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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혼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 IX (변승우 목사님의 "너 자신을 알라!"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6.06.18|조회수24 목록 댓글 0

  ■ 영과 혼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

 

  6. 예상반론들과 그에 대한 답변!

 

  저는 영과 혼 시리즈 설교를 통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설복시키기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영과 혼에 대해 바르게 알기 원합니다. 그것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예상반론들을 정직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린 영과 혼에 대한 제 견해에 대한 다섯 가지 반론을 생각해보았습니다. 

 

  (1) 생기를 불어넣어 생긴 영에 생명이 없을 수 있는가?

 

  찰스 헌터는 자기 영이 몸 위에 떠 있는 것을 그의 혼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영에 아무런 생명체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즉, 생명과 의식과 지정의가 영이 아니라 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긴 영에 생명이 없을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구절 자체를 연구하지 않고, 생기를 사람의 영과 동일시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검토하다가 생기가 사람의 영이 아니라 성령을 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가 창세기 2장 7절과 유사한 에스겔 37장의 환상에서 "생기"가 성령을 뜻하고, 요한복음 20장 22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구절도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욥기 33: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그러므로 "살이 있는"이라는 뜻의 "하이"("생")에 초덤을 맞추지 말고 성령님께 초점을 맞추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영과 혼을 만드신 것이 되고, 영 속에 생명이 없었다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코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을 하나님의 창조 행위로 보아야지 성령께 바통을 넘긴 것으로 보는 것이 부자연스럽습니다. 또,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생'기'"(니쉬마-숨, 호흡)와 "생'령'"(네페쉬-숨쉬는 존재) 두 표현을 볼 때, 이 구절이 하나님께서 성령이 아니라 살아 있는 숨을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호흡하며 살아 움직이는 생혼이 된 것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욥기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기 27: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이 구절에서 욥은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신 것이 성령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생기이고, 그것이 계속 남아 있어서 욥이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즉, 생기가 영과 혼을 창조한 성령님이 아니라 숨 쉬고 살 수 있도록 사람 안에 불어넣어준 것이며 계속 우리 안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기를 문자 그대로 생기로 이해해야 합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서 단지 생혼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구절(창 2:7)은 사람 창조의 최종 결과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 증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외니라."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것이 사람 창조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57장 16절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과 혼을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 단지 혼만 아니라 영도 만드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생령(생혼-네페쉬 하야)은 1장에서 동물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동물처럼 단지 네페쉬 하야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생기"는 사람에게만 불어넣었고 동물들은 그런 과정이 없이 '네페쉬 하야'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생기"가 단지 '네페쉬 하야' 즉 동물처럼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영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 하나님께서 생기를 통해 혼뿐 아니라 영도 만드셨음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결과로 생긴 것이 영과 혼입니다. 때문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긴 영에 생명이 없을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 과연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우리는 삼분설을 믿기 때문에 영과 혼을 별개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과 혼이 하나가 되어 영혼으로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또, 한 사람에게 두 개의 생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생기를 불어넣어서 먼저 영을 만들고 그다음 혼을 만들어 혼의 생명을 공유하게 하셨다 할지라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더 자세히 설명대드리면, 하나님께서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동물과 다른 존재로 창조하기 원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창조할 때, 동물과 다르고 더 차원 높은 존재는 하나님과 천사들뿐입니다. 하나님과 천사는 모두 영입니다. 그 영은 사람의 영과 혼을 합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더구나, 천사의 생명도 하나입니다. 때문에 사람의 영과 혼에 각각 생명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잘 들으십시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을 단지 천사처럼 영으로 만들었다면 영에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대리자로 삼아 땅을 다스리게 하시려고 영 혼 육을 가진 독특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기능을 가진 영이 있으면서, 그 영과 결합되는 혼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즉, 생기를 통해 영이 만들어졌어도 그 속에 생명이 없다는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입니다!

 

  (2)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가 곧 영이라는 주장에 대해!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케네스 매튜스는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고"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숨을 불어넣는다'('나파흐')는 묘사는 에스겔이 마른 뼈를 본 환상(37:9-10)에 아주 밀접한 평행을 두고 있는데, 거기서 다시 조립된 죽은 사람의 뼈는 '영'(개역개정은 "생기")이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다시 생명을 갖게 된다. 거기서 에스겔은 '생명의 호흡'('나슈마트 하임') 대신에 '영'('루아흐')을 사용하지만 이 둘은 여기서도 그 외에 다른 곳에서도 흔히 같은 것으로 다루어진다."

 

  이처럼 "생기"와 "영"을 같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 그는 이 글의 각주에 "사 57:16; 욥 32:8; 33:14, 특히 창 7:22을 보라."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성령이 아니라 사람의 영에 대한 구절들입니다. 때문에 저는 코에 불어넣은 생기가 사람의 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데이빗 클린스가 생기를 사람의 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엘리후는 지금 사람에게 총명을 주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람 속에 있는 생명의 '영'(루아흐), 즉 창조 시에 사람 속에 불어넣어진 '전능자의 생기'(니슈마트 샤다이)라고 명백히 주장하고 있다(참조. 창 2:7)."

 

  트렘퍼 롱맨 3세도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엘리후는 지혜에 대한 또 다른 원천, 곧 '사람의 속에 있는 영'을 제시한다. 이 영은 '전능자의 숨결'로 더 구체적으로 규정된다("좋은 A, 더 좋은 B"의 평행법으로)."

 

  그래서 저는 크게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2장 7절의 "생기"와 "영"이 같은 것이라면 혼에 생명과 의식과 지정의가 있다는 저의 주장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생기가 영이라면 당연히 생명이 영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반면에, 생기가 곧 영이 아니고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영과 혼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저의 주장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생기가 곧 영이다."라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케네스 매튜스가 제시한 구절들을 모두 찾아보고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생기가 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1) 에스겔의 환상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코에 생기를 불어넣자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서에 유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에스겔 37:1-10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듣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창세기에서처럼 생기가 들어가자 죽은 몸이 살아났지요! 물론 원어는 서로 다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생기는 "하이 니쉬마"(살아 있는 호흡)고 에스겔서에 나오는 생기는 "루아흐"(숨, 바람, 영)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학자들은 둘이 평행을 이루고 있으므로 생기가 곧 영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뒤 이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7:11-14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생기"는 사람의 영이 아닙니다. 에스겔 37장에서의 생기는 성령이고 창세기 2장 7절에서의 생기는 문자 그대로 생기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2) 이사야 57:16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생기가 사람의 영이 아니라는 것은, 이 구절을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납니다. 이 구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영뿐 아니라 혼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생기가 영이라면 생기만 불어넣었는데 혼이 어떻게 생겨납니까? 그러므로 생기는 영이 아닙니다. 

 

  저는 코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 창조행위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지음받은 것이 이 구절에도 나오는 것처럼 영과 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기를 영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영을 불어넣었으면 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영을 불어넣었는데 왜 혼(창 2:7 "생혼")이 됩니까? 영을 불어넣으면 혼으로 변합니까? 또는 영이 혼을 만들어냅니까? 그런 생각은 이 구절(사 57:16)과 충돌됩니다. 하나님이 영과 혼을 모두 만들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기'를 영으로 보면 안 됩니다. 

 

  3) 욥기 32:8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얼핏 보면, 이 구절에서 "영"과 "전능자의 숨결"이 같은 것을 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데이빗 클린스는 영과 전능자의 숨결이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는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연장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정당성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깨달음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특히 '영'(루아흐)은 이 구절에서 그런 깨달음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또,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는 영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이 인생 연륜에서 얻은 지혜보다 우월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자신의 말에 영감 된 신적 권위가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과 전능자의 숨결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데이빗 클린스는 자신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일부는 지혜를 주는 신의 영을 엘리후가 가졌다고 주장하는 특별 은사로 간주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트렘퍼 롱맨 3세는 실제로 이와 같은 견해를 취했습니다. 

 

  "엘리후는 지혜에 대한 또 다른 원천, 곧 '사람의 속에 있는 영'을 제시한다. ... 본질적으로 엘리후는 자신의 지혜가 하나님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지혜는 경험과 관찰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젊은 사람도 지혜로울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해야 옳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구절에서 엘리후가 단순히 영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영감받은 듯한 지혜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욥기 32:9-10, 18-20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 ...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 

 

  저도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제럴드 젠슨도 "32:19-20의 신적 영감에 대한 생생한 이미지는 예레미야 20:9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에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러므로 정말로 영감받았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또, 저는 이런 이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이 구절의 "전능자의 숨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숨결"은 히브리어로 "네샤마"이며 "숨, 호흡, 호흡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욥기 26장 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여기서 "정신"도 "네샤마"입니다. 욥기 32장 8절에 나오는 "숨결"과 단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일부 번역본이 이 부분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아십니까?

 

  바른성경 "네가 누구를 향해 말하며 누구의 영감이 네게서 나오느냐?"

 

  표준새번역 "그런데 누가 네가 한 그런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누구에게 영감을 받아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이처럼 욥기 자체 안에 "숨결"이 영감을 뜻한다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여기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의 헬라어는 "데오프뉴스토스"라는 형용사입니다. "데오스"(신, 하나님)와 "프네오"(불다, 숨쉬다)에서 유래했으며,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호흡을 받는'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능자의 숨결 즉 호흡이 영감받은 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살펴본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라는 말씀은 사람 속에는 영이 있고 그 영이 깨달음을 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세히 읽어보시면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의 영에 깨달음을 준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영감이지요. 그러므로 '전능자의 숨결'은 사람의 영이 아니라 영감을 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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