않는 곳,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 영원한 형벌 등의 표현은 지옥을 가리키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용하신 것들입니다. 오늘날 복음 사역자는 결코 지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무시하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지와 부정직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범대로 가르치려는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서를 읽어 보면 누구나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4)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옥의 실재 혹은 영원성을 부정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천국의 복락도 사라지고 맙니다. 
 
  불경건하고 악하게 죽은 사람이 영원히 분리되어 갈 곳이 없단 말입니까? 죽은 후에는 모든 사람이 뒤섞여 한 무리가 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천국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닙니다! 서로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옥이나 징벌이라는 용어가 필요하지 않은 때가 온단 말입니까? 악인도 천국에 들어가게 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성령의 성화도 다 필요 없고 무시해도 된단 말입니까? 신자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성화되고, 천국을 위해 준비된다고 성경이 말합니다. 지옥에도 성화가 있다는 말은 도무지 보지를 못했습니다. 근거 없고 비성경적인 이론은 집어치우십시오! 성경은 지옥의 영원성을 천국의 영원성만큼이나 분명히 확증하고 있습니다. 지옥이 영원하지 않다면, 하나님과 천국도 영원하지 않다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영벌"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가 "영생"(마25:46)이라는 말에도 동일하게 쓰이고 있고, 사도 바울도 "영원하신 하나님"(롬16:26)이라고 말하면서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말은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반응이 전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과연 성경적인가, 진리인가 하는 것만 중요합니다. 저는 감히 주장합니다. 지옥의 실재는 성경의 진술과 분명히 일치합니다. 신자는 자신이 잃어버린 자로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음을 자주 상기해야 합니다. 
 
  지옥에 대한 명백한 가르침을 부정하고, 듣기 거북하다고 지옥을 부정하기는 쉽습니다. "편협한 견해", "구식 개념", "지옥불 신학" 같은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오늘날에는 좀더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말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성경만큼만 넓어지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본성적으로 싫어하는 부분은 다 제해 버리고,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부분을 거부하는 사람이야말로 편협한 신학자입니다. 
 
  제가 지금 무덤덤하게 지옥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저는 아무리 악한 죄인에게라도 구원의 복음을 기쁘게 전하고 싶습니다. 가장 악하고 방탕한 삶을 살다가 임종의 자리에 누운 사람에게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당신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고 기꺼이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천국뿐 아니라 지옥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의 구원뿐 아니라 멸망도 가르치고 있다고 주저하지 말고 말하라고 합니다.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도 침묵하는 파수꾼은 태만함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못합니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낫고 있다고 말하는 의사는 거짓 친구입니다. 설교에서 지옥을 언급하지 않는 목회자는 신실한 목회자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진리를 감추는 것을 어찌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처한 위험을 소상히 알려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 아니겠습니까? 경건하게 살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돌이키지 않는 사람이 맞을 미래를 감춰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면 이는 마귀를 돕는 것입니다(겔18:4, 20). 세례를 받고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경박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지옥에 대해 분명하게 들어본 일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목회자가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지옥에 관해 더 신실하게 설교하고 촉구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섰을 것입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이 점에 있어서 죄책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애정과는 다른 끔찍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비에 대해서는 말하면서도, 심판은 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대해 많이 설교하지만, 지옥은 거의 설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설교를 듣고 "저급하고, 야비하고, 광신적"이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과 같은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은 결코 잘못될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잘 들으십시오. 자신의 신학에 지옥을 포함시키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계시는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심판의 하나님이시라는 원리를 분명히 하십시오. 천국의 지복의 기초를 놓으신 영원한 경륜으로 비참한 지옥의 기초를 놓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십시오. 용서받지 못하고 새롭게 되지 못하고 죽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전으로 결코 나아갈 수 없고, 영원히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이런 사람들은 천국을 누릴 수도 없고, 천국에서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 자리로 가야 합니다. 지옥으로 말입니다. 오, 오늘날과 같은 불신앙의 시대에 성경 전체를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건강하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간청합니다. 지옥의 실재와 영원성에 대해 분명히 가르치지 않는 목회를 조심하십시오. 이런 목회가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해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여러분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믿음을 견고히 하기는커녕, 여러분을 어르고 달래서 잠들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어떤 부분이라도 누락한다면, 그것은 곧 전체를 마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천국의 기쁨에만 편파적으로 매달리고, 주님의 공포와 지옥의 비참함을 말하지 않는 설교는 완전히 잘못된 설교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할지는 몰라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에 대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설교를 들려주십시오. 너무 호되고 거슬리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고, 사람을 두렵게하는 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위대한 목적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임박한 진노를 피하"게 하는 것입니다(마3:7, 눅3:7).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죄에서 떠나고 지옥으로부터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 마십시오. 신앙 있는 그리스도인이 현재 자신의 모습보다 자기 영혼을 더 염려하고 두려워할 수 있다면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이고 싶다면, 자신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자주 생각하십시오. 행복하게 끝날지 아니면 비참하게 끝날지 말입니다. 의인의 죽음이 될지, 롯의 처와 같은 소망 없는 죽음이 될지 말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사람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설교를 들어야 할 때가 옵니다. 마지막 기도를 드려야 할 때가 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읽어야 할 때가 옵니다. 의미와 바람과 희망과 의도와 결심과 의심과 머뭇거림 같은 것이 다 끝날 때가 마침내 옵니다. 그때가 되면 이 세상을 등지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지혜로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때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항상 실없이 지낼 수 없습니다. 진지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옵니다. 자기 영혼에 대한 관심을 영원히 미룰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야 할 때가 옵니다. 언제까지나 흥얼거리고, 춤추고, 먹고, 마시고, 옷을 고르고, 책을 읽고, 농담하고, 꾀를 부리고, 궁리하고, 계획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짱이가 항상 빈둥거리며 지낼 수는 없습니다. 마침내 차디찬 겨울 저녁이 이를 것이고, 그러면 더는 빈둥거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신앙을 벗어던질 수도 있고, 하나님의 사역자의 권고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싸늘한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직접 오셔서 모든 것을 정산하자고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결말은 어떻습니까? 롯의 처의 결말과 같이 절망적인 것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 간청합니다. 제발 이 물음들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여전히 세상에 마음을 둔 채,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양심을 억누르지 마십시오. 일상의 삶과 습관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어리석은 기대로 죄에 대한 확신을 질식시키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는 강물 같은 자비가 있지만, 이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회개하는 신자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죄인을 향한 측량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이 있지만, 이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요10:27). 이 사랑에 마음을 두도록 애쓰십시오. 알고 있는 모든 죄를 청산하십시오. 담대하게 세상으로부터 나오십시오. 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현재와 영원을 위해 주저 없이, 그리고 온전히 주 예수께 여러분 자신을 던지십시오.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 영혼의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좋게 보이고 사랑스러워도 내려놓으십시오.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여러분과 천국을 가로막고 있다면 다 버리십시오. 낡고 파선한 이 세상은 여러분 발 아래로 빠르게 가라앉고 있습니다. 지금 절실한 일은 구명정에 몸을 싣고 안전하게 해안에 이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분명히 하기 위해 힘쓰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천국만큼은 분명히 하십시오. 롯의 처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지금보다 무수한 조롱을 받고, 극단적인 사람이라고 비난받는 것이 더 낫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