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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해야 할 이단적인 가르침! IV (변승우 목사님의 "너 자신을 알라!"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6.06.08|조회수26 목록 댓글 0

  ■ 경계해야 할 이단적인 가르침!

 

  2. 처음에 아담은 혼만 있고 영은 없는 상태였다?

 

  (2) 고린도전서 15장 45-46절에 대한 곡해!

 

  고린도전서 15:45-46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김명현 박사는 창세기 2장 7절에 이어 이 구절을 아담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혼만 있고 영은 없었다는 증거로 제시합니다. 이 구절에도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생령"(생혼)이 나옵니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혼"을 뜻하는 "프쉬케"로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히브리어 네페쉬(혼)의 역어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동의어입니다. 

 

  이처럼 두 곳 다 아담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이곳에서는 살아 있는 '혼'과 반대로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락없이 김명현 박사의 주장이 옳아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문자적으로 보면 틀림없이 옳은 것 같은데 왜 바른 것이 아닐까요?

 

  1) 고린도전서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이것은 아담은 혼만 있고 예수님은 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절의 의미를 옳게 파악하려면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바울은 바로 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0-44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영의 몸도 있느니라."

 

  처음과 끝 부분을 주목하십시오. 보이는 것, 즉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두 세상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바로 하늘과 땅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기에 적합한 두 가지 몸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여기서 "육의 몸"은 육에 몸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육적인 세상을 살기에 적합한 몸을 뜻합니다. 또, 영의 몸도 영의 몸이 아닙니다. 즉, 영체가 아닙니다. 하늘나라에서 살기에 적당한 부활체를 뜻합니다. 육의 몸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5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또한, 데이비드 갈런드는 정리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자연적 몸이 있다면, 또한 영적인 몸도 있다.' 이 대조는 이 몸들이 적절할 수 있는 장소들 사이의 양극성, 곧 지상적인 것과 천상적인 것을 가정한다. ... 첫 번째 몸은 창조에서의 존재에 적절하다. 두 번째 몸은 장차 올 세상에서의 존재에 적절할 것이다."

 

  이처럼 두 세상과 거기에 적합한 두 가지 몸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음 45절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이 구절은 "기록된 바"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문구는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할 때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영과 혼이 아니라 두 가지 몸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45절에서 육의 몸과 영의 몸의 두 가지 근거가 아니라 한 가지만 제시했습니다. 바울은 오로지 육의 몸의 근거가 되는 창세기 2장 7절을 인용했습니다. 저는 항상 이 점이 이상했습니다. 그러면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가 44절 후반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육의 몸이 있으면 영의 몸도 있다! 바울은 이것을 기정사실로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의 몸의 근거를 제시하면 영의 몸도 있다는 것도 자동으로 증명됩니다. 그래서 육의 몸의 근거 하나만 제시를 한 것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45절 전반절을 읽어보십시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우리는 이미 이 구절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여기서 "생령"은 영이 아니라 혼입니다. 그렇다고 아담에게 영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영에 이어 혼이 창조됨으로 인간 창조가 완성되어 다른 동물들처럼 생명과 의식을 가지고 활동하는 살아 있는 존재(생명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전에 자세히 설명했으므로 다시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홍인규 교수님의 글을 인용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명 있는 존재'(living being)가 되게 하셨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15:45a; 참조. 창 2:7). 여기 '프쉬케 조사'는 한글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생령'(개역개정), '산 영'(표준새번역개정), '생명 있는 존재'(공동번역). 그런데 가장 적절한 번역은 '생명 있는 존재'(living being)이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약간 다른 의미로 창세기 2장 7절을 인용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육의 몸의 근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이 세상에 적합한 육의 몸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가 창조될 때부터 아담과 그 후예들은 육의 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세상에 적합한 육의 몸의 근거로 창세기 2장 7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담에게 혼만 있고 영은 없었다는 것과 무관한 표현입니다. 

 

  다음으로, 앞에서 한 설명을 염두에 두고 45절 후반절을 보겠습니다.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아담과 달리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문제는 "영"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먼저 "살려주는"이라는 표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과연 '살려주는'은 무슨 뜻일까요? 많은 이들이 거듭나게 한다는 뜻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고, 거듭남이 아니라 몸의 부활을 다루고 있는 곳입니다. 때문에 데이비드 갈런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죽은 자들을 일으키는 것과 동의어다(롬 4:17; 8:11; 고후 3:6)."

 

  또, 바울은 그 전에 이미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21-22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또한, 44절에서 45절을 문맥에 주의하면서 읽어보십시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여기서 "육의 몸"은 아담에게 물려받은 몸이고, "신령한 몸"과 "영의 몸"은 예수님이 주실 부활체입니다. 그것을 44절에서 말한 후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는 것은 장차 우리 죽은 몸을 부활시켜서 신령한 몸을 갖게 해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아담을 통해서 육의 몸을 받은 것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신령한 몸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살려주는"이 부활을 뜻하는 것이 맞지요!

 

  이로 보건대, 바울의 의도는 아담과 달리 예수님은 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은 동물들처럼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몸을 가진 존재이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죽지 않는 신령한 몸을 지니셨을 뿐 아니라 똑같은 몸을 우리에게 주실 분이라고 설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따라서 "살려주는 영"이라는 표현은 결코 예수님이 아담과 달리 영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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