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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혼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 IV (변승우 목사님의 "너 자신을 알라!"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6.06.14|조회수24 목록 댓글 0

  ■ 영과 혼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

 

  4. 왜 동물에게도 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가?

 

  동물은 혼은 있으나 영이 없습니다. 개역성경 욥기 12장 10절은 그 점을 잘 보여줍니다.

 

  "생물들의 혼(네페쉬)과 인생들의 영(루아흐)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이 사실은 다음 구절에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사야 31: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그런데, 놀랍게도 전도서 3장 2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생들의 혼(루아흐-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루아흐-영)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개역개정성경은 혼이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루아흐' 즉 영입니다. 이처럼 동물에게 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들은 동물에게도 영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단 한 번만 나왔어도 진리이고 성경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일례로, 대니얼 프레더릭스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루아흐'가 '영'을 의미할 수 있지만, 짐승과 관련해서 이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학자들은 동물은 영이 없으므로 호흡이나 생명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 구절이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의 호흡은 땅으로 내려가고, 사람의 호흡은 위로 올라가는 줄을 누가 알랴?"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불가합니다. 왜냐하면 전도서 12장 7절 때문입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루아흐)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여기서 솔로몬은 3장 21절에서와 같이 '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호흡이나 생명을 뜻하지 않고 '영'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3장 21절에서도 사람의 영이 위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같은 것을 말하고 있고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영을 뜻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전도서 12장 7절도 3장 21절과 같은 의미이고, 생명을 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3장 21절에 사용된 '루아흐'가 영이 아니었으므로 12장 7절에서도 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회의론적으로 이해합니다. 즉, 3장 21절에서 솔로몬은 "누가 알랴?"라고 알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공동번역도 이 구절을 그런 의미로 번역했습니다. 

 

  "사람의 숨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숨은 땅 속으로 내려간다고 누가 장담하랴!"

 

  이처럼 많은 학자들이 알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그렇게 이해하면 한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모르지만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알고 있었고 그것을 썼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때문에 한 성경사전은 이 단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이 전도서 3:21을 회의적으로 해석하지만 매우 분명하고 명확한 어투로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간다'고 말한다. 이 사실을 누가 알겠는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자는 이 사실을 안다. 그러면 솔로몬도 알고 있었다.(G. Harder)"

 

  물론 이것은 결정적인 증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드리겠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3장 21절을 회의적으로 해석한 후 12장 7절도 똑같은 회의적인 발언이고 단지 생명이나 호흡을 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 앞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전도서 12:1-2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솔로몬은 늙기 전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늙으면 죽게 되고 내세와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5절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그 후 7절이 나옵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기억하라!"는 말이 앞뒤로 반복되고 있지요. 그런데도 과연 단지 죽는 것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심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영이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설명들로는 부족하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 앞 장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도서 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또한, 12장 7절 이후에 보면 전도서의 결론으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도서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그러니 12장 7절이 죽은 후에 영이 심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뜻함이 분명하지요! 그러므로 3장 21절의 '루아흐' 역시 단지 호흡이나 생명이 아니라 영을 뜻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왜 영이 없는 동물을 상대로 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저는 전도서 3장 21절을 동물에게도 영이 있다 혹은 단지 호흡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는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을 상대로 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동물의 혼에 하나님의 영과 겹쳐지는 특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기 전 먼저 동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동물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은 아니지만, 혼에 하나님의 영과 일치하는 특성들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과 의식과 지정의고, 혼을 구성하는 요소들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이들이 팔딱팔딱 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사람에게도 영이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 하나님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어떻게 사람의 혼도 아니고 동물의 혼에 영이신 하나님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고 말하나?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예! 말이 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혼의 특성인 생명, 의식, 지정의! 이것이 영이신 하나님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에게 생명이 없습니까? 하나님에게 의식이 없습니까? 도 하나님에게 지정의가 없습니까? 당연히 모두 있지요! 그런데 그것들이 동물의 혼에도 있고 그래서 서로 겹쳐진다고 하는데 뭐가 이상합니까? 당연한 말 아닌가요?

 

  또, 동물의 혼에 영이신 하나님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뛸 일입니까? 동물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빛과 궁창과 땅과 바다와 해달별 즉 무생물보다 훨씬 고등한 존재고, 식물보다도 고등한 존재입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시편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로마서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늘과 궁창 그리고 만물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 있습니다. 꽃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피조물 중 사람 다음으로 고등동물인 동물에게 그것도 동물의 두 가지 구성요소인 혼과 육 중 더 고차원적인 혼에 하나님의 영과 겹쳐지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 뭐가 이상합니까? 왜 그것을 못 믿을 것으로 여기십니까?

 

  또한,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동물을 만드실 때 식물도 가지고 있는 생명이 아니라 더 고등 생명, 즉 '나'라고 느끼는 자의식과 지정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오직 영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천사, 마귀 모두가 영들입니다. 영에만 그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영에서 나온 거지요. 즉, 영이신 하나님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그런데 동물의 혼에 하나님의 영과 겹쳐지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 왜 이상합니까?

 

  뿐만 아니라, 이미 소개한 대로 성경이 동물의 혼을 상대로 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전 3:21). 그러므로 결코 이상한 말이 아닙니다. 

 

  물론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다. 혼의 구성요소인 자의식과 지정의는 하나님과 천사 모두에게 있지만, 하나님이 가진 것과 천사가 가진 것은 그 수준과 차원이 다릅니다. 동물이 가지고 있는 자의식과 지정의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동물에게 그 지은 목적에 맞게 이 땅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한 수준의 자의식과 지정의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사람을 지은신 목적에 맞는 훨씬 우월한 자의식과 지정의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수준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편, 동물에게 "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과 반대로 놀랍게도 하나님에 대해 "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성경의 사례들이 있습니다. "죽음 그 후에는"이라는 글에서 H. A. 아이언사이드는 이런 충격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다음의 말씀은 하나님도 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my soul)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0:38)

 

  그다음 구절에는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우리 영혼을 구원함(saving of soul)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혼은 우리 혼의 구원을 바라고 계십니다. 즉 무한한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적인 본성이 그분 자신의 속성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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