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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김민형, 삼왕후손 각파 현조 총록)

작성자kimheakim|작성시간07.05.01|조회수446 목록 댓글 0
[ 2005. 08. 29 20:5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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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민형
제목 김해김씨``
숙제여서그렇고 한번 알아보고도 싶엇는데
김해김씨의 가훈 집안의 관습, 금기, 버릇 및 특징

인터넷을 찾아도 정말 없습니다,,

그러고

가훈의 위인만 나오는데
가훈의 수치 인사람들도 알려주세요
꼭꼭 알려주세요`~`


[ 운영자 ] 안녕하세요 김민형인! 홈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해김씨(金海金氏)라 하면 시조(始祖)이신 가락국 수로왕(駕洛國首露王)이하 모든 자손들을 말하며, 현재 김해김씨는 대략 수백만이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김해김씨 전체에 적용되는 관습과 금기, 버릇과 특징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씨족관계의 최소단위의 각 가정(家庭)에는 좋은 가훈(家訓)을 정하여 실천하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나, 어떤 가정에 어떤 가훈이 있는지 파악을 하지 못한 점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또 선대에서는 훌륭한 조상들에 대한 명단을 작석하여 후대에 전달하려고 하였으나 문중에 해를 끼치거나 수치스런 일을 한 모상들의 명단을 작성할 이유도 없고, 작성한 사례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다음은 1851년도에 간행된 가락삼왕(시조 수로왕, 구형왕, 김유신 장군)사적고에 수록되어 있는
삼왕후손 각파 현조 총록(三王後孫各派顯祖摠錄)을 소개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金牧卿(김목경); 封金寧君臨海候事蹟詳載麗史(금녕군으로 임해후에 봉해졌으며, 그의 사적이 고려의 사서에 상세히 실려 있다.)
金 普(김 보); 牧卿之子金寧府院君輔理功臣號竹岡諡忠簡公(목경의 아들로서 금녕부원군이며 보리공신으로 책봉되었다. 호는 죽강이고 시호는 충간공이다.)
金孝源(김효원); 普之曾孫文科校理兵曹參判(보의 증손으로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교리와 병조참판을 지냈다.)
金孝芬(김효분); 孝源弟同年進士文科兵曹參判文章著世(효원의 동생으로서 같은 해에 진사를 거쳐 문과에 급제하고 병조참판을 지냈다. 그의 문장이 세상에 알려질 정도로 뛰어 났다.)
金震叙(김진서); 孝源之子兵曹參判同德佐理功臣諡文忠公(효원의 아들로서 병조참판을 지내고 동덕좌리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시호는 문충공이다.)
金震孫(김진손); 孝芬之子進士文科校理佐翼原從功臣(효분의 아들로서 진사를 거쳐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를 지내고 좌익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金永堅(김영견); 震孫之子文翰林佐翼原從功臣吏曹判書(진손의 아들로서 문과에 급제하고 한림을 지내었고 좌익원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이조판서를 지냈다.)
金永貞(김영정); 永堅弟兵曹判書封盆城君諡安敬公(영견의 동생으로서 병조참판을 지내었고 분성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안경공이다.)
金禮直(김예직); 永貞之玄孫壬亂白衣扈駕行訓練大將統制使兵曹判書諡毅憲公(영정의 현손으로 임진왜란 때 백의(벼슬없이) 왕을 호종하였으며 행훈련대장, 통제사,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시호는 의헌공이다.)
金希禹(김희우); 永堅曾孫號赤松軒(영견의 증손으로 호는 적송헌이다.)
金希福(김희복); 震叙玄孫持平號學谷(진서의 현손으로 지평을 지냈으며 호는 학곡이다.)
金德承(김덕승); 盡善之子號少痊(진선의 아들로 호는 소전이다.)
金德愼(김덕신); 希福孫丙亂扈聖錄功臣戶曹判書有錄券(희복의 손자로 병자호란 때 호성공신에 녹훈되었으며, 병조판서를 지냈고 녹권이 있다.)
金洪福(김홍복); 德承子大司諫有遺稿(덕승의 아들로 대사간을 지냈으며 그가 지은 글이 남아있다.)
金洪篆(김홍전); 德愼子賜左承旨號雲菴(덕신의 아들로 죽은 후 좌승지의 벼슬을 받았으며 호는 운암이다.)
金宇杭(김우항); 德承孫右議政諡忠靖號坐隱有遺稿덕승의 손자로 우의정을 지냈고 시호는 충정이며 호는 좌은으로 그의 글이 남아있다.)
金 結(김 결); 震叙五代孫丙亂白衣扈從官至北兵使(진서의 5대손으로 병자호란 때 벼슬없이 왕을 호종하였으며 벼슬은 북병사에 이르렀다.)
金永幹(김영간); 普之五代孫都承旨黃海監司戶曹參議謫南隍仍居(보의 5대손으로 도승지, 황해감사, 호조참의를 지냈으며 남쪽의 산골짜기로 귀양가서 거기서 살았다.)
金 管(김 관); 麗朝版圖判書(고려조에 판도판서를 지냈다.)
金克一(김극일); 管玄孫天性至孝廬墓三年誠感猛獸事 聞旌閭又載三綱行實祖孫曾三世幷亨淸道紫溪院(관의 현손으로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3년간 여묘살이를 하여 맹수들조차 그 정성에 감동하였다. 정려가 세워지고 또 삼강행실록에 기재되었다. 조부(극일)와 손자(일손)와 증손자(대유)와 함께 3세가 나란히 청도의 자계서원에 모셔져 제를 지내고 있다.)
金 孟(김 맹); 克一子官執義退休林泉早遊黃翼成公門德業文章爲世所宗畢齋先生恒稱老先生(극일의 아들로 벼슬은 집의에 이르렀다.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세상을 등지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어려서는 황익성[1]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덕업과 문장이 세상에 알려졌으며 점필제(김종직) 선생이 항상 그를 노선생이라 칭하였다.)
[1]黃翼成(1363~1452); 황희정승, 시호가 익성임.

金駿孫(김준손); 孟子與弟謁 聖甲乙科伯第二仲第一官直提學以移橔廢遂燕山喬桐功封君(맹의 아들로 동생과 같이 알성시의 갑을과에 응시하여 형은 제2등 동생은 제1등을 하였다. 벼슬은 직제학을 지냈고 왕위에서 물러난 연산군을 교동으로 밀어낸 공으로서 봉군되었다.)
金驥孫(김기손); 駿孫之弟官止吏曹正郎(준손의 동생으로 벼슬은 이조좌랑까지 했다.)
金馹孫(김일손); 驥孫之弟號濯纓年二十三中生員壯元進士第二文(又?)闡文科第二早佔畢齋門與寒暄一蠹又善 成宗朝官吏曹正郎文章汪洋華人稱以韓子嘗爲史官取佔畢齋弔義帝文載國史羣壬逞0?竟罹戊午之禍卒年三十五 中廟朝洗寃復官追 贈都承旨享于紫溪書院(기손의 동생으로 호는 탁영이다. 23살에 생원시에 장원을 하고 진사시에 2등을 하였으며 또 문과에 2등을 하였다. 어려서 점필제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추위와 더위를 보내고 폐를 끼치기도 하고 선을 행하기도 하였다. 성종 때에 이조정랑을 지냈다. 문장이 헤아릴 수 없이 뛰어나고 화려하여 사람들은 그를 한자[1]라고 칭하였다. 일찍이 사관이 되어 점필제의 조의제문을 취하여 국사에 실었는데, 모리배들이 <왕에게>아첨하여 무오사화의 곤란을 당하여 별세하였다. 이때 나이는 35세였다. 중종 때 조정에서 원통함을 씻고 벼슬을 복위하여 도승지에 증직되었다. 자계서원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1]韓子; 중국 전국시대의 한비자(韓非子)

金大有(김대유); 駿孫之子號三足堂登賢良科拜正言不就退休雲門山經術才行大爲趙靜菴諸賢推重並享紫溪院(준손의 아들로서 호는 삼족당이고 현량과에 등과하여 정언에 봉해졌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물러나와 운문산에서 살았다. 경술과 재주와 행동이 대담하여 조정암[1]등 여러 현인들이 그를 여러 번 천거하였다. 자계서원에 모셔져 있다.)
[1]靜菴; 조광조(1482~1519)의 호

金大壯(김대장); 大有弟深徵史禍累除經歷監察縣監俱不就與叔季遯跡雲門以終身(대유의 동생으로 심하게 세상의 불행을 당하고, 여러 번 경력, 감찰, 현감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아니하고 막내 동생(대아?)과 함께 운문산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생을 마쳤다.)
金大畜(김대축); 三足堂弟與黃潤李先生從遊蔭縣監(삼족당(대유)의 동생으로 황윤 이선생을 따라 생활하였으며 음사[1]로 현감을 지냈다.)
[1]蔭仕;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조상의 덕으로 하게 되는 벼슬이거나 생원(生員), 진사(進士) 또는 이른바 유학으로서 하게 되는 벼슬을 이르는 말

金大雅(김대아); 三足堂弟蔭縣監(삼족당의 동생이며 음사로 현감을 지냈다.)
金致三(김치삼); 大壯之孫號道淵中司馬遊鄭寒崗門廬墓三年於南原求螺山累拜齋卽不就有文集傳于家(대장의 손자로 호는 도연이다. 사마시에 합격하고 정한강[1]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남원의 구라산 아래에서 3년간 여묘살이를 하였으며, 여러 번 벼슬 제의를 받았으나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가문에 문집이 전해져 온다.)
[1]寒岡; 정구(鄭逑 1543-1620).

金敬臣(김경신); 麗朝都摠管(고려시대에 도총관을 지냈다.)
金元鉉(김원현); 敬臣子匡靖大夫僉議評理載金海邑誌(경신의 아들로서 광정대부와 첨의평리를 지냈고 김해읍지에 실려 있다.)
金係錦(김계금); 元鉉玄孫判書敦之子甲戌文科持平行義城縣令號西崗載會老堂記(원현의 현손으로 판서 돈의 아들이다. 갑술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지평과 의성현령을 지냈다. 호는 서강이며 회로당기에 실려 있다.)
金水生(김수생); 係錦曾孫官右水使(계금의 증손으로 벼슬을 우수사를 지냈다.)
金纓後(김영후); 係錦之五代孫會寧府使丙亂扈從南漢錄一等勳辭職(계금의 오대손으로 회령부사를 지내고 병자호란 때 <왕을> 남한산성 까지 호종하여 일등훈에 책록되었다. 벼슬을 사직하였다.)
金受天(김수천); 纓後孫號樂四堂蔭從仕郞(영후의 손자로서 호는 락사당이고 음직으로 종사랑을 지냈다.)
金方礪(김방려); 元鉉孫號築隱宗簿寺事載圃隱八十諸黨議錄(원현의 손자로서 호는 축은이고 종부시를 지냈다. 사적이 포은80제당의록에 실려 있다.)
金係熙(김계희); 方礪孫文翰林判尹事見翰院錄(방려의 손자로서 문과에 급제하고 한림과 판윤을 지냈다. 그의 사적을 한원록에서 볼 수 있다.)
金克儉(김극검); 係熙孫戶曹參判平安監司(계희의 손자로서 호조참판과 평안감사를 지냈다.)
金潤堅(김윤견); 係熙五代孫生員 成宗朝以文章節行校理(계희의 5대손으로 생원이다. 성종 때 문장과 절개가 뛰어났고 교리를 지냈다.)
金澤堅(김택견); 潤堅弟以文章節行爲世推重(윤견의 동생으로 문장과 절개가 뛰어나 세상 사람들이 여러 번 그를 천거하였다.)
金 渾(김 혼); 係熙五代孫號節翁除光陵參奉拜玉溝縣監(계희의 5대손으로 호는 절옹이다. 광릉참봉을 제수 받았고 옥구 현감이 되었다.)
金克祧(김극조); 生員鍊玄孫武縣監贈純忠補祚功臣兼兵曹判書封鶴川君(생원이며 련의 현손으로 무관으로 현감을 지냈다. 죽은 후 순충보조공신겸병조판서에 증직되었고 학천군에 봉해졌다.)
金 完(김 완); 克祧子黃海兵使謁誠奮威振武功臣贈兵曹判書諡襄武公封鶴城君(극조의 아들로 황해병사를 지냈고 알성분위진무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죽은 후 병조판서를 증직받고 시호는 양무공이며 학성군에 봉해졌다.)
金 涵(김 함); 鶴城君完從閑山戰父參軍公中賊丸歿公恐撓軍不敢發哭雷仍力戰賊乃退去奉屍歸葬以黑衰從軍標旗復讎二字(학성군 완을 따라 한산도전투에 부친이 참전하여 공(부친)이 적이 쏜 탄환에 맞아 전사하자 공(함)은 병사들이 동요될까 걱정하여 감히 울음소리를 내지 않고 우뢰와 같이 북을 치고 힘을 다해 싸우니 적이 물러갔다. 부친의 주검을 받들고 돌아와 장래를 치루고, 검을 옷을 입고 군사의 깃발을 따라 종군하여, <원수를 갚을 일념으로> 복수의 두 글자만을 생각하였다)
金汝水(김여수); 完子咸鏡北兵使 贈戶曹判書封海城君(완의 아들로 함경북병사를 지냈고 호조판서를 증직받았으며 해성군에 봉해졌다.)
金世器(김세기); 汝水子 南兵使封鶴林君子孫居靈巖(여수의 아들이며 남병사를 지냈고 학림군에 봉해졌으며 자손이 영암에 살고 있다.)
金汝沃(김여옥); 鶴城君姪累拜寢卽不就號謙齋(학성군 완의 조카로서 여러 번 벼슬제의를 받았으나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호는 겸재이다.)
金汝浚(김여준); 汝沃弟武科驍勇絶人折衝官僉使丁丑隸十八壯士選 陪孝廟入瀋陽作秋鴈歌以叙不平之懷 孝廟聞而下淚汗登極設四海宴公托以使酒大聲焉?汗又于直莒脚戱極之臺石而殺之 孝廟還邸後拜禁衝千摠召以右水使以卒已三曰 孝廟悼念不已後設科出題曰 禁院聞秋鴈聲憶金壯士事載倡義錄(여옥의 동생으로 무과에 합격하고 날쌔고 용감하기가 절윤하였다. 절충으로서 벼슬은 첨사를 지냈다. 정축년에 18장사 선발전에 붙었다. 효종이 심양에 들어가니 추안가(가을 기러기에 대한 노래)를 지어 못마땅한 마음을 토로하니 효종이 듣고 눈물을 흘렸다. 이 때 칸(원나라의 왕)이 등극하여 사해연을 베풀었을 때, 공이 사신으로서 술을 물리치고 크게 소리 질렀다. 칸은 또 우직거와 같이 각희극(태권도 시합)을 하다가 <우직거가> 머릿돌에 <부딪혀> 죽었다. 효종이 궁으로 돌아온 후 우수사로 하여금 불러서 금위천종에 봉하였으나 죽은 지 이미 3일 후였다. 효종을 애석하게 여겨 과거시험을 실시하고 문제를 내었는데, 그 문제는 금원(禁院)이 김장사(여준)을 생각하여 추안성(가을 기러기의 노래)을 묻는 것이었다. 이 일이 창의록에 기록되어 있다.)
金壽延(김수연); 侍中琢曾孫號龍岡登武科惠宗親題紅牌歷七道兵上嘉之每稱社稷臣賜家百間及卒自朝家禮葬(시중 탁의 증손이며 호는 용강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혜종이 친히 홍패를 내렸고 7도의 병사를 역임하였다. 왕이 기뻐하고 그 때 마다 나라의 <보배로운> 신하라고 칭하고 백칸의 집을 하사하였다. 그가 죽자 조정에서 장례를 치렀다.)
金好仁(김호인); 壽延子敎導文科牧使受學申嵓軒門(수연의 아들로 교도를 지냈다. 문과에 등과하여 목사를 지내고 신암헌[1]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申嵓軒; 신장(申檣,고령,1382~1433) 호 : 암헌(巖軒), 참의(參議) 신포시의 아들이며, 신숙주의 아버지.

金廷逸(김정일); 壽延五代孫號湖隱武宣傳與忠敏公林慶業奉使皇明討平北賊丙亂赴賊殉節子孫居綾州(수연의 5대손으로 호는 호은이다. 무과로 선전관을 지내고, 충민공 임경업[1]과 같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 평북의 도적들을 토벌하였고, 병자호란 때 적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자손들이 능주에 살고 있다.)
[1]林慶業; 임경업(1594~1646). 조선 중기의 명장(名將)으로서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영백(英伯)이다.

金友尹(김우윤); 孝儉子號龍灣生進登第誠孝出天丁酉亂母夫人被害公挻身入賊殺數十級復母讐(효검의 아들로 호는 용만이다. 생진으로 있다가 과거에 등제하였다. 성실하고 효도가 지극했다. 정유재란 때 모친이 피해를 입자 공이 앞장서서 전쟁에 나가 수십명의 적을 죽이고 모친의 원수를 갚았다.)
金 遂(김 수); 壽延五代傍孫號花竹堂司馬文科散裁花竹逍遙(수연의 5대 방손으로 호는 화죽당이다. 사마시의 문과에 등과하였으나 꽃과 대나무를 심으며 살았다.)
金克精(김극정); 以孝行除參奉(효행이 뛰어나 참봉을 제수받았다.)
金得秋(김득추); 克精孫號栗坡以文章行義行興陽訓導載長興邑誌(극정의 손자로서 호는 율파이다. 문장과 행의가 뛰어나 흥양훈도를 지냈으며 장흥읍지에 실려 있다.)
金景秋(김경추); 得秋弟號松汀性本至孝及疾庭畔桃樹三載不華鄕人立祠于楊江(득추의 동생으로 호는 송정이다. 본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으며 지병을 앓을 때 뜰의 두둑에 복숭아나무를 3년간 심었으나 아름답지 못하여 마을 사람들이 제실을 짓자 양강으로 갔다.)
金方慶(김방경); 景秋曾孫文章早闡爲世推重(경추의 증손으로 문장이 일찍이 드러나 세상 사람들이 그를 여러 번 천거하였다.)
金運玉(김운옥); 景秋玄孫丁酉亂至珍島碧波津與李忠武公合戰矢死載忠武公日記(경추의 현손으로 정유재란 때 진도에 이르러 벽파진에서 이충무공과 합세하여 전투에 임하다가 화살을 맞고 숨진 사실이 충무공 일기 중에 기록되어있다.)
金 楸(김 추); 克精之六世孫孝友敦睦氣度宏傑著于世(극정의 6대손으로 효도와 우애가 도탑고 돈독하였다. 기상이 넓고 뛰어나 세상에 알려졌다.)
金 遵(김 준); 文領敦寧諡元靖公事載邑誌(문과로서 영돈녕을 지냈고 시호는 원정공이며 사적이 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金 瑾(김 근); 遵子工曹參議(준의 아들로 공조참의를 지냈다.)
金元慶(김원경); 瑾子閉牖愼獨業以四勿修聲聞遠邇薦除參奉(근의 아들로 출입을 삼가고 사물[1]을 지켜서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르게 하였다. 이 소문이 멀리 까지 알려져 참봉에 천거되었다.)
[1]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며, 듣지 말며, 말하지 말며, 움직이지 말라는 논어의 네 가지 가르침.

金九龍(김구용); 遵之曾孫一等原從功臣兵曹參判(준의 증손으로 1등 원종공신에 책록되고 병조참판을 지냈다.)
金慶立(김경립); 九龍六世孫號田舍翁以主簿壬亂討倭爲倭所執十年他國一心持節雙手掉舟還鄕(구룡의 6대손으로 호는 전사옹이다. 주부로서 임진왜란 시 왜적을 토벌하였으나 왜의 포로가 되어 10년동안 타국에서 일심으로 절의를 지키다가 양손으로 배를 저어 도망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金汝孝(김여효); 慶立子熊川縣監仁廟朝靖亂功臣賜鐵券(경립의 아들로 웅천현감을 지냈다. 인조 때 정란공신으로 철권을 받았다.)
金德洙(김덕수); 汝孝曾孫號寒泉堂武科武孝友敦睦著于鄕載邑誌(여효의 증손으로 호는 한천당이다. 무과에 급제하고 무술과 효도와 우애가 도탑고 돈독하여 마을에서 알려졌다고 읍지에 씌어져 있다.)
金光鋏(김광협); 九龍從曾孫主簿壬亂扈駕龍灣錄原從功臣兵曹參議(구룡의 종증손으로 주부로서 임진왜란 시 용만(의주)까지 호종하여 원종공신에 책록되고 병조참의를 지냈다.)
金龜洛(김구락); 九龍九世傍孫號梅谷以孝友文行聞于朝特命旌閭(구룡의 9세 방손으로 호는 매곡이다. 효우와 문행이 조정까지 알려져 특명으로 정려를 세웠다.)
金以璋(김이장); 三司副事諡忠靖公(삼사부사로서 시호는 충정공이다.)
金泰鼎(김태정); 肅宗朝中生進登第官典籍號龍庵(숙종 때 생원과 진사였고,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은 전적을 지냈으며 호는 용암이다.)
金逸駿(김일준); 進士憲子文科行興海蔚山潭陽府使有庶潔碑載密陽邑誌(진사 헌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고 흥해, 울산, 담양부사를 지냈다. 서결비(?)가 있고 밀양읍지에 실려 있다.)
金景瑞(김경서); 初名應瑞武科壬亂倡義賊斬小西飛復平壤經五道兵使錄宣武一等 光海時以副元帥見制弘立陷于虜中六載不屈竟爲遇害朝廷初聞削職 仁廟朝因儒疏雪寃復爵 贈右議政 正宗辛亥又因儒疏命旌閭諡襄毅 御製致祭子孫居龍岡(초명이 응서이고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고 <왜군의 장수인> 소서비를 베고 평양성을 탈환하였다. 5도병사를 지냈으며 선무1등에 책록되었다. 광해조 때 부원사로서 강홍립과 같이 포로로 사로잡혀 6년간 끝까지 굽히지 않았으나 <조선에> 이롭지 못하게 되어 조정에서 처음에 이를 듣고 직책을 박탈하였다. 인조 때 유림들의 상소로서 원통함을 풀고 복작되어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정종 신해년에 또 유림들의 상소로 정려를 세우고 양무의 시호를 내리고 왕이 치제문을 지었다. 자손들이 용강에 살고 있다.)
金 璇(김 선); 金紫光錄大夫封長沙君(금자광록대부이고 장사군에 봉해졌다.)
金天授(김천수); 璇六世孫純忠補祚功臣判敦寧府事封金寧府院君(선의 6세손이고 순충보조공신이며 판돈녕부사를 지냈고 금녕부원군에 봉해졌다.)
金 渭(김 위) ; 天授子蔚珍縣令效忠奮義翼社功臣封松山君(천수의 아들로 울진현령을 지냈고 효충분의익사공신이며 송산군에 봉해졌다.)
金時望(김시망); 天授子生進俱中光海朝還鄕號松湖(천수의 아들로 생원과 진사를 지냈으며 광해조 때 고향으로 돌아왔다. 호는 송호이다.)
金鍊玉(김연옥); 武科丁酉亂佐李忠武公幕露梁多有斬獲中賊丸死妻梁氏聞夫死赴水死子命彦奉母屍投淵名其淵曰金綱沼載湖南節義錄(무과에 급제하고 정유재란 때 이충무공을 보좌하여 노량으로 가서 많은 적들을 베고 사로잡았으나 적의 포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부인인 양씨가 부군의 사망소식을 듣고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아들인 명언은 모친의 죽음을 받들어 못에 몸을 던지니 그 연못을 금강소라 하였다. <이것이> 호남절의록에 실려 있다.)
金仁福(김인복); 號月臺武科丁酉亂與統使元均戰于稷山殉節載宣武錄及忠武公錄(호는 월대이고 무과에 등제하였다. 정유재란 때 통사 원균과 같이 직산으로 가서 전투에 참가하여 순절하였다. 선무록과 충무공록에 실려 있다.)
金 琢(김 탁); 仁福子兒時遭父稷山殉節杜門不出朝家聞其賢徵以雲峯訓導乃就行平邱察訪(인복의 아들로 어릴 때 아버지가 직산에서 순절하자 두문불출하였다. 조정에서는 그 어진 일을 듣고 운봉훈도로서 불러 벼슬에 나아가 평구찰방을 지냈다.)
金應壽(김응수); 守門將壬亂 扈從義州以忠封盆城君(수문장으로서 임진왜란 때 <왕을> 의주까지 충성으로 호종하였고 분성군에 봉해졌다.)
金永烈(김영열); 丁酉之亂與趙山西慶男趙廷義起兵破賊載趙山西日記(정유재란 때 경남 조산서[1]와 조정의와 같이 의병을 일으켜 적병을 대파하였다. 조산서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1]조경남(趙慶男) 조선조(1570년∼1641년) 중기의 무인, 본관은 한양, 자는 선술(善述), 호는 산서(山西).

金遠器(김원기); 誠孝出天父喪廬墓血泣常掃墳墓點雪自消不留宿草鱉公泣鱉來(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의 상을 당하자 여묘살이를 하면서 피눈물을 흘리고 항상 봉분을 청소하여 한점의 눈도 남아있지 않았다. 풀 속에서 잠을 잤다. 자라가 공이 울자 자라가 튀어 나왔다.)
金壽仁(김수인); 以學行除參奉(학행이 뒤어나 참봉에 봉해졌다.)
金 範(김 범); 壽仁子僉正壬亂錄功臣(수인의 아들로 첨정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金得龍(김득용); 範子壬亂父子扈從(범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부자가 <왕을> 호종하였다.)
金珽海(김정해); 丙亂扈從載錄券一等功(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여 녹권에 1등공신으로 실렸다.)
金光立(김광립); 黃州牧使原從功一等錄券(황주목사를 지냈으며 원종공신의 일등공신의 1등녹권을 받았다.)
金致信(김치신); 進士號秀巖有學行屢薦(진사이며 호는 수암이다. 학행이 뛰어나 여러 번 <벼슬에> 추천되었다.)
金成河(김성하); 誠孝出天鄕里大稱(효성이 지극하여 고향에서는 크다고 칭했다.)
金榮立(김영립); 判官壬亂與金千鎰討賊錄宣武錄(판관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김천일과 같이 적을 토벌하여 선무공신에 책록되었다.)
金春慶(김춘경); 大司憲世詳玄孫官止府使壬亂扈從功臣子孫居山淸(대사헌 세상의 현손으로 벼슬은 부사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 호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자손들이 산청에 살고 있다.)
金春孫(김춘손); 翰林勇子進士遊於畢齋先生門(한림공 용의 아들로서 진사를 지냈고 점필제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金{王+寬)(김 관); 派居長興(파가 장흥에 있다.)
金 球(김 구); 忠貞公派居羅州長平(충정공파이며 나주 장평에 있다.)
金 璋(김 장); 奉常大夫判中三司副事忠靖公長興(봉상대부로서 판중삼사부사를 지냈고 충정공이며 장흥에 있다.)
金麟瑞(김인서); 生員齋陵參奉公居密陽(생원으로서 재릉 참봉을 지냈고 밀양에 산다.)
金 著(김 저); 資憲大夫都僉議(자헌대부로서 도첨의를 지냈다.)
金之瑞(김지서); 承仕郞都參令司正(승사랑, 도참령, 사정을 지냈다.)
金尙智(김상지); 同知中樞(동지중추를 지냈다.)
金世溫(김세온); 慶州(경주에 산다.)
金 現(김 현); 崇祿大夫(봉록대부였다.)
金 璘(김 인); 都事公(도사공을 지냈다.)
金 豪(김 호); 進士(진사이다.)
金 巨(김 거); 禦侮將軍忠武衛副護軍(어모장군 충무위 부호군을 지냈다.)
金用萬(김용만); 判決事(판결사를 지냈다.)
金 鑑(김 감); 號晦軒金紫光祿大夫禮郞尙書(호는 회헌이고 금자광록대부로서 예랑상서를 지냈다.)
金 平(김 평); 龍山郡守奉善大夫書雲副正(용산군수를 지냈고 봉선대부로서 서운부정을 지냈다.)
金不比(김불비); 判書(판서를 지냈다.)
金 慶(김 경); 達鍊事(달련사를 지냈다.)
金角鍵(김각건); 工曹正郞兵曹參判(공조정랑과 병조참판을 지냈다.)
金 錫(김 석); 都僉議贊成事(도첨의찬성사를 지냈다.)
金 銚(김 조); 集賢殿副提學禮曹判書(집현전 부제학과 예조판서를 지냈다.)
金 鍵(김 건); 版圖判書(판도판서를 지냈다.)
金 琥(김 호); 全義縣監渭源郡守晋州兵使(전의현감과 위원군수 및 진주병사를 지냈다.)
金兌精(김태정); 右軍兵使(우군병사를 지냈다.)
金仁琯(김인관); 衛尉卿檢校(위위경검교를 지냈다.)
金景壽(김경수); 霙巖(영암에 산다.)
金 侃(김 간); 奉列大夫少卿太僕承旨(봉열대부로서 소경태복승지를 지냈다.)
金 峙(김 치); 吏部尙書(이부상서를 지냈다.)
金碩運(김석운); 領敦寧(영돈녕을 지냈다.)
金{山+寄}(김 기); 武宣傳備邊郞(무과 급제후 선전랑과 비변랑을 지냈다.)
金 球(김 구); 副提學(부제학을 지냈다.)
金始寶(김시보); 生員(생원이다.)
金 鐸(김 탁); 進士(진사이다.)
金弼亨(김필형); 郡守(군수를 지냈다.)
金信文(김신문); 茂州府使(무주부사를 지냈다.)
金希敬(김희경); 縣監(현감을 지냈다.)
金 泳(김 영); 工曹參議(공조참의를 지냈다.)
金成洙(김성수); 左贊成公(좌찬성을 지냈다.)
金秀東(김수동);
金文運(김문운); 河東(하동에 산다.)
金元浩(김원호); 壬實(임실에 산다.)
金海精(김해정); 兵曹參議(병조참의를 지냈다.)
金士宗(김사종); 羅州(나주에 산다.)
金漢鑑(김한감);
金國潭(김국담); 漢城左尹(한성좌윤을 지냈다.)
金應馨(김응형); 參奉承旨(참봉과 승지를 지냈다.)
金順遜(김순손); 工曹參議(공조참의를 지냈다.)
金世恭(김세공); 保功將軍副司公(보공장군으로서 부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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