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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궁금해했던 영과 혼! (변승우 목사님의 "너 자신을 알라!"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6.06.11|조회수24 목록 댓글 0

  ■ 평생 궁금해했던 영과 혼!

 

  저는 여러분처럼 영과 혼에 대해 평생 궁금해하며 살았습니다. 알고 싶었지만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너무 어려워 감을 잡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오래전에 제가 영과 혼에 대해 짧게 메모해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메모에서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그게 계기가 되어 용기를 내서 영과 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 저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난관을 거쳤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로 전격적으로 영과 혼을 정확히 구별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1. 최초의 힌트

 

  제가 영과 혼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실마리가 될 만한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영을 가지고 있다. 동물은 혼만 가지고 있다. 사람은 영과 혼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영혼' 중 '영'이 무엇인지 알려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혼'이 무엇인지 알려면 동물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영혼 중 영이신 하나님과 일치하는 것은 영이고 동물의 혼과 일치하는 것은 혼이다!'

 

  어떻습니까? 기발하고 깔끔하지요! 저는 즉각 영이신 하나님의 특성을 통해 사람의 영이 무엇인지 정리하고, 동물의 혼의 특성을 통해 사람의 혼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문제는 지정의였습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처럼 대부분 지정의가 사람의 혼을 구성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신데도 지정의가 있습니다. 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지정의가 영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반대로, 동물에게도 지정의가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정의가 혼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저는 영과 혼에 모두 지정의가 있다고 추론했습니다. 영에 있는 지정의는 신적인 것으로 인격을 형성하고, 혼에 있는 지정의는 동물적인 것으로 생존을 위한 것이며 인격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동물들의 행동은 죄가 되지 않고 심판을 받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사람이 영과 혼이 결합된 영혼으로 존재하듯, 사람 안에 신적인 지정의와 동물적인 지정의가 하나로 연합된 지정의가 존재한다고 추론했습니다. 존재할 때는 하나가 되어 존재하지만, 개념상으로는 신적인 지정의는 영의 요소로, 동물적인 지정의는 혼의 요소로 분류가 가능하다고 추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과 혼을 구분할 수 있고 삼분설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가정하에 정리하면, 영과 혼이 무엇인지 분명한 답이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름 일리가 있고 기발하지요!

 

  저의 이런 추론은 지정의가 혼에 속한 것이라는 설명을 들을 때 느끼게 되는 혼란, 즉 '하나님과 천사와 마귀도 영이지만 지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나? 그런데 왜 지정의가 영이 아니라 혼의 요소라고 하나?라는 해묵은 의문을 해결해줍니다. 그 점이 장점이고 매력입니다. 저는 한동안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영과 혼에 대한 의문이 드디어 풀렸다고 기뻐했습니다. 

 

  2. 최대의 걸림돌

 

  그러나 저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곧 복병이 나타났는데, 다음 구절들이 그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고린도전서 14:14-15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이 구절들이 떠오르자, 저는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고 완전히 절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는 부분을 그때까지 혼이 모르는 것을 영은 알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 외에 고린도전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이라면 모를까 누가 이 구절에 나오는 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구절들은 영과 혼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할 정도로 태산 같은 장애물입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큰 혼란을 일으키고 영이 무엇인지 오리무중이 되게 합니다. 

 

  (1) 이 구절들이 철벽처럼 느껴지는 이유!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 의하면, 방언은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비밀입니다. 자기도 방언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사람의 영은 '저정의'의 '지'를 초월한 초월적이고 신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어? 영은 마음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난 봐! 영은 마음과 온전히 다른 어떤 것인가 봐! 그렇다면 마음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도대체 영이 무엇이기에 혼이 모르는 것을 알고 기도할까? 더구나, 마음이 모르는 것을 영이 알고 있다면 영에 혼에 있는 것과 다른 또 다른 지정의가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그 지정의는 우리 혼이 인식할 수도 없는 지정의고? 그렇다면 이렇게 신비하고 베일에 싸여 있는 영을 도대체 우리가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리하여 영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게 되고 영과 혼에 대한 연구는 미궁에 빠져버립니다. 

 

  하나님도 영이고, 천사도 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자신이 모르실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그런데 왜 사람은 영으로 즉 방언으로 기도할 때 그 내용을 자신이 모를까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을 파악하는 것이 오리무중이 되어 버립니다. 

 

  무엇보다, 이 구절은 영에도 지정의가 있고 혼의 지정의와 결합되어 있다는 처음 해석과 충돌을 일이킵니다. 또, 어떤 주석도 이 구절에서 발생하는 이런 궁금증을 다루거나 속시원하게 답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막다른 골목의 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구들은 제게만 걸림돌이 아닙니다. 이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에게도 걸림돌입니다. 이분설로는 이 구절을 도무지 소화할 수가 없습니다. 이분설에 의하면 영이 곧 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들에 의하면 영이 기도하는 것을 혼이 모릅니다. 그러니 이분설일 리가 없지요! 그래서 이분설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고린도전서 14장 2절을 억지로 다른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찰스 하지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영(spirit)은 인간의 지력과 구별된 것으로서의 인간 자신의 영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은 혼과 영을 별개의 뚜렷한 기능들로 구별하지 않는다. 프뉴마는 인간의 본성의 아주 높은 영적인 능력이 아니라 성령이시다(참조, 2:14)."

 

  고든 피도 "방언으로 말한 내용은 '성령으로' 말한 비밀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크레이그 블롬버그도 이렇게 썼습니다. 

 

  "'비밀'(2절)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단순히 가리킨다. 문법적으로 NIV의 각주("성령으로")가 NIV 본문보다("그의 영으로") 더 그럴듯하다. 헬라어에서 '그의'에 상응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데이비드 갈런드도 이렇게 썼습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영으로 비밀들을 말하는데, 이 '프뉴마티'는 '사람의 영으로'('정신으로'와 반대되는)나 '성령에 의해서'를 의미할 수 있다. 피는 후자를 주장하는데, 12장 7-11절에서 방언이 '하나님의 영의 나타나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키스트메이커 또한 비밀들을 드러내는 분은 성령이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이 구절의 "영"이 사람의 영이 아니라 성령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프뉴마'가 사람의 영뿐 아니라 성령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만 떼어놓고 보면 이런 해석이 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해석은 14절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방언할 때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나의 영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찰스 하지도 이 점을 인식했고 시인했습니다. 

 

  "이 해석에 대한 큰 반대는 나의 영과 나의 마음(understanding)이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되어야 하다는 것이다. 만일 후자가 내 자신의 이해(또는 마음)을 의미한다면 전자는 내 자신의 영을 의미해야 될 것이다. 성령은 나의 영이라고 결코 불리어지지 않고 불리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성령은 인간이 영과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고든 피도 "현재 맥락에서 '나의 영이 기도한다'라는 다소 어려운 표현은 '나의 영(성령)이 기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소유격 '나의'와 이에 대조를 이루는 '나의 마음'은 모두 바울이 여기서 기도하는 자신의 '영'을 가리킨다."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둘 다 "나의 영"을 다른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이에 대해 찰스 하지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상기의 해석은 나의 영이 한 인격으로서의 성령을 의미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나타나심으로서의 성령을 의미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것이 성령이 내 속에 그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서 나의 영은 나의 영적인 은사이다."

 

  또한, 고든 피도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세 가지 다른 구절이 결합된 증거에 근거해 볼 때(12:7-11, 14:2와 16), 바울이 방언 말하는 것을 신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로 이해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는 성령의 영감을 받은 표현으로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이다."

 

  이처럼 둘 다 "나의 영"을 12절에 나오는 "신령한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프뉴마)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들은 "나의 영으로"가 성령을 가리킬 수는 없으나 자기가 받은 은사 즉 방언의 은사를 가리킬 수는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억지로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일부 번역본들은 이들의 주장에 맞게 고린도전서 14장 2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표준새번역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는 성령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동번역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성령의 힘으로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4장 14절까지 그렇게 번역한 번역본은 하나도 없습니다.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도 예외가 아닙니다.

 

  표준새번역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하지만, 내 마음은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공동번역 "만일 내가 이상한 언어로 기도한다면, 기도하는 것은 내 심령뿐이고 내 이성은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구절에서 "나의 영"은 "나의 마음"과 대조됩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뜻은 성령의 나타남이 아니라 나(사람)의 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성경 어디에도 성령의 은사를 나의 영이라고 부른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끼워 맞추기식의 이 엉터리 해석을 당연히 거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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