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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락 총 람

신왕(좌지왕)과 용녀(傭女)

작성자죽산|작성시간10.07.20|조회수177 목록 댓글 0
신왕(神王)과 용녀(傭女)

신왕(좌지왕)과 용녀(傭女)




   새로운 국제질서의 태동 속에 4대 명왕(이시품)의 뒤를 이어 새로 즉위(A.D.407년)한 신왕(神王:좌지)은 하인 용녀(傭女)를 몹시 총애하여 국정을 어지럽혔다. 용녀는 신왕의 총애를 빌미로 그의 척당들을 대거 등용토록 하여 국정이 어지러워지고 기강이 문란해졌다.

   신라는 가락국의 내정이 문란해진 틈을 이용하여 지금까지의 화친관계를 깨고 가락국을 공략하려 했다. 이때 가락국에는 박원도(朴元道)라는 충직한 신하가 있어서 왕에게 용녀의 방자함과 그 척당들의 횡포를 탄핵하면서 용녀 일당을 제거하여 국정을 바로 잡을 것을 간청했다. 박원도는 옛 고사를 열거하여 "조정에 종친이 몰려들어도 큰 난리가 일러날 듯 민심이 요란하겠거늘 하물며 용녀의 척당이겠습니까? 만약 용녀 일당이 계속 발호하여 천하가 어지러우면 장차 백성들은 어느 곳에서 보존하오리까"라고 직간했다.

   또 어느날 왕이 점술가를 불러 점(육효:六爻)을 쳤는데 해괘(解卦)가 나왔다. 해괘는 주역의 64괘 중 우뢰와 비를 상징하는 괘이다. 이때 박원도가 용녀를 빗대어 그 불길함을 극간하자 드디어 왕이 크게 뉘우치고 용녀를 하산도(荷山島 :고령군 우곡면 포동으로 추정)에 귀양 보내는 한편 그 일당을 내쳐 국정을 바로잡아 길이 백성들을 편하게 하며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또 사략(史略)에는 신라 18대 실성왕 6년(서기407년)왜가 대마도에 군영을

두고 병기를 연마하고 군수품을 쌓아 장차 신라를 습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듣고 병사를 일으켜 먼저 왜를 공격하려 했으나 미사흔(未斯欣:내물왕의 아들)이 간하여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기화로 신라는 만일의 사태를 위해 고구려와 화친관계를, 백제는 왜와 가야제국과 결속함으로써, 이제 전쟁의 규모와 범위가 국제전의 성격을 띠게 됐다.






-원전 : 1995년 김시우저 가락국 천오백년 잠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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