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Q&A 게시판

평생 궁금해했던 영과 혼! II (변승우 목사님의 "너 자신을 알라!"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6.06.11|조회수30 목록 댓글 0

  ■ 평생 궁금해했던 영과 혼!

 

  2. 최대의 걸림돌

 

  (2) 정말로 방언할 때 우리 영이 그 의미를 알고 있나?

 

  우리는 영과 관련이 있는 방언에 대한 구절들을 학자들이 어떻게 곡해하고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그 구절들이 그런 뜻이 아니라면 어떤 뜻일까요?

 

  저도 그것이 알고 싶어서 주석들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제대로 설명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 구절은 해석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심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도 세 번이나 시행착오를 겪었고, 네 번째에 겨우 옳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고린도전서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방언은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언할 때 우리 영이 알고 말하느냐? 모르고 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했기 때문에 영은 그 뜻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몰라도 영은 안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이와 다르게 생각하는 학자나 목사를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구절을 연구할 때, 처음으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우리 영이 뜻을 모르고 말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성경적인 증거들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힘을 들었지만, 기대 이상의 많은 증거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 성경에 영은 방언의 뜻을 안다는 증거가 없다.

 

  우리 모두 방언할 때 영은 그 뜻을 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영은 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4:2-3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우리는 2절의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라는 표현 때문에 영은 방언의 내용을 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영이 말한다고 했지 영이 안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본래 방언은 알고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오순절 날 방언할 때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알아들었지만, 정작 방언하는 자들은 그 뜻을 몰랐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모두 이 부분을 영이 안다는 의미로 단정했을까요? 그것은 마음으로 기도할 때 기도해야 할 내용을 알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으로 기도할 때도 영이 기도하는 내용을 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발성의 은사지 계시의 은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언할 때 영에 알려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다음, 3절에 보면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라고 쓰여 있습니다. 방언과 예언 둘 다 성령에 의해 말하는 은사입니다. 그런데 방언은 하나님께 말하고, 예언은 사람에게 말하는 은사입니다. 예언은 사람에게 말하는 은사이므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셔서 말할 내용을 알려주십니다. 반대로, 방언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므로 하나님만 알아들으시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 영에 그 내용을 알려줄 필요가 없고, 실제로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방언할 때 영이 그 뜻을 알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외에도, 13-16절이 중요한 부분인데 거기에도 영이 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방언은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도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통역이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여기서 "방언을 말하는 자"는 그 사람 전체를 통칭합니다. 그 사람의 영과 혼 모두를 뜻합니다. 그런데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혼은 물론 영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방언할 때 영은 그 뜻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14-15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이 안에도 영은 방언의 뜻을 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단서나 증거가 전혀 없습니다. 14절에서 '마음'은 통상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카르디아'가 아니라 이해력을 뜻하는 '누스'라는 단어입니다. 방언기도가 이해력과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다음, 15절에 대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구절을 두 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는 말 그대로 이런 의미입니다. '나는 두 가지 방법으로 기도한다.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한다.' 그러나 나는 이 구절이 또한 더 깊은 적용이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당신이 방언으로 기도하거나 찬양할 때 그 모든 내용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성령님께서는 당신이 방언으로 말한 것에 대한 통역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영과 마음 모두로 성령의 영감에 의해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구절이 단지 방언통역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5절부터 13절까지 바울이 계속 방언통역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4:5-13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절은 통역이 없는 공적 방언은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바울은 방언통역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으로 기도할 뿐 아니라 자주 마음이 그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명하지 않으면 그것이 소용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리라"가 아니라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는 표현도 이것을 뒷받침해줍니다. 여기서 "열매"는 사역적인 효과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15절은 방언과 방언통역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찰스 하지와 클린턴 아놀드와 데이비드 갈런드뿐 아니라 김세윤 교수님도 이것이 방언통역을 뜻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들은 이 구절이 마음으로 하는 기도도 포함할 수 있지 않느냐? 라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16-17절을 보십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여기서 "영으로 축복할 때에"와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라는 표현은 둘 다 방언을 뜻합니다. 방언으로 말하고 통역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또, 12-13절에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하면서 "그러므로 ...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14장 전체가 은사의 공적 사용을 다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에 대해 다룬 것입니다. 또, 15절에서도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도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라고 했는데, 영으로 하기도 하고 마음으로 하기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기도나 찬송을 하고 '또'(카이, 그리고) 곧 마음으로도 기도한 찬송을 하낟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종류의 기도가 아니라 통역입니다. 또한, 15절에서 영으로 기도나 찬송을 하는 것이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방언하는 것을 뜻한다면 16-17절에서 이렇게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15절은 가정이 아니라 교회에서 하는 기도와 찬송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닌데 회중 앞에서 방언과 일반기도를 병행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회중 앞에서는 통역이 따르지 않는 방언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15절은 단지 방언통역을 뜻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15절에 나오는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와 16절의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라는 표현들 역시 영이 그 내용을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표현들은 2절에 나온 영으로 말한다는 것의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으로 말하느냐?'를 말한 것일 뿐, 영이 그 뜻을 안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방언통역이 어디에 임합니까? 당연히 영입니다. 영에 임한 것을 마음이 캐치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방언통역은 예언과 같습니다. 그리고 예언이 영에 임하는 것처럼 방언통역도 영에 임합니다. 이것 자체가 방언할 때 영이 그 뜻을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영이 알고 있다면 영에 그 내용을 계시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 설명해드린 것처럼, 방언에 대한 구절들 안에 방언할 때 영이 그 뜻을 안다는 증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오래도록 그렇게 추측하고 단정해온 오해일 뿐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