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0주일 강론(다해)
위기가 기회가 된 선교사의 삶
제가 이곳 잠비아에 온 지도 벌써 5 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이 8월 13일이니까 한 달하고 이틀이 되면 모든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5 년이란 세월이 처음에는 무척 길게 느껴졌는데 벌써 5년이 되어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전건립공사가 남았기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예상컨대 9월 중으로 마무리하고 주교님 모셔서 축성식하고 10월 중순 경에는 귀국할 예정입니다.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남은 1년이란 세월을 잘 마무리하고 은퇴할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저의 교구의 후배 선교사 사제들이 남미로 가서 중도에 돌아갔고 마다가스카르에 있던 한참 후배 선교사 신부도 코로나 때문에 선교지로 복귀 못하고 한국의 교구로 돌아간 걸 생각하면 저는 그래도 끈기를 발휘해서 오늘까지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2년 전인 2020년 8월경에 저의 한국 주교님께 한국으로 귀국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때 이미 인사발령이 다 마무리되어 발표만 남겨두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몸도 마음도 피곤했고 제가 어떤 분을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보이스피싱으로 추정되는 어떤 세력으로부터 일종의 협박(?)을 받고 있던 때라 밤잠을 자지 못하고 몹시 괴로워하던 중 어떤 분의 자문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교님께 직접 전화로 연락을 드렸는데 주교님은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았으니 이곳 교구장께 양해를 하고 돌아와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밤새도록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만에 저의 결심을 변경하여 남은 임기 힘들지만 마무리하고 돌아가겠노라고 직접 또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 자신이 가볍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마음을 크게 먹고 임기를 다 마치고 귀국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고나서 2021년 6월에 본당회관, 교육관을 완공하고 한국에 휴가를 가서 잠비아의 실정을 소개하고 후원을 받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새 성당을 크게 짓게 된 것입니다. 지금 85퍼센트 정도 완성이 되었는데 마무리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잘 완성되리라 믿습니다. 현재 1억 정도가 부족한 실정인데 하느님께서 후원자를 보내 주셔서 완공하리라 믿습니다. 성경에 “두려워 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365회나 나오는데 이는 매일 매일 두려움 없이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 믿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라 봅니다. 저에게는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입니다.
오늘 연중 제 20주일의 성경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사명이 어떠한지를 잘 말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예레 38,4-6.8-10)의 예레미야 예언자, 복음(루가 12,49-53)의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이 살아가던 그 시대의 말씀의 선포자로서 많은 역경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자각하였기에 시련을 겪으면서도 소신을 지니고 꿋꿋하게 진리를 외쳤습니다. 그 길은 비록 외롭고 역경에 처한 길이었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경우, 기원전 587-586년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의해 결정적으로 포위되기 직전, 계속해서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고하였습니다. 유다의 입장으로서는 바른말을 하는 예레미야 예언자가 밉기만 하였습니다. 반국가적 인물이었던 셈이지요. 그래서 왕정 주변의 권력자들은 그를 잡아 웅덩이에 가둡니다. 그런데 궁중의 인물인 에벳멜렉은 예레미야를 이해하고 왕을 설득시켜 그의 구명을 실현시켰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언자의 길이 얼마나 험하고 어려운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불신과 저버림을 당할 때의 심정을 "아, 아,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나라 사람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옵니다."(예레 15,10)라고 이야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합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루가 12,49-50) 여기서 나타나는 불과 세례는 그분의 수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수난은 완전히 살라버리고, 정화시키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길로서 설명되기도 하고, 고통과 죽음의 깊은 물속에 잠기는 침례 행위로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삶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어떤 의미에서 평화를 주기보다는 진리와 말씀 때문에 마음에 갈등과 혼란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평화보다는 분열과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가져다 주는 참 평화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제가 피데이 도눔 선교사로서 이곳 잠비아에서 살아가면서 매일 매일 가난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겪는 고통은 마치 빚쟁이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빚 독촉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어찌 남을 도와주는 것이 마냥 기쁘기만 하겠습니까? 짜증이 날 때도 많지요. 언제까지 이 사람들에게 시달려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을 뿌리칠 수 없어서 기쁘게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이것이 제가 져야 할 십자인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늘과 땅의 징조는 알면서도 이 시대의 뜻을 왜 알지 못하느냐?"(루가 12,56)고 하시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참된 주님의 길이 무엇인지, 이 시대의 표징이 어떤 것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참 뜻,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를 정확히 헤아리기 위해서는 세속의 헛된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오늘의 제2독서 말씀,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인 예수만을 바라봅시다."(히브 12,2)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가도록 합시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예언자로서 소명을 다하고 주님의 참 뜻을 실천하는 당신의 사랑받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