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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혼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 (변승우 목사님의 "너 자신을 알라!"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6.06.13|조회수27 목록 댓글 0

  ■ 영과 혼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

 

  앞에서 저는 세계적인 치유사역자 찰스 헌터의 짧은 간증을 소개하고, 그것이 실마리가 되어 영과 혼에 대해 깨달은 것을 간단히 설명해드렸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후, 저는 다른 책에 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는 그 간증의 내용이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나 검색해보아도 번역된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뉴욕 사랑하는교회의 허대니 목사님에게 연락해서 영문 책을 구입해서 그 간증을 번역하여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연락이 왔는데, 책들이 모두 절판되고 품절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인터넷에 한 책의 원고가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 책에 나오는 간증을 제게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제가 더 자세한 간증을 읽기 원한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간증을 읽으면서 이해한 것이 맞나? 혹시 그 간증의 내용을 오해하거나 착각한 것은 없나?'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 많은 중요한 단서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적중했습니다. 

 

  저는 메일로 받은 더 자세한 간증을 읽고 대만족했습니다. 간증이 제가 이해한 그대로였고, 그 이상의 정보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 간증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 후 여러분이 영과 혼을 확실히 이해하고 소화하실 수 있도록 영과 혼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한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가 능력을 받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여주는 간증입니다. 우리의 영이 성령님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예수님이라는 씨앗에서 비롯된 생명이 우리 안에 심겨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 능력을 어떻게 심으시는지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영은 여러분의 몸과 같은 크기입니다!

 

  1969년에 예수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1,000시간도 넘게 성경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제 삶으로 더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지 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저녁 시간, 예수님께서 저에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씁니다. 저는 그 순간 제 생애 중 경험한 가장 활기 넘치고 심오한 기쁨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 다음 날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 제게 친히 말씀해주실 정도로 저를 사랑해주신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300만 명이 넘는 도시에서 저같이 평범한 한 사람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찬양을 드리던 중, 또 하나의 위대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때 양팔을 내린 상태로 누워 있었습니다. 누워서 제 마음으로 제게 말씀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가 또 다른 몸이 보였습니다. 제 몸과 같은 크기와 같은 모양인 또 다른 몸이 제가 누워 있던 똑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몸보다 약 45cm 더 높은 공중에 둥둥 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얼굴이 제 얼굴과 같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깜짝 놀랐지만, 하나님께서 제 영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끔 제 몸 밖으로 거내셨다는 것을 곧바로 알았습니다. 투명했다는 것만 제외하곤 다른 사람의 몸을 바라보듯이 제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영체였습니다. 마치 옅은 구름 혹은 안개와 같았지만, 모양은 제 몸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 구름과 같은 영체는 하늘에 있는 구름과 다름없이 아무런 생명체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제 '의식'이 육체에서 영체로 옮겨졌습니다. 저의 모든 사고력과 감정이 육체에서 영체로 옮겨졌다는 것이 인식이 되면서 육에 있던 감각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그 당시에 제 혼이 일시적으로 영과 분리되어 있다가 육체에서 영체(영)로 옮겨진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저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 한 여성분께서 기도 중 저를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올려 바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성령님 안에서 그분이 보였습니다. 그분의 손이 제 등 밑에서 제 영체를 위로 미는 중이었습니다. 동시에 파도 같은 기운이 제 발부터 시작해서 머리까지 떠밀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다의 파도처럼 반복적으로 제 몸 안에서 움직였습니다. 빈도와 속도가 점점 거세지며, 제 영체가 그분의 손을 벗어나면서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 우주를 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몇 초 동안 잠시 우주 한가운데 멈춘 것 같았습니다. 주변을 둘러봤는데, 제가 본 것을 인간의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온 '하늘'을 덮는 빛이 있었는데, 밝으면서도 부드러운 빛이었습니다. 

 

  저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육체에 있었던 것처럼 똑같이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 기운과 움직임을 육체로 느끼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영원히 거하고 싶었지만, 단시간에 동일한 성령님의 격동적인 에너지가 저를 다시 아래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몇 초 후, 저는 제 영이 다시 제 육체에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섰지만, 제 경험과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제 영과 혼이 몸을 잠시 벗어나 천국에 다녀왔다는 것을 저는 확실히 압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한 성경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저는 우리의 뇌가 육체를 지배하듯이 우리의 혼이 영체의 기능을 지배한다고 믿습니다."

 

  이 간증이 성경적인가 아닌가를 분별하는 것은 본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유사한 경험을 다룬 성경구절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간증을 읽고 묵상하면서 성경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계속 연구할 때 영과 혼에 대한 성경의 수많은 난제들이 거짓말처럼 술술 풀렸습니다. 전에는 깔끔하게 이해되지 않았던 구절들이 100%라고 느껴질 정도로 선명하고 깔끔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성경에 이와 유사한 경험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간증이 지극히 성경적이라는 강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영과 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아예 배제시켰던 이 간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이 간증이 실마리가 되어 깨닫게 된 사람의 영과 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왜 창세기는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고 말씀하나?

 

  사람의 구성요소인 영 혼 육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입니다. 그런데 왜 창세기 2장 7절은 사람이 살아 있는 영이 되었다고 하지 않고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고 할까요? 찰스 헌터의 간증은, 그 이유를 바로소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해줍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하이 네페쉬-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이처럼 "생령"은 영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이때 혼만 지은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 57:16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스가랴 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루아흐-영)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이 구절들이 보여주듯이 혼과 영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중 영이 혼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왜 '살아 있는 영'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생령"의 원어 "하이 네페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이"는 "살아 있는"이라는 뜻이고, "네페쉬"는 "숨 쉬는 존재, 영혼,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사람과 동물을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바로 네페쉬입니다. 그래서 이미 창세기 1장에서 이 단어를 동물들에게도 사용했습니다. 

 

  창세기 1:20-21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하이 네페쉬-살아 있는 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하이 네페쉬-살아 있는 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와 같이 사람보다 동물들이 먼저 살아 있는 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혼에 의식이 있어서 활동하며 살았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고, 사람을 동물처럼 살아 있는 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먼저 영이 생겨났을 때까지 사람이 살아 움직이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거의 동시였겠지만 논리적인 순서로 혼이 지어졌을 때 비로소 동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다음 구절에 나타나 있는 순서대로 사람의 영과 혼을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57:16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물론 단순히 영과 혼을 지었다는 뜻이지, 순서를 말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느냐? 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내면을 구성하는 종류뿐 아니라 순서에 대해 말한 것이 맞습니다. 그것을 창세기 2장 7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영 혼 육 중 혼만 나와 있습니다. 영은 안 나옵니다. 그러나 '혼이 됐다'는 것은 사람의 창조의 과정이 아니라, 완성단계입니다. 사람 창조의 시작은 흙으로 몸을 만든 것이고, 중간과정은 그 구절에는 생략되어 있으나 이사야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영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혼을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 창조의 완성단계를 말하면서 '살아 있는 혼이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혼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7장 16절은 단순히 하나님이 영과 혼을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순서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또한, 생혼은 동물처럼 의식을 갖고 활동하는 생명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먼저 몸을 만들었어도 사람에게 의식이 없었던 것처럼, 영을 만든 후에도 사람에게 아직 의식이 없었고 활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혼이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의식을 갖고 살아서 활동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는 것은 동물처럼 사람의 의식이 혼에 있고 혼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과도 일치합니다. 우리 몸에는 오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몸이 느끼지만 동시에 혼이 그것을 캐치합니다. 몸이 뭔가를 느끼면 혼이 바로 그것을 인식합니다. 영이 작동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때는 혼이 느끼고 어느 때는 영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영이 뭔가를 느끼는 동시에 혼이 캐치합니다. 

 

  몸과 마찬가지로 영에도 고유의 기능들이 있습니다. 또한, 혼이 영 속에 들어가야 영이 작동합니다. 그러면 육이 느끼는 것을 혼이 동시에 인식하듯이, 영이 느끼는 것 역시 혼이 인식합니다. 이처럼 몸이나 영이 느낀 것을 혼이 동시적으로 느끼고 이를 종합해서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살아갑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물질세계는 물론이고 정신세계나 영적세계에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사실이지요!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사람은 영 혼 육 세 가지를 통해 정보를 얻지만, 이 모든 것을 종합하고 반응학 하는 의식은 하나뿐이고 그것이 혼에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자의식은 하나뿐이고, 그것은 혼에 있고 혼을 통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성경이 사람이 생령 즉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이유입니다(창 2:7).

 

  한편, 우리는 혼보다 영이 중요하기 때문에 성경에 '영'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사람은 '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영'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혼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죽고 사는 것에 대해 '혼이 떠났다', '혼이 돌아왔다'라는 표현이 훨씬 많습니다. '영이 떠났다', '영이 돌아왔다'라는 표현은 그보다 적습니다. 구원에 대해서도 혼이 구원받았다는 표현이 영이 구원받았다는 표현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살아 있는 혼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은 동물처럼 혼에 의식이 있고 혼을 통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사람은 영인데 혼을 가지고 몸 안에 살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영이 아니라 혼이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물론 사람은 단순히 혼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작동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혼입니다. 그것을 여러 가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영으로 기도합니다(고전 14:2).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도할 때는 주로 혼으로 기도합니다. 

 

  또, 방언을 오래 하면 영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이는 평소에는 영이 그 정도로 활동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요 4:24). "신령으로"는 영으로 예배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예배하라는 말은 우리가 보통은 영으로 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평소 주로 혼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반증입니다.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혼은 동물들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역할을 하지만, 영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계시를 받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항상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제 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고 하셨는지 확실히 이해가 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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