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남일해..
남일해 (본명 정태호)는 1938년 11월 대구 남산동 남문시장 근처에서 태어나,
대구 중앙초등학교, 대건중학교,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남일해는 1959년 노래 '비내리는 부두'로 데뷔한 후 1961년 '이정표', 1962년 '첫사랑 마도로스',
1963년 '빨간구두 아가씨', 1964년 '맨발로 뛰어라' 등 많은 히트곡을 냈다.
연예인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2002년 KBS 가요대상 공로상, 2012년 제19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을 받았다.
남일해는 가수 최희준과의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으면, 남일해의 노래 '빨간구두 아가씨'는
당시 금기시되던 빨간색을 대중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저음가수 가요 60년사에 갈채를 받은 가수도 많고 화려했던 스타도 많았지만
남일해 (본명 정태호)만큼 멋있고 매력적인 저음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가수는 없었다.
1960년도 조용하고 잔잔한 분위기에 감정이 흠뻑 젖어드는
「비내리는 부두」로 가요계에 데뷔, 대중들을 열광케 했다.
당시 일본의 노래가 국내에 반입이 금지된 시절이지만,
밀수로 흘러들어온 레코드를 통해 동양최고의 저음가수로 군림하던
일본의 후랑크 나가이의 노래 "유락정에서 만납시다" "동경 오전 3시"등이 유행되면서
국내팬들은 저음 가수의 매력에 끌려 있을때였다.
남일해가 가수가 된 계기는 1958년 고향인 대구 대건고등학교 3학년때
그곳에서 열린 오리엔트 레코드사 전국콩쿨대회(대도극장)에 출전해
특등(대상)상을 받은것이 인연이었다.
60년 서울에 올라온 그는 킹스타 레코드에서 "비내리는 부두"을 낸 것 히트를 해
한국 최고의 저음가수 남일해가 탄생된 것이다.
이때 까지만 해도 앞 뒤 한곡씩 수록되는 SP레코드의 시절이었다.
이때부터 "남일해 선풍"이 일어나기 시작, 대구에선 처음 탄생한 향토출신 가수라는 이유 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군림하게 됐다.
그 후 "찾아온 산장" "그대만 의 블루스" "이정표"등 발표하는대로 히트를 했다.

동성로를 걸어가던 빨간구두 아가씨 1965년 히트한 `빨간 구두 아가씨' 는
`제가 가수가 되기까지 힘의 근원지였던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항상 향수병에 시달렸 어요.
뭔가 대구를 대표하는 곡을 불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 가요의 흐름상 지명이나 답답한 노래는 쳐지는 시기라 고민을 하던중
대구 대건고등학교 재학시절 서울의 명동이라 불리는 동성로 를 걷다가
한 아가씨가 빨간 구두를 신고 걸어가던 모습이 인상깊어 작곡가인 김인배 씨에게 부탁한 곡입니다.
그는 `37년 동안 음악활동을 해오면서 저를 키워준 대구시민에게 보 답을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60년대와 70년대 특유의 저음으로 대중에게 다가선 그는
어릴때 추억을 담아 가사에 담아낸 빨간구두 아가씨,빠른 템포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저음이 돋보이는 이 노래는 아직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널리 불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