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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궁금해했던 영과 혼! III (변승우 목사님의 "너 자신을 알라!"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6.06.12|조회수26 목록 댓글 0

  ■ 평생 궁금해했던 영과 혼!

 

  2. 최대의 걸림돌

 

  (2) 정말로 방언할 때 우리 영이 그 의미를 알고 있나?

 

  2) 우리가 오랫동안 단체로 오해한 방언의 은사!

 

  방언은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인데, 영이 그 비밀을 말만 하느냐? 알고 말하느냐? 가 우리가 다루고 있는 쟁점입니다. 저는 방언할 때 우리 영이 그 내용을 모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을 방언의 은사 자체가 보여줍니다. 

 

  방언이란 무엇일까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방언: 오순절 다락방 경험을 넘어』라는 책에서 방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4:14의 확대번역본은 방언기도에서 성령님과 우리의 관계를 더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내가 만일 [모르는]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내 안의 성령에 의해] 기도하거니와 ...' 다시 말합니다. 당신이 방언으로 기도할 때, 당신 안의 성령에 의해 당신의 영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당신 안의 성령님은 당신에게 말을 주시고, 당신은 당신의 영에서부터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말을 주시면, 당신은 말합니다."

 

  옳습니다! 방언은 단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은사입니다. 그것이 방언입니다! 한마디로, 방언은 계시의 은사가 아니라 발성의 은사입니다. 

 

  사도행전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것은 방언에 대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4절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구절은 방언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으면 성령님이 말하게 하십니다. 그때 그것을 따라 말하는 것이 방언입니다! 즉, 방언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은사입니다. 

 

  그럼 성령님이 어떻게 말하게 하실까요? 성령 충만을 받으면 성령님이 영에서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한국어가 아니라 다른 말이 나오거나, 어떤 단어들이 떠오르거나, 입술이 떨리고 혀가 말린다거나, 평소와 달리 발음이 새면서 자꾸 다른 말이 나옵니다. 이것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입니다. 이때 억지로 또박또박 한국어로 말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혀를 맡기고 그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모두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때 성령님이 말할 내용을 가르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언어로 말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의 전부이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즉, 성령님이 방언의 내용을 알게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영이 알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도 모르지만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말로 기도하는 것이 바로 방언입니다!

 

  한편, 방언이 터질 때 성령님이 우리 영에서부터 역사해서 영이 말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방언이 영으로 하는 기도일 뿐(고전 14:2) 영이 그 뜻을 알고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만약 방언할 때 영이 그 뜻을 안다면 왜 꼭 영만 알아야 합니까? 혼도 알면 더 크게 유익합니다. 진짜 필요한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자신의 덕을 세우는 데도 유익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영만 알게 하고 혼에게 비밀로 하십니까?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언할 때 영은 그 뜻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방언은 영으로 기도하는 것인데, 만약 영이 그 뜻을 안다면 방언이 아니라 한국어로 기도해도 되지 않을까요? 한국어로 기도해도 영으로 하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굳이 방언으로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방언기도 자체가 필요 없어집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이 영으로 아는데 무엇 때문에 다른 말로 기도합니까? 영이 모르기 때문에 다른 말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영도 그 내용을 모른다는 도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영도 모르고 성령님만 아시는 것을 다른 언어 즉 방언을 통해서 표현하게 하시는 것이 방언기도입니다. 

 

  끝으로, 방언통역이 무엇입니까? 과연 그것이 나의 영이 알고 있는 것을 나의 혼에게 계시해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방언통역은 영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알고 계시는 것을 계시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아시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때는 계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 영이 알고 있는 것을 나의 혼에게 가르쳐줄 때는 계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때도 필요하다면 신자건 불신자건 매일 수많은 계시들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단지 영이나 혼이 아니라 영혼으로 존재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방언할 때도 그 뜻을 모르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3) 방언할 때 우리 영도 모름을 보여주는 더 많은 증거들!

 

  저는 이미 설명해드린 것으로 증거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 외에도 더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 사람의 영과 혼 사이에는 비밀이 없다!

 

  한 사람의 영과 혼 사이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왜 그런지 제가 그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사람은 영과 혼이 하나로 합해져서 영혼으로 존재합니다. 영혼이 바로 '나'입니다. 그러므로 영과 혼 사이에는 비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또, 한 사람의 영혼에는 의식이 하나뿐입니다. 의식이 두 개면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육이 느낀 감각도 하나의 의식이 자각을 하고, 혼이 배운 것도 하나의 의식이 자각을 하고, 영에 임한 계시도 하나의 의식이 자각을 합니다. 의식은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이 아는 것을 혼이 자각하지 못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사람은 영 혼 육이 하나로 결합되어 한 사람으로 존재합니다. 이 중 영과 혼의 결합이 혼과 육의 결합보다 더 긴밀합니다. 때문에 사람을 셋으로 구분할 때 영 혼 육으로, 둘로 구분할 때는 영혼과 육체로 구분합니다. 심지어, 임종 때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때도 영과 혼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는 혼과 몸보다 영과 혼이 훨씬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생각해보십시오. 육의 오감이 무엇을 감지할 때 혼이 즉시 인지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영이 무엇을 아는데 혼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 할 때 혼이 모르는 것을 영은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 경험상 영이 깨닫는 것을 바로 혼이 인지한다.

 

  우리가 성경 보고, 설교 듣고, 기도하거나, 찬양하면 마치 방언을 할 때처럼 영이 서서히 활성화됩니다. 그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으로부터 지혜나 계시가 우리 영에 임합니다. 

 

  이때 그것을 우리 영만 알고 혼은 모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혼이 동시에 그것을 인식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경험입니다. 이런 우리의 경험은 영과 혼 사이에 비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영에 감동만 와도 바로 혼이 느낍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이 알고 기도하는 것을 혼이 모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간단하지만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방언할 때 우리의 영이 그 뜻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예언을 위한 계시가 영에 임할 때 혼도 그것을 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은 주로 방언과 예언을 다뤘습니다. 이 중 방언은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아들으면 됩니다. 그래서 뜻을 가르쳐주시지 않기 때문에 영이 알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예언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언하는 사람의 영에 예언할 내용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예언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과 예언 모두 성령에 의해 말하는 것인데, 방언은 모르는 상태에서 말하는 은사고, 예언은 알고 말하는 은사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언이 어디에 임합니까? 우리의 영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영을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에 임하는 예언적인 계시를 혼이 모릅니까? 당연히 알지요. 만일 혼이 모르면 어떻게 예언할 수 있겠습니까? 영에 알려진 것이 즉각 혼에 알려지기 때문에 예언사역이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영이 아는 것이 혼에게 알려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이 방언의 의미를 안다면 자동적으로 혼에게도 알려짐을 뜻합니다. 그래서 방언통역이 필요 없겠지요! 그런데 과연 혼이 압니까? 모릅니다. 그러면 왜 모를까요? 그것은 영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방언할 때 영이 그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성령으로 기도할 때 영에 임한 기도제목이 혼에 동시에 알려진다!

 

  우리는 기도할 때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유다서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그럼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이것은 방언이다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도해야 할 것이 성령에 의해 영에 깊이 깨달아져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즉 예언적인 기도입니다. 

 

  또 하나는, 방언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방언은 곧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첫째 유형의 성령으로 하는 기도를 할 때 기도해야 할 내용이 어디에 임합니까? 예언과 마찬가지로 영에 임합니다. 그것이 머리로 전달이 되어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 아는 것은 혼에도 알려진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방언할 때 우리 영이 그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방언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처럼 영이 알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단지 영으로 하는 기도라는 것을 확실히 아시겠지요!

 

  그동안 방언에 대한 구절들이 영과 혼을 이해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영은 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영은 도대체 뭐지?' 하고 모두 당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방언할 때 영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닙니다. 영과 혼의 이해를 가로막고, 있던 최대 장애물이 사라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우리는 오래도록 "우리 혼이 모르는 것을 영은 알고 있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분명히 혼이 모르는 것을 영이 알고 있기 때문에 속에서 느끼는 것이 영의 증거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영의 증거는 혼이 모르는 것을 영이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영혼이 모르는 것을 내 영 속에 계신 성령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이 내 영 속에서 사인을 주시고, 그것을 우리가 느끼는 것이 영의 증거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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