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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해야 할 이단적인 가르침! VI (변승우 목사님의 "너 자신을 알라!"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6.06.10|조회수33 목록 댓글 0

  ■ 경계해야 할 이단적인 가르침!

 

  2. 처음에 아담은 혼만 있고 영은 없는 상태였다?

 

  (2) 고린도전서 15:45-46절에 대한 곡해!

 

  2) 고린도전서 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이 구절에 나오는 "신령한 사람"은 원어로 "프뉴마티코스"이며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영에 속하는"(pertaining spirit), 또는 "영적인"(spinitual)을 뜻합니다. 또 "육의 사람"은 원어로 "프쉬키코스"이며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영혼에 속하는, 육적인, 천성적인"을 뜻합니다. 그래서 신령한 사람은 영을 가진 예수님이고 육의 사람은 혼만 있고 혼에 속하는 아담을 뜻한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김명현 박사의 주장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앞 절에서 바울은 인류의 두 조상에 대해 말했습니다. 생령이 된 아담은 몸과 관련해서 인류에게 육의 몸을 물려준 조상입니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다시 살려서 영의 몸을 갖게 해주실 조상입니다. 바울은 46절 이하에서도 두 조상에 대한 설명을 계속합니다. 

 

  고린도전서 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바울은 이 구절에서 아담은 육의 사람이고 예수님은 신령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담은 혼만 있고 예수님에게는 영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을 같은 단어들을 사용한 고린도전서 2장 14-15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프쉬키코스)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도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프뉴마티코스)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이곳에서 바울은 똑같은 단어 '프쉬키코스'와 '프뉴마티코스'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프쉬키코스'("육에 속한")과 '프뉴마티코스'("신령한 자")가 '혼만 있고 영은 없는' 혹은 '영이 있는'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담이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그 시대 사람들에 대한 언급인데, 그들 모두 영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46절도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육의 사람"과 "신령한 사람"이 혼만 있거나 영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그 뒤에 나오는 구절들을 통해 그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6절의 "육의 사람"의 "육"과 이 구절의 "땅" 혹은 "흙"은 서로 그 뜻이 통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의 몸("육")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를 통해, 우리는 "육의 사람"이라는 표현이 혼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흙으로 빚은 몸과 관계있는 표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아담을 "육의 사람"(46절)이라고 부르다가 "흙에 속한 자"(47절)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아담은 왜 육의 사람입니까? 그것은 혼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땅에서 난, 즉 흙으로 만든 흙에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이 신령한 사람인 이유 역시 영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흙이 아니라 하늘에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흙에서 난 아담의 몸은 결국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난 예수님의 몸은 영원무궁합니다. 폴 가드너는 47절을 주해하면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잘 설명했습니다. 

 

  "앞에서 바울은 창세기 2:7b을 인용했으나 지금은 2:7a을 인유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바울은 아담을 창세기 장조 기사에 묘사된 대로 생각한다. 하나님은 아담을 땅의 흙으로 지으셨다. 이것은 아담을 땅에서 살도록 지음받은 존재로 규정한다. 사실 창세기 2:7 자체는 지음받은 사람과 그가 살아야 할 땅의 이런 긴밀한 연계성을 계시한다. '사람'('아담')은 '땅의 흙'(아다마)로 형성된다. 확실히 '아다마'로부터 취해진 '아담'은 '아다마'를 경작해야 하고, 결국은 '아마마'로 돌아가야 한다(창 3:19). 그러므로 아담이 '땅에서 난 자'라는 말은 그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관념도 함축한다.

 

  따라서 바울이 창세기 2:7을 인유하는 것은 여기서 두 '몸'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아담은 '땅'과 필수적으로 관련된 존재로 지음받았다. 마찬가지로 사람이신 그리스도도 지금 자신의 새로운 실존 영역과 필수적으로 관련되는 방식으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이'로 묘사되고, 이것은 그리스도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실존에 적합한 분으로 규정한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은 썩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반영하는 몸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46절은 아담은 혼만 있고 예수님은 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견해는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며 매우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3. 우리가 영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김명현 박사는 영은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반복해서 주장합니다. 이것은 매우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 그 증거로, 이미 설명했으므로 설명하진 않겠지만, 전도서 11장 5절은 인간의 영이 태어나기 전에 주어진다고 말씀합니다. 

 

  "바람(루아흐)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또, 성경은 인간의 영이 하나님이 지은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사야 57:16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그것도 천지창조 때 지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스가랴 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루아흐-영)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만약 영이 하나님의 영이고 살 동안 빌려준 것이라면 하나님이 지은 것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지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또, 김명현 박사는 혼은 남에게 주거나 남의 혼을 받을 수 없지만 영은 다른 이에게 주거나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영을 서로 공유할 수 있다는 해괴한 주장을 펼칩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 혼 육이 결합되어 존재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입신처럼 매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평생 몸에서 분리되지 않습니다. 또, 영과 혼은 죽은 후에도 분리되지 않으며 서로 분리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더구나, 영이 몸에서 떠나는 것이 죽음입니다.

 

  야고보서 2:26 "영혼(프뉴마)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 외에도, 여러 곳에 그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욥 17:1, 34:14-15, 시 31:5, 104:29, 146:4, 전 12:7, 행 7:59). 그런데 어떻게 영이 들어갔다 나왔다 합니까? 사람이 수시로 죽었다 살아나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어이가 없는 주장입니다. 

 

  또한, 김명현 박사는 성경에서 영을 분별하라고 말씀한 이유가 사람들이 서로 영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구절은 사람의 영을 분별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거짓 선지자'라는 말에 주의하십시오.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예언했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악한 영들에 의해 거짓 예언(혹은 거짓 가르침)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배후의 영들을 분별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존 스토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적확(的確-확실確實함, 틀림이 없음)하게 뜻을 새기면, 선지자는 어떤 영의 대변자이다.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2절), 곧 6절에서 '진리의 영'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성령의 대언자이다.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미혹의 영'(6절 하반절)의, 도는 '적그리스도의 영'(3절)의 대언자 즉 거짓 영을 받은 선지자들'(N. E. B.)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자의 배후에는 하나님 아니면 마귀가 있는 법이다. 우리가 어떤 영들을 신뢰하기에 앞서 먼저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 보아야만 한다. 정적 문제 되는 것은 그들의 기원이다."

 

  그런데,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1절의 '영'은 단수지만 '영들'은 복수다. 때문에 많은 영들을 뜻한다. 그래서 '영들'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과 미혹의 영인 적그리스도의 영이 아니라 천사들과 사람들의 영을 뜻하낟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로버트 야브루는 "복수의 영이 꼭 사악한 존재를 가리킬 필요는 없다. 신자를 친절하게 돕는 역할을 하는 천사를 '영들'로 간주할 수도 있다(히 1:14; 참고, 1:7). "고 했습니다.

 

  또한, 스테핀 스말리는 2절의 "하나님의 영"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토 프뉴마 투 데우("하나님의 영")라는 구문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자연스럽게 번역된다. 이럴 경우 그 의미는 '그러므로 너희는 성령(에 의해 한 사람이 영감 된 것인지 아닌지를)을 인식할 수 있다'가 된다. ...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영'(토 프뉴마 투 데우)이라는 표현은 '형, 하나님께로부터 나온'을 의미할 수도 있다. 즉 '영적 기원이 하나님께 있는 사람'(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은 JB에 의해 채택된 번역(you can tell the spirits that come from God)이다."

 

  김명현 박사의 주장과 어울리지요! 그러나, 1절에서 "영들"이라는 복수를 쓴 것은 단순히 두 가지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3절에 보면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이 사람들의 영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영"을 뜻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또한, 우리가 분별해야 하는 "영들" 즉 두 영이 6절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이 중 진리의 영은 성경에서 성령을 뜻하고(요 14:17), 미혹의 영은 귀신들을 뜻합니다(딤전 4:1). 그러므로 1절의 "영들"과 2-3절의 "영"은 천사나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뜻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요한일서 4장 1절이 사람들의 영을 분별하라고 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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