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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공휘불비(不比)파에 대하여 ... (김종민)

작성자kimheakim|작성시간07.05.05|조회수564 목록 댓글 0
[ 2005. 11. 21 00:4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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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종민
제목 판서공휘불비(不比)파에 대하여 ...
항렬은 여기 자료실에 올려져 있는 판서공휘불비(不比)파의 항렬과 차이가 있습니다만
저희집은 판서공휘불비(不比)파 입니다.
판서공휘불비(不比)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 운영자 ] 답 글

안녕하세요 김종민님! 홈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해김씨(金海金氏) 판서공파(判書公派)라 함은 김해 김씨 선조(先祖) 중에서 이조판서(吏曹判書), 호조판서(戶曹判書)등 판서(判書)라는 벼슬을 하셨거나 00판서(判書)로 증직(贈職)되신 분의 자손(子孫)들을 말합니다.

흔히 "판서공파"라고 하면 판서공(判書公) 휘불비(諱不比派)를 지칭하나 그 외에도 판도판서공(判圖判書公) 휘관파(諱管派=삼현파)도 판서공파라고 하기도 하며 또 판서공 휘진업파(判書公諱盡業派)도 있고, 판서공 휘세강파(判書公諱世綱派)도 있고, 그 외 다른 "판서공파"도 있을 수 있고, 여러 지파(支派; 가지파)별로 문중을 나누거나 족보 편제(族譜 編制)를 할 수도 있으므로, 님과 같이 판서공휘불비파(判書公不比派)라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판서공파(判書公派) 중조(中祖) 휘불비공(諱不比公)의 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공(公)의 휘(諱)는 불비(不比) 요. 호(號)는 신묵재(愼默齋) 이시다. 가락국(駕洛國)의 시조대왕(始祖大王) 어휘(御諱) 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후예 이며 삼국통일의 원훈(元勳) 신라(新羅) 태대각간.흥무대왕(太大角干.興武大王) 휘유신(諱金庾信)은 그 중시조(中始祖) 이시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이조판서공(吏曹判書公)이 사셨던 때는 고려말 조선초(高麗末. 朝鮮初)이며 태어나시고 돌아가신 해의 기록이 전하지 않고 그 활동도 자세함을 알 수 없다.

다만 일부 문헌 과 족보.금석문 등과 그 자손을 보아서 나타난 것에 의해 살펴보면 일찍이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선생을 스승으로 섬겨서 성리학을 배우시고 . 벼슬은 봉상대부 전리총랑 보문각 직제학 지제교 성균관 제주 겸 의랑 서해도안렴사(奉常大夫 典理摠郞 寶文閣 直提學 知製敎 成均館 祭酒 兼 議郞 西海道按廉使)로부터 이조판서(吏曹判書) 까지 역임 하였다고 이른다.

또 공(公)의 휘(諱) 불비(不比)는 그 학문 에 비견할 사람이 없다 하여 얻은 이름 이라한다. 정헌대부 이조참판공(正憲大夫吏曹判書公)은 백월산(白月山)이 둘러 있고 앞에는 주남 저수지가 자리한 의창군(창원시) 동면 산남리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

묘(墓)는 의창군 동면 금산리 금동부락 뒷산인 백월산 두대봉하(頭臺峰下)에 있다고 하고 김해 거질리 에 있다고도 하나 아직 찿지 못하였으니 애석할 뿐이다. 후손 들이 심히 한탄하여 지금의 창원시 동읍 금산리 금동 에 백여년 전에 금호재(琴湖齋)를 짓고 설단을 하고 비(碑)를 세워 주손(胄孫) 휘(諱) 종내(鍾乃)와 휘정(諱珽) 및 종친이 건립하다. 김상옥(金相頊)이 찬(撰)하고, 김병린(金柄璘)이 기록하다.

판서공(判書公)의 후손 중 장자는 휘수광(諱秀光)이니 자(字) 는 천장(天章)이고 호(號)는 환성헌(喚惺軒)이다. 일찍이 양촌 권근(陽村. 權近)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니 학문과 언행 이 정대(正大) 하여 선비의 도리 에 한치의 벗어남도 없었다 한다 .문종 때 문과에 입격하시고 이어서 벼슬에 오르니 경상도사 원주목사 수원부사 양사헌납 봉상시정(慶尙都事 原州牧使 水原府使 兩司獻納 奉常寺正)을 역임 하였다 후에 한림원태학사(翰林院 太學士)로 조정에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향리(鄕里)에서 금서(琴書)를 벗하며 지내다 여생을 마치니 묘(墓)가 금동부락 뒷산에 있고 한훤당 김굉필(寒喧堂 金宏弼)선생이 묘지(墓誌)를 지었다 .배위(配位) 는 숙부인(淑 夫人) 경주세가인 호군(護軍) 최기(崔 淇)의 따님이시다.

한훤당 김굉필(寒喧堂 金宏弼) 선생이 찬(撰)한 양사헌납 환성헌(兩司獻納 喚惺軒) 묘지(墓誌)에는 "公 이 등과(登科)하여 명망이 일세를 덮었드라 ...............예문 춘추관(藝文 春秋館)으로 부터 양사헌납(兩司獻納)에 이르니 인신의 도리를 다하였느니라"라고 되어있다

환성헌(喚惺軒) 公의 장자 휘석공(錫貢)(1463-1535)은 동면 산남리에서 출생하여 학행으로써 참봉(參奉)에 추천되고 진원현감(珍原縣監)에 나아갔다. 뒤에 통례원 인의(通禮院 引儀)로 부름을 받았으나 사임하고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묘는 금동부락 뒷산에 있는데 의창군(창원)내에 고분(古墳)중에서 가장 큰 봉분(封墳)을 갖추고 있다. 묘비문은 관포당(灌圃堂) 어득강(魚得江)선생이 찬하였다. 배위(配位) 는 태종임금의 증손 중의대부(中義大夫)제천군(堤川君) 이온(李縕)의 따님이시다

판서공(判書公)의 차남 휘(諱) 숙광(淑光)은 정언(正言)을 지내셨고 아드님 휘(諱) 석하(錫夏)는 진사(進士)를 지내시고 손자 諱 정손(正孫)은 무과에 급제하시어 별시위 (別侍衛)를 지내셨다.

팜서공(判書公)의 3남 諱 계광(啓光)은 목사(牧使)를 지내셨고 아드님 諱 석징(錫徵)은 군자감 봉사(奉事)를 지내시고 손자 諱덕손(德孫)은 좌랑(佐郞)을, 諱 극손(克孫)은 감역(監役)을 지내셨다.

판서공(判書公)의 4남 諱 익광(益光)은 군수(郡守)를 지내셨다. 아드님 諱석형(錫亨)과 諱석보(錫寶)는 감무(監務)이고 諱석현(錫玄)은 현감(縣監)을 지내셨다.

2001년도에 간행된 김해김씨 대동세보에 기록되어 있는 판서공 휘불비파(判書公諱不比派) 항렬표는 다음과 같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세○洙(수) 21세秉(병)○ 22세○燮(섭) 23세圭(규)○ 24세○鎭(진) 25세浩(호)○ 26세○榮(영) 27세炯(형)○ 28세○載(재) 29세鎬(호)○ 30세○洪(홍) 31세權(권)○ 32세○熙(희) 33세柱(주)○ 34세○錫(석) 35세泰(태)○ 36세○植(식) 37세炳(병)○ 自判書公二十世로起洙字(판서공으로부터 20세에 수자)

또 다른 판서공파 파보(判書公派 派譜)에 기록되어 있는 항렬표는 다음과 같다고 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항렬표(行列表) ( 1 )
17세 = 종 鍾 18세 = 수 洙 19세 =동 東 20세 =환 煥 21세 =기 基 22세 = 석 錫 23세 = 영 永 24세 =상 相 25세 =영 榮 26세 =규 圭

항렬표(行列表) ( 2 )
17세 =영 永 18세 =상 相 19세 =희 熙 20세 =재 在 21세 =석 錫 22세 =영 泳 23세 =환 桓 24세 =현 炫 25세 =규 圭 26세 =호 鎬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2005-11-21
20:39:06 의견글삭제
[ 김종민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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