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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론

미사의 값어치/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대축일 가해

작성자simon|작성시간26.06.06|조회수36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대축일 (가해)

  미사의 값어치

 미사 성제에서 일어나는 성체성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예화를 소개하며 오늘의 강론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룩셈부르크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로 전해지는 이 감동적인 대화와 일화의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며칠 동안 굶어 뼈만 남은 누추한 차림의 가난한 부인이 정육점에 들어왔습니다. 부인은 정육점 주인에게 간절하게 부탁했습니다.
부인: "주인님, 저희 가족이 며칠째 굶고 있습니다. 돈은 한 푼도 없지만 고기를 조금만 주실 수 없을까요?" 
 당시 종교에 냉담하고 야박했던 정육점 주인은 코웃음을 치며 거절하려다, 옆에 있던 친구(산림감시원 대장)의 눈도 있고 해서 퉁명스럽게 되물었습니다.
정육점 주인: "고기를 그냥 줄 순 없지! 돈이 없다면 대신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소?"
부인: "가진 돈은 없지만, 대신 오늘 당신을 위해 미사(Mass) 한 대를 봉헌하고 당신을 위해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종교에 관심이 없던 정육점 주인과 그의 친구는 비웃으며 말했습니다.정육점 주인: "좋소! 그럼 미사를 드리고 와서 그 증거를 가져오시오. 그 미사 쪽지의 무게만큼 고기를 달아 주겠소.
 
 부인은 정육점 주인의 말을 믿고 성당으로 가 정성껏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에게 받은 <이 부인은 정육점 주인을 위해 미사를 봉헌했습니다>라고 적힌 아주 가볍고 작은 종이 쪽지를 들고 다시 정육점으로 왔습니다
 정육점 주인은 비웃으며 고기를 다는 구식 양팔 저울의 한쪽에 그 가벼운 종이 쪽지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반대편 저울판에 아주 얇고 작은 고기 한 점을 툭 던졌습니다. 당연히 고기 쪽으로 저울이 기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저울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종이 쪽지 쪽으로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 당황한 주인: 더 큰 고기 덩어리를 저울에 올려놓았습니다. 여전히 저울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 불안해진 주인: 아예 커다란 소다리 한 짝을 통째로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가벼운 종이 쪽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저울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적을 눈앞에서 목격한 정육점 주인과 그의 친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인은 자신이 신을 조롱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가난한 부인에게 큰 고기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정육점 주인은 매일 미사에 참석하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이 바치는 그 어떤 물질(황금, 고기, 재물)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미사 한 대'의 영적 가치와 무게를 능가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이 사랑을 표시하는 신적인 방법입니다. 즉 자신의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소중한 성사가 바로 성체성사이고 이 성사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다른 이들에게 성체성사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의 핵심인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기리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자로서 살아있고 없고의 기준은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있느냐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체는 곧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성체를 받아 모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있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내 마음 속에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그분께서 그러하셨듯이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며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하셨으며 자신을 죽인 원수까지도 용서하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 제 영혼을 당신께 바칩니다.”라고 하시며 “이제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성체는 이처럼 철저한 자기희생과 완전한 봉헌을 뜻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바쳐서 온 세상을 살리는 일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미사 중에 축성되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 즉 성체와 성혈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알아듣기 힘들지만 실체적인 변화를 통해 단순한 빵과 포도주였던 것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 즉 성체와 성혈로 성변화됨으로써 우리와 매일 함께 계시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서려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혈과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해서는 대죄 없이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마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목욕재계를 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빵과 포도주만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이 없다면 밀떡과 포도주밖에는 안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성체를 받아 모시며 거룩한 신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고는 있지만 늘 부족하고 부끄럽습니다. 왜냐고요? 예수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여 바치는 것이기에 우리들은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래도 다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을 둘러보고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원수가 되어서 살고 있습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빵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3-56)”

이 생명의 빵은 구약에 내려주신 만나를 연상케 합니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신명 8,3)
새로운 신약의 만나로 주어진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를 하나로 일치시켜 줍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6-17)”

 오늘의 거룩한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대축일을 지내면서 늘 주님의 뜻에 맞는 거룩한 생활로써 성체를 받아 모시고 주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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