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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와 어순이 비슷한 거란어, 여진어와 조선어

작성자공정-언어|작성시간11.07.10|조회수500 목록 댓글 0

<출처>

 

남송 때의 유명한 문인 홍매(洪邁, 1123-1202)는 소흥 말년에 한림학사의 신분으로 금나라에 사신으로 간적 있다. 금나라에서는 그를 강박하여 그가 올린 표(表) 중에서 남송을 신하의 나라라고 고치라고 하였으나 그가 거절하는 바람에 금나라의 사관에 억류되여 있다가 겨우 풀려나서 남송으로 돌아온 적 있다. 그 때의 체험으로 바탕으로 하여 저술한 잡록집『이견지(夷堅志)』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재미나는 사실을 기록했다.

契丹小兒初讀書, 是以俗語顚倒其文句耳習之, 至有一字用兩, 三字者. 頃奉使金國時, 接伴副使秘書少監王補, 每爲與言以爲笑. 如“烏宿池邊樹, 僧敲月下門.”兩句, 其讀時則曰:“月明里和尙門子打, 水底里樹上老鴉坐.”. 大率如此. (《夷堅志》 第卷十八, “契丹誦詩)”

이를 조선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거란족의 아이들이 서당에 가서 글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습관적으로 그네들의 말로 원문의 어구들을 거꾸로 놓고 익혔는데 원래는 한자인데 결국에는 두자, 석자로 늘어났다. 이전에 내가 어명을 받들어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비서성 부장관 왕보라는 사람이 나를 배동하는 부사로 있었다. 우리들이 함께 있을 때 왕보는 늘 나에게 이러한 우스개를 들려주었는데, 이를테면 “조숙지변수, 승고월하문”이라는 두 구절의 시구를 읽을 경우에 거란사람들은 “달이 밝은데 중이 문을 두드리고 물밑의 나무우에 까마귀가 앉아있네”라고 읽는다고 했다. 대가 모두 이러하였다.

한족인 홍매가 한어의 자대로 거란어나 여진어를 가늠해보니 거란어나 여진어는 한어와 다른 두 가지 점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첫째, 단음단자단의(單音單字單義)인 한자한어와는 달리 거란어나 여진어는 다음절어라는 점이다. 그래서 홍매는 “원래는 한자인데 결국에는 두자, 석자로 늘어났다.”고 기록하였다.

둘째, 일반적으로 “주어→술어→보어”의 어순을 가진 한어의 어순으로 일반적으로 ““주어→보어→술어”의 어순을 가진 거란어를 바라보면서 홍매는 “ 그네들의 말로 원문의 어구들을 거꾸로 놓고 익혔다”고 기록했던 것이다. 이밖에도 한어의 개사, 련사들은 흔히 앞에 놓이나 개사(介詞)나 관련사(關連詞)들과 비슷한 문법적기능을 갖고 있는 거란어의 조사들은 뒤에 놓이니 홍매 같은 한인들이 바라보니 자기네의 한어와는 어순이 전도되였다고 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거란어나 여진어는 는 분명히 조선어와 비슷한 어순을 갖고 다음절어를 위주로 하는 점착어로서의 알타이어계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

거란인들은 중국 동북경내에서 활약했던 고대 민족 동호(東胡)에서 발전된 민족이였다. 동호와 숙신의 중간에 위치하여 살았던 조선민족의 조상인 예맥(濊貊)은 혈통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동질성을 갖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홍매의 이상의 문자기록은 아주 짧은 기록이지만 상당히 소중하다.

당나라시기의 시인 가도(賈島)의 “烏宿池邊樹, 僧敲月下門”이라는 이 시구를 조선어로 번역해도 “月明里和尙門子打, 水底里樹上老鴉坐.”와 어순이 거의 완전히 같아진다. 즉 “까마귀는 못가의 나무우에 깃들고, 중은 달빛아래서 문을 두드리네.” 라고 번역을 하겠으니 역시 거란족의 아이들이 가도의 이 시를 어순을 전도하여 읽은 것과 꼭 같다.

사실 고려조나 조선조 시대의 사대부문인들이 동북경내에 사는 거란인이나 여진인, 만족 등 유목, 수렵족들을 야인, 야만이라고 폄하하고 깔보았지만 사실은 같은 족속에 속했음을 이 한 단락의 기록에서 분명히 보아 낼 수 있다.

조선반도의 후세의 고루의 사대부문인들은 자기도 “오랑캐”이면서 자기는 “소중화”라고 자부하면서 루루 수백년 동안 자기와 같은 족속들인 거란, 여진, 만족들을 오랑캐, 야인, 야만이라고 폄하하고 질시했으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특히 함경도 사투리나 지명 같은 데는 여진어의 요소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사례를 몇 개만 들어보기로 하자.

첫째, 함경도 사투리에서의 만주어의 요소

㉠ 순대는 만주어의 셍지두하(senggi - duha)에서 왔는데, 만족들이 많이 살았던 동북지역에는 지금도 혈장(血腸)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다. ㉡ 부스깨는 만주어 부스쿠(fusku, 鍋臺)에서 왔다.

㉢ 쌔씨개(미치광이)는 만주어 사스헤이(sashei, 畜生)에서 왔다.

㉣ 배재(울타리)는 만주어 바산(basan)에서 왔다.

㉤ 버들과 만주어의 보드(fodo)능 어원이 동원일 가능성이 높다.

㉥ 어시(어버이)는 만주어의 어시(exi)에서 왔다.

둘째, 지명, 산명, 강명 등에 보이는 만주어의 요소

㉠ 두만강은 만주어의 두만(수자 萬 또는 많다는 뜻)에서 왔음.

㉡ 나단산(함북 경원에 있는 살바우산의 별칭)은 여진어 나단(일곱이라는 뜻)에서 왔는데, 나단산은 봉우리가 일곱개이다.

㉢ 함북단천과 성진과 마천령은 원래는 이판령이라고 했는데 이판은 여진어로 소라는 뜻이다.

㉣ 함북 회령의 두만강지류인 보을천(甫乙川)의 만주어 보을에서 왔는데 보을은 버들이라는 뜻이다.

㉤ 지금 중국 경내의 두만강 수계에 속하는 가야하, 해란강, 부르하통하, 연지하 등 강명은 모두 만주어에서 왔고, 훈춘, 화룡, 왕청, 연길, 화룡 등 지명은 모두 만주어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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