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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67)하현달

작성자내교(이대재)|작성시간26.06.14|조회수55 목록 댓글 0


천석꾼 노첨지, 소작료 거두러갔다

오서방 딸에 반해 논문서 건네는데


천석꾼 부자 노 첨지가 불룩한 배를 뒤뚱거리며 집사를 앞세워 소작료를 거두러 나갔다. 소작농들은 없는 살림에 씨암탉을 잡거나 너비아니를 굽거나 송이산적에 술상을 차려 노 첨지를 맞았다. 소작료를 받으러 온 지주는 저승사자보다 무섭다. 개울가 집 삽짝 밖에서 기다리던 오 서방 내외는 코가 땅에 닿을 듯이 절을 하고 노 첨지 팔짱을 끼고 집 안으로 모셨다.

“이 논 일곱마지기는 가뭄에 물 걱정이 없어 농사가 잘됐네.” 노 첨지의 이 한마디에 벌써 오 서방의 간이 쪼그라들었다. 노 첨지가 마루에 앉자 오 서방 딸이 부엌에서 술상을 들고 왔다. 노 첨지가 깜짝 놀랐다. 천하일색에 허리띠로 졸라맨 치마가 탱탱한 엉덩이 선을 그대로 드러냈다.

“술상을 들고 왔으면 한잔 따르거라.” 머루주를 몇잔 마신 노 첨지가 불콰해져 계속 오 서방 딸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술잔을 비웠다. “나으리, 이 집 일곱마지기는 소출을 얼마로 매길까요?” 젊은 집사가 묻자 “으흠 으흠 에∼” 하며 생각을 하더니 또 한잔을 마셨다. “오늘은 그냥 가자.” 노 첨지가 마루에서 일어서며 오 서방 딸의 탱탱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툭 치자 열일곱 오숙이가 깜짝 놀랐다. 오숙이 손목을 잡고 마고자 주머니의 엽전을 한움큼 잡아 오숙이 손바닥에 쥐여줬다.

집사 대근이 사랑방에서 노 첨지의 밀명을 받고 대문을 나설 때 감나무 가지 끝에 하현달이 걸렸다. 오 서방 집에 들렀다가 함께 주막으로 갔다. 술잔이 몇차례 오가고 나서 대근이 나지막한 소리로 귓속말을 하자 오 서방이 깜짝 놀랐다. 대근이가 조끼 안주머니에서 일곱마지기 논문서를 술상 위에 내놓자 오 서방이 덥석 잡으려 할 때 다시 대근이가 오 서방 손을 덮쳤다. “따님을 그렇게 싸게 팔지 마세요.” 대근이 일갈하자 오 서방이 멀뚱해졌다. 대근이가 집으로 돌아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노 첨지 앞에 논문서를 내어놓았다. “이걸로는 어림도 없어요.”

이튿날 세마지기를 보탰지만 열마지기도 퇴짜를 맞고 한장 터울로 밀고 당기다 결국은 열다섯마지기에 합의를 봤다. 오 서방이 거간 몫으로 두마지기 논문서를 대근이에게 건넸지만 대근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논문서를 밀쳤다. 오 서방은 유월 생감 씹은 표정으로 한마지기를 더 얹었다. 노 첨지는 마침내 강 건너 남촌에 아담한 기와집을 사서 오 서방 딸 오숙이를 앉혔다. 노 첨지가 생전 처음 첩살림을 차렸지만 마누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자린고비 노 첨지가 한평생 뼈 빠지게 일해 천석꾼 부자가 됐지만 살림 밑천은 마누라가 혼수로 가져온 논 다섯마지기였다. 마누라는 항상 큰소리를 쳤고 밤일도 마누라가 주도권을 쥐고 살아왔다. 일년이 넘게 마누라와 합방을 한 적이 없어 노 첨지가 은근슬쩍 첩살림을 차렸더니 마누라가 대근이를 데리고 와 살림을 박살 냈다. 첩 집에 독을 사다 주고 쌀가마를 나르는 건 대근이가 할 일이다. 뚱뚱보 마누라도 싸움에 지쳐 무덤덤해지자 노 첨지는 아예 첩 집에 뿌리를 박았다.

그런대로 조용하게 하루하루 지나가다가 삼년이 지난 어느 날, 집안이 발각 뒤집혔다. 대근이와 첩 오숙이가 사라진 것이다. 노 첨지가 관아로 달려가 포졸들을 데리고 오 서방네를 덮쳤지만 살림을 몽땅 팔아치우고 어디론가 사라진 게 일년 전이다. 노 첨지는 잽싼 추노꾼 두 사람을 구해 대근이와 오숙이년을 잡으러 보냈다. “대근이놈은 죽여도 좋다. 오숙이년은 생포해 와야 하느니라!” “알겠습니다, 나으리.” 오숙이의 싱싱한 몸도 몸이지만 지 애비가 딸년 몸값으로 받아 간 논 열다섯마지기가 아까운 것이다.

대장간 풀무질에 벌겋게 단 쇳덩어리를 두드려 낫도 만들고 칼도 만들자 주인 마누라가 함지박에 저녁상을 차려 왔다. 이튿날이 장날이라 늦게까지 망치질이다. 그때 ‘와장창’ 함지박 저녁상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주인 마누라가 자루에 쑤셔 박혔다. 큰 망치질 하던 대장간 주인이 벌겋게 단 쇠막대기를 들고 달려들었지만 복면을 쓴 또 다른 괴한의 발차기에 나가떨어졌다. “이놈은 죽이라 했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대장간 주인의 목을 치려는데 어디선가 날렵한 발이 솟아올라 손목을 걷어차자 단검이 허공을 날아 지붕 위에 떨어졌다.

노 첨지 집에서 백오십리나 떨어진 대장간이 아수라장이 됐다. 대장장이는 집사 대근이고 저녁상을 함지박에 이고 오다가 자루 속에 납치된 대장장이 마누라는 노 첨지의 첩 오숙이다. 두 괴한은 노 첨지가 보낸 추노꾼들이다. 나중에 대장장이 대근이 목숨을 살려낸 괴한은 누구인가? 노 첨지 마누라가 보낸 추노꾼이다. 추노꾼들은 쓸데없이 서로 싸우지 않았다. 자루에 납치된 오숙이는 노 첨지에게 갔고 노 첨지 마누라의 간부(姦夫)였던 대근이는 노 첨지 마누라에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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