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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혼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 XI (변승우 목사님의 "너 자신을 알라!" 중에서)

작성자진순은|작성시간26.06.19|조회수23 목록 댓글 0

  ■ 영과 혼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

 

  6. 예상반론들과 그에 대한 답변!

 

  (3) 영이 살아 있다면 영에도 생명이 있는 것 아닌가?

 

  불신자의 영은 죽어 있고 신자의 영은 살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음 구절이 그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그래서 '그러니 영에도 생명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반론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이 구절에 나오는 "영"을 성령으로 이해합니다. 일례로, 이한수 교수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학자들은 '영'이 자연 인간의 영을 가리키는지(NIV, Hodge, Hunter)아니면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지에(Calvin, Murray, Barrett) 대하여 의견이 갈려 있다. 몸과 영이 평행을 이룬다는 점을 고려할 때, 몸이 인간의 몸을 가리키는 것처럼 영도 인간의 영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근접문맥에서 '영'은 항상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왔고(8:2, 4-6, 9), 한글 성경에서 '살아 있는'으로 번역된 헬라어도 사실은 형용사가 아니라 '생명'이란 명사 형태로 되어 있다. 바울이 인간의 영을 가리켜 '생명'이라고 말했을 리는 없고 그것을 성령에 대해 묘사하는 말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아무리 다수의 학자들이 지지하더라도 이것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무엇보다, 몸과 영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영을 사람의 영이 아닌 성령으로 해석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이한수 교수님은 "근접문맥에서 '영'은 항상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장 16절에서 "영"은 분명히 사람의 영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또, "살아 있는"으로 번역된 헬라어가 형용사가 아니라 '생명'이란 명사 형태이고, 바울이 사람의 영을 가리켜 '생명'이라고 말했을 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생명으로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일례로,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또한, 헬라어직역성경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마쉬아흐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를 통하여 죽었지만, 영은 의를 통하여 생명을 얻습니다."

 

  실제로, 문법적으로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둘 다 설득력이 없습니다. 또한, 9-11절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저는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10절)이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합니다. 9절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10절은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11절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으로 시작하고 모두 같은 뜻입니다. 또, 세 구절의 후반부는 성령 혹은 예수님이 안에 거하실 때 신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한 것입니다. 즉, 성령이 아니라 신자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10절의 "영"을 성령님이 아니라 신자의 영을 뜻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저는 10절 후반절이 실제로 신자의 영이 생명을 얻은 것을 뜻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하면, "영에 생명이 없다더니 있잖아?"라는 반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과연 이 반론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일부 학자들은 이 구절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그리스도와의 너희 교제로 말미암아) 너희는 이미 죄에 대해 죽었으므로, 즉 죄에 대한 심판이 이미 집행되었으므로(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가운데) 너희 몸은 죽었으나 너희 영은 너희가 (이런 이유에서) 의롭다고 선언받았기 때문에 산 것이다(참조: 롬 6:7)."(참조: J. Behm; Walter; J. H. Thayer).

 

  그러나 로마서 6장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 단지 우리의 몸이 아닙니다. "우리"입니다(롬 6:2-4). 또, 이것은 로마서 6장 7절을 잘못 해석한 것에 근거하여 이 구절을 오해한 것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칭의에 대해 설교할 때 자세히 설명해드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옳은 해석이 아닙니다. 

 

  또, 『당신의 복음은 바울의 복음인가?』라는 책에서 저는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라는 표현이 특이하지요! 이것은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으 것처럼, 죄를 짓게 역사하는 몸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죽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전히 죄의 법이 그 안에서 역사하는 즉 몸의 구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를 '몸은 죄로 말이암아 죽은 것이나'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사람의 영은 구원받기 전에는 죽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몸도 몸의 구속을 통해 몸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하나님이 보실 때는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토마스 슈라이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자들이 성령을 소유한 것은 분명하지만(8:8-9), 몸은 죄로 말미암아 구속받지 못하고 죽어 있다. 여기에 들어 있는 사상은 신자들이 아직 죄의 현존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반면에, 영은 성령이 주시는 생명을 통해 살아났고 죄가 아니라 의를 행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최근 이 구절과 씨름하면서 이 해석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변명을 좀 하면, 그때는 제 관심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에 있었습니다.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연구했습니다. 또, 그 해석으로 몸의 죽음에 대한 과거적인 표현이 깔끔하게 해결되어 매력을 느꼈고, 그것을 토마스 슈라이너의 글이 뒷받침해주어서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후반절은 평범한 내용이었고 제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깊이 살펴볼 필요가 없었고, 보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피곤해서 그 부분에 대한 주석들을 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잘못된 번역도 한 몫 했습니다. 성경번역을 바르게 했으면 눈치 챌 수 있었는데, '살아 있는'으로 번역했습니다. 원어는 '살아 있는'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영이 살아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의 때문에 생명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의를 행하고 있으므로 살아 있는 것이다"와 다른 개념입니다. 

 

  또, "죄로 말미암아"와 "의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을 놓쳤습니다. 이 표현들 때문에 "죄성이 있으니 죽었다" 또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으므로 살아 있다" 이런 뜻이 아니라 죄의 결과와 의의 결과를 보여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또한, 10절 후반절에 대한 그 해석은 앞에 나오는 구절들과 그 자체만 보면 옳아 보이지만, 후반절과 조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 구절에서 전반절과 후반절은 대조를 이룹니다. 때문에 만약 전반절이 그런 의미라면 후반절에 영은 성령을 통해 새 생명을 얻어서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구절의 "의"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새 생명 때문에 말씀대로 살게 되지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새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칭의(법정적인 의)를 뜻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도 이 구절의 "의"가 생명에 이르게 하는 "전가된 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칭의를 통해 생명을 얻는 것이므로, 생명을 새 생명이 아니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와 같은 의미인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이것은 로마서 5장 18절과 21절의 반복입니다. 

 

  로마서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후반절은 의를 행하고 살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의를 통해 생명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그럼 전반절은 어떤 뜻일까요? 이 부분은 굉장히 해석하기 힘든 난해구입니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라고 죽은 것으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즉, 몸이 살아 있는데 죽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죽은 것이 아닌데도 죽었다고 표현한 곳은 이곳뿐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20-22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여기서 "죽음"은 문매기 보여주듯이 육체의 죽음을 뜻합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와 같이 바울은 자신은 물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었지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죽음이 확실하고 피해 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10절 전반절도 죄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고 같은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필연적으로 다 죽는다는 뜻입니다(히 9:27). 무도 이 부분이 그런 뜻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그리고 존 스토트는 10절 전체에 대한 견해가 저와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러한 이중적 상황, 즉 죽어가는 몸과 살아 있는 영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인하여'라는 반복되는 말에 있다. 이 말은 죽음을 죄의 탓으로 그리고 생명을 의의 덕분으로 돌린다. 바울은 이미 5장에서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시키면서 이같이 원인을 밝힌 바 있으므로, 분명 그는 우리의 몸이 아담의 죄로 인해서 죽을 운명이 되었으며("너는 ...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반면 우리의 영은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5:15-18, 21) 즉 그분이 우리를 위해 확보해주신 의로운 지위 때문에 살아 있다고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11절도 이 해석을 뒷받침해줍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바울은 10절에서 "몸"을 언급했고 11절에서 다시 "몸"을 언급했습니다. 다른 것을 말한다고 보기보다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11절에서 몸을 "죽을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권연경 교수님이 10절에 대해 "대단히 축약된 표현이라서 해석하기 쉽지 않지만, 다행히 뒤따르는 구절(11절)이 그 의미를 선명하게 풀이해준다."고 말한 것처럼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11절은 10절 전반절에 대한 저의 이해가 옳음을 뒷받침해주는 것입니다. 

 

  이상 설명해드린 것처럼, 10절은 신자의 몸은 죄 때문에 결국 죽지만, 신자의 영은 주님이 주시는 의 때문에 생명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롬 5:18). 이처럼 후반절은 자연적인 생명이 아니라 멸망하느냐 영생을 얻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무가 "신자가 누리는 정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에서 말하는 그 '생명'이라고 말한 그대로입니다. 이처럼 이것은 사법적인 개념이고, 결코 사람의 영에 자연적인 생명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과 혼에 대한 제 견해와 모순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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