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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혼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 X (변승우 목사님의 "너 자신을 알라!"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6.06.19|조회수21 목록 댓글 0

  ■ 영과 혼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

 

  6. 예상반론들과 그에 대한 답변!

 

  (2)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가 곧 영이라는 주장에 대해!

 

  4) 욥기 33: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일부 학자들은 이 구절에 나오는 "전능자의 기운"도 사람의 영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이것은 매우 난해한 부분이고 해석이 크게 둘로 나누어집니다. 로이 죽과 이상근 박사는 이것을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창조와 연결시켰습니다. 그래서 코에 불어넣은 생기를 통해 사람이 생령이 된 것을 뜻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데이빗 클린스, 제럴드 젠슨, 박윤선 박사는 자신의 말이 영감 된 것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트렘퍼 롱맨 3세와 호크마 주석은 둘 다를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보아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번째 해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해석의 경우, 다른 번역본들이 어느 정도 뒷받침해줍니다.

 

  표준새번역 욥기 33:4 "하나님의 영이 나를 만드시고,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 내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공동번역 욥기 33:4 "나도 하나님의 콧김으로 생겨난 몸, 전능하신 분의 입김을 받아 숨 쉬게 된 몸이오."

 

  또, 이 구절의 바로 뒤에 나오는 내용에 의해 힘을 얻습니다. 

 

  욥기 33:5-7 "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이처럼 6-7절에서 엘리후는 자신이 욥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자기가 할 말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4절이 단순히 자신이 욥과 같은 피조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 나오는 "나를 살리시느니라"의 히브리어 "하야"는 "살다, 살아 있다, 생명을 유지시키다'라는 뜻입니다. "피엘 미완 3인 여성 단수-1인 공성 단수"입니다. 완료형이 아니라 미완료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주셨다는 과거적인 뜻이 아닙니다. 개역개정이 "살리시느니라"라고 번역한 것이 옳습니다. 영어성경들도 대부분 그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이루어진 창조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구절은 욥기 32장 8절과 서로 뜻이 통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왜냐하면 원어로 "전능자의 기운"과 "전능자의 숨결"이 같은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2장 8절에서 그것이 영감을 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도 그런 뜻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구절 전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기 33:1-3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말하는구나. 내 마음의 정직함이 곧 내 말이며 내 입술이 아는 바가 진실을 말하느니라." 

 

  그 후 4절을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도 "전능자의 숨결"이라는 표현을 자신의 말이 영감 된 것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문에 제럴드 젠슨은 "엘리후는 신의 영감에 호소하면서 그의 말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욥기 32장 8절에서 엘리후는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3장 1-3절에서 "지혜"를 말하고 4절에서 전능자의 숨결이 자기를 살리시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살아났다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말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영감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이 구절을 그런 의미로 봅니다. 그것을 데이빗 클린스가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영과 전능자의 호흡을 언급함으로써 자신을 현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고 대체적으로 말해진다. 스트라한이 그렇게 말한다. '엘리후의 장황하고 다소 과장된 서문은 결국 영감의 주장이 된다. 전능자의 호흡을 받았다는 그의 느낌이 그로 하여금 침묵을 깨도록 강요하고, 나이와 경험의 권위에 대한 그의 겸손한 존경심을 인간의 의견에 대한 무관심으로 바꾸며, 그를 적극적이고 모든 편을 바로잡을 준비가 될 만큼 교리적이고, 강렬하고, 자신감에 가득하고, 능변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리고 데이비슨은 이렇게 말한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영이 자신 안에 충만히 있어 그것이 그에게 보통 사람들보다 더 높은 지혜를 준다고 느낀다'(Rowley, Pope도 비슷하다.)"

 

 

  또,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견해는 옳은 것 같지 않다: 창세기 2:7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있든 없든, 엘리후의 말들은 신의 생명력이 차별 없이 모든 인간에게 부여되었던 창조의 순간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전능자의 기운 즉 호흡은 사람의 영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5) 욥기 34:14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자세히 보면 사람의 영과 목숨이 아니라 "그의 영과 목숨" 즉 하나님의 영과 목숨입니다. 그렇다고 이 구절이 김명현 박사의 잘못된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뿐 아니라 목숨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 사람에게 생명을 주셨을 뿐 당신의 목숨을 빌려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그의 영"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성령님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거둬간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영"은 사람의 영입니다. 

 

  문제는, 일부 학자가 이 구절에 나오는 "영"과 "목숨"을 같은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면 안 됩니다. 여기서 "목숨"은 히브리어 "네샤마"로 "숨, 호흡, 호흡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을 거두실 때 실제로 숨이 멈추는 것을 뜻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더구나, 이 구절에서 엘리후는 영과 호흡(목숨)을 분리해서 말했습니다. 실제로, 영이 곧 목숨은 아니지 않나요? 그러므로 이 구절은 생기(호흡)가 곧 사람의 영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한편, 창세기 2장 7절을 다룰 때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 먼저 영을 그 후에 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순간부터 사람은 생명과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혼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영이 떠나는 것이 죽음입니다. 영이 떠나면 생명이 끊어집니다. 그래서 혼이 아니라 영에 생명이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에 생명이 있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영과 혼이 영혼으로 결합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영이 떠나는 것은 단순히 영이 아니라 영혼이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떠날 때 호흡이 멈추고 죽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것은 창조시가 아니라 창조 후 영과 혼이 결합되어 영혼으로 존재하는 사람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이 떠날 때 호흡이 멈추고 죽는다고 하여 영에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6) 창세기 7:22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케네스 매튜스는 특히 창세기 7장 22절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았는데 복잡합니다. "생명의 기운의 숨" 정말 복잡하지요!

 

  여기서 "생명"은 "하이"로 "살아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기운"은 "루아흐"로 "영"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숨"은 "네샤마"로 "숨, 호흡, 호흡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근거로 생기가 곧 영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루아흐가 항상 영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욥기 27: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여기서도 "숨결"이 루아흐입니다. 그러나 바로 뒤에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라는 부분을 볼 때 숨결이라고 번역한 것이 타당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구절에서도 "기운"이 원어로는 루아흐지만 기운으로 번역한 것에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전 절에 보면 이때 죽은 것이 단지 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모든 동물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도 생기와 영이 같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상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 코에 불어넣은 생기는 사람의 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과 혼이 분리되었을 때, 영이 아니라 혼에 생명과 자의식과 지정의가 있었다는 찰스 헌터의 간증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간증에서 힌트를 얻어 영과 혼에 대해 설명한 저의 해석 역시 그릇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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