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5주일 강론(나해)
후회 없는 헌신적인 삶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세상을 흔히 고통의 바다라고 일컫습니다. 기쁨과 즐거움보다 고통과 슬픔이 많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 고통의 주종을 이루는 것이 바로 질병입니다. 사람들은 결국 늙고 병들어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주님께 되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대중 가수의 노랫말처럼 인생이란 나그네 길로서 잠깐 머물렀다가 지나가는 구름과 같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주어진 생이 끝나면 하느님 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인간의 한계요 우리 자신의 참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라고 호언하며 천하를 제패하던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도 결국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쓸쓸하게 최후를 마칠 때 사제를 불러달라고 한 것은 인간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낳아주신 분에게 돌아가야 하는 이 짧은 나그네와 같은 인생살이에서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축복을 받고 모든 일이 하느님 은총 안에서 잘 이루어지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악하게 사는 사람 또 크게 악하지
않더라도 하느님을 외면한 채 차갑고 냉정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형태로든지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형벌 이 어떤 경우에는 사업상의 실패일 수도 있고 질병일 수도 있고 그 밖의 갖가지 형태의 고통과 괴로움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이 오늘 제1독서 용기의 경우처럼 착한 사람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욥은 뜻밖의 재난을 거듭하면서 불행한 신세가 됩니다. 온몸에는 문둥병 같은 것이 생겨 참으로 비참한 신세로 전락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엘리바즈,빌닷,소바르 등 욥의 세 친구가 찾아와서 욥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욥이 사람들 눈에는의롭게보였지만 이렇게 큰 재난을 당한 것은 필경 그 어떤 잘못 때문에 하느님께 벌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것은 당시의 유다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닌 공통된 사고방식입니다. 오늘의제1독서는 그중 엘리바즈의 첫 조언과 충고를 듣고 난 뒤욥이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으로 답변하며 기도드리는 내용입니다. 욥은 인생 그 자체가 고역이며 종살이라는 염세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즉 인생무상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욥은 다시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한 가닥의 희망을 두고 있습니다. 자기의 비참한 신세를 하느님께서 잊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욥은 하느님께 간절히 애원합니다. 자신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해 주시 고 이 고통의 현실에 빨리 개입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결국 욥은 고통의 시련이 끝난 다음,전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욥의 이야기에서 이제는 예수님의 삶으로 눈길을 돌려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온갖 고통과 시련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기 위해서, 오늘 예수께서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워있는 것을 아시고 인간적인 자상함과 따스함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그러자 그녀는 온전히 낫게 되고 예수와 그 일행을 위해 봉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환자를 낫게 하시는 치유의 기적은 그분이 바로 고통에서 인간을 해방시키심으로써 하느님의 사랑과 권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의 이 엄청난 기적을 보고 너도 나도 몰려들었으나 예수께서는 이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자신의 심한 피곤함도 아랑곳없이 목자적인 사랑으로 정성을 다해 치유해 주시고 이들에게 참 평화를 주셨습니다. 욥을 고통에서 구해 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의 사랑의 손길을 통해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해주신 것으로 바뀌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예수께서는 아침 일찍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셔서 아버지 성부께 기도하셨으며 한곳에만 머무르지 않으시고 다른 곳에 가서도 전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기도를 바탕으로 모든 힘을 쏟아 사람들의 쓰라린 상처를 어루만져 치유해 주신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할것입니다. “나는 이 일을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라고 하심으로써 당신의 사명이 복음 전파에 있음을 뚜렷하게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인들 왜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자기를 환영하고 반겨주는 사람들 틈에서 안주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평화와 기쁨 속에서 지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더 큰 목표를 향해 십자가와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나아가시면서 자신의 삶이 바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데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이 점에 있어서 예수를 닮았는데 오늘 제2독서 고린토1서에서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 1고린 9.16)라고 단언하십니다. 이어서 “나는......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1고린 9.19)라고 자신의 고난에 찬 삶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윌리암 보덴 씨는 1904년, 시카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큰 낙농장의 법적 상속인으로 이미 백만장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세계 일주를 시켰습니다. 그는 아시아, 중동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마음에 큰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보내는 편지에다
“나는 일생을 전도사업과 그 일에 대한 준비에 바치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했을 때 그의 성경 뒷 표지에 “지체할 수 없음(No Reserve)'이라고 썼습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면서 좋은 보수가 보장된 일자리를 거절하고 성경 뒷장에 이번에는“후퇴 없음(No Retreat)'이라고 썼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중국에 있는 회교도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항해하던 중 선교준비를 하려고 우선 이집트에 들렀습니다. 이곳에서 그만 뇌막염이 발병하여 한 달도 못되어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겠지요.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던 게야. 헛된 일을 했었군!”
그의 성경 뒷장에는 위에 썼던 두 가지의 결심 밑에 “후회 없다(No Regret)'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생애의 어떤 때든지 적용이 됩니다. 지금 나는 이 순간에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 가슴에서 타오르는 열정은 무엇입니까. 남은 여생을 하느님을 모르고 사는 잊혀진 땅에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것인가?
2018년에는 우리 자신을“지체함이 없이”,“후회함이 없이”그리스도께 순종하도록 결심합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성공하든지 고난을 만나든지 간에 언제라도 하느님의 본향으로 부르실 때“후회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은 결코 후회가 없는 법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결과를 보시기보다 우리가 그분의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그 마음,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십니다. 실상 우리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하느님 나라에 이르는 길목에는 많은 가시밭길과 십자가의 여정이 있습니다. 그것이 질병일 수도 있고 인생의 갖가지 시련일 수도 있습니다. 이 숱한 시련을 이기고 주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주어진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그분의 도우심을 받아 인내로 살아가는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가운데 주님의 기쁜 소식을 소리 높이 외쳐 모든 이가 그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