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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휴양림

[201220]원주.횡성 3박4일-원주치악산

작성자김교돈|작성시간21.01.05|조회수51 목록 댓글 0

[용소막성당]
강원 원주시 신림면 구학산로 1857
 
풍수원성당의 전교회장으로 있던 최석안이 고종 광무 2년(1898) 원주 본당 공소인 초가집에서 모임을시작하여
초대 주임 프와요(Poyaud, 表光東) 신부가 매입해서 개조한 초가집을 성당으로 사용
광무 8년(1904.5.4)에 설립되었으며 
1914년에 제3대 주임으로 부임한 시잘레(Chizallet, 池士元) 신부 때에 현재의 새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는 본당에 부임하자마자 직접 성당을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데려다가 성당 건축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1년 여 만인 1915년 가을에는 건평 100평의 벽돌조 양옥 성당을 완공하고, 프랑스 ‘루르드(Lourdes)의 성모’를 주보(主保)로 하여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이 성당은 정면 중앙부에 높은 첨탑을 갖춘 고딕식 건물로, 성당의 평면은 삼랑식(三廊式)이다. 내부 공간은 목조의 열주에 의해 신랑(身廊)과 측랑(側廊)이 구분되고, 정면에 제대부가 있는 서양식 성당 건축의 일반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뒤쪽에 성당의 부속건물인 성 라우렌시오 유물관이 있다.
용소막에서 태어나 ‘말씀의 성모.영보 수도원’을 설립하고 성경 번역에 큰 발자취를 남긴 원주교구 소속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의 삶과 공적을 기리는 곳이다.
성서학자였던 선 신부는 성서의 공동 번역 주관자로 1955년부터 1976년까지 성서를 번역했는데 유물관에는 유품뿐 아니라 한글과 영어 성서는 물론 라틴어 성서와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등 여러 나라의 다양한 성서와 자료들이 풍성하게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은 '말씀의 성지'로 불린다.
 
입구에 큰 돌표지석과 넓은 주차장이 있고
아름드리 느티나무들과 피정의 집 등 여러 건물이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성당 내부와 유물관은 들어가지 못하였다.

[원주 치악산자연휴양림]
숲속의집 꾀꼬리 숙소로 이동
오르는 길의 경사가 아주 심하다
며칠 전에 눈이 많이 왔는지 지금도 하얗게 남아 있다.
도로변에 차를 주차 하고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짐을 옮겼다.

 
[박경리문학공원]
강원 원주시 토지길 1
 

한국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칭송받고 있는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 「土地」를 주제로 선생님의 문학세계를 탐방할 수 있는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은 소설 「土地」의 산실인 박경리 선생님이 옛집이 1989년 택지개발지구로 편입되어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을 염려한 문화계의 건의에 따라 한국토지공사의 시공으로 1997년 9월 착공하여 1999년 5월 완공 되었다.
11,438.4㎡ 부지에 꾸며져 있는 박경리문학공원은 박경리 선생님의 옛집과 정원, 집필실 등을 원형대로 보존하였고, 주변공원은 소설 「土地」의 배경을 옮겨놓은 3개의 테마공원 <평사리 마당, 홍이 동산, 용두레벌>으로 꾸며졌다.

 

특히 박경리 선생님의 옛집은 박경리 선생님이 1980년 서울을 떠나 원주의 이 곳 단구동으로 이사와 살면서 소설 「土地」 4부와 5부를 집필하여 1994년 8월 15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곳으로,
2층 연면적 211㎡ 규모이며 대지면적은 약 2,512㎡로 박경리 선생님이 손수 가꾸던 텃밭과 나무 등 선생님이 생활하시던 자취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박경리문학의 집을 2010년 8월 15일 개관함에 따라 대문호의 일상과 삶의 자취는 물론, 평생을 집대성한 거대한 문학의 산맥을 한 자리에서 모두 느끼고 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공원 내에 북카페를 두어 1층에서는 선생님 관련 책자는 물론 다양한 서적을 볼 수 있게 하였고, 2층은 최희응 선생님이 평생 동안 수집한 일제강점기 교과서와 자료들을 기증 받아 「土地」의 주요 시대적 배경을 볼 수 있는 특별전시장을 마련하였다.
 
<박경리 연보>
 
1926년 경상남도 충무시 명정리에서 박수영씨의 장녀로 출생. 본명 박금이
 
1945년 (20세) 진주고등여학교 졸업. 김행도씨와 결혼.
1946년 (21세) 딸 김영주(현 토지문화재단이사장) 출생.
1948년 (23세) 남편의 인천 전매국 취직으로 인해 인천 금곡동으로 이사
 
1950년 (25세) 5월 19일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가정과 졸업, 황해도 연안여중 교사
12월 25일 남편과 사별. 이때부터 창작에 전념.
1953년 (28세) 환도 후 잠시 신문사, 은행 등에 근무.
1955년 (30세) 8월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이 김동리에 의해 초회 추천.
1956년 (31세) 8월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김동리에 의해 2회 추천되어 본격적인 문단활동 시작.
1957년 (32세) 단편 「불신시대」로 제3회 『현대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1958년 (33세) 첫 장편 『애가』를 『민주신보』에 연재.
1959년 (34세) 장편 『표류도』를 『현대문학』(2월-11월)에 연재하고 대한교과서에서 간행. 이 작품으로 제3회 ‘내성문학상’ 수상.
 
1960년 (35세) 장편 『성녀와 마녀』를 『여원』(4월-1961년 3월)에 연재.
1962년 (37세) 전작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유문화사) 간행.
1964년 (39세) 장편 『파시』를 『동아일보』(7월-1965년 5월)에 연재. 『시장과 전장』을 현암사에서 간행.
1965년 (40세) 장편 『시장과 전장』으로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 수상.
1966년 (41세) 수필집 『Q씨에게』, 『기다리는 불안』을 현암사에서 간행.
1968년 (43세) 단편 「우화」(『월간중앙』4월), 「약으로도 못 고치는 병」(『월간문학』 11월) 등 발표.
1969년(44세) 대하소설 『土地』1부를 『현대문학』에 연재(9월-1972년 9월), 「죄인들의 숙제」를 『경향신문』에 연재.
 
1972년 (47세) 『土地』 2부를 『문학사상』(10월-1975년 10월)에 연재. 『土地』 1부로 제7회 ‘월탄문학상’ 수상.
1973년 (48세) 딸 김영주와 시인 김지하 결혼. 『土地』 1부(삼성출판사) 간행.
1974년 (49세) 장편 『단층』을 『동아일보』(2월 18일-12월 31일)에 연재. 『土地』 2부(삼성출판사) 간행.
1976년 (51세) 『박경리 단편선』(서문당) 간행
1977년 (52세) 1월부터 『土地』 3부를 『주부생활』, 『독서생활』, 『한국문학』 등에 연재.
1979년 (54세) 박경리 문학전집(전16권)을 지식산업사에서 간행. 작품집 『영원한 반려』(영서각) 간행
 
1980년 (55세)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지금의 박경리문학공원)에 정착. 『土地』 3부(삼성출판사) 간행.
1981년 (56세) 『土地』 4부를 『마당』에 연재 시작(1981.9 - 1982.7).
1983년 (58세) 『土地』 4부를 『정경문화』(7-12월)에 연재. 『土地』 1부를 8권으로 일본어판 출간(안우식 역/문예선서).
1984년 (59세) 『한국일보』 창간 30주년 기념 ‘한국전후문학 30년 최대 문제작’ 선정에서 선우휘의 『불꽃』, 황석영의 『장길산』과 함께 『土地』가 선정됨.
1985년 (60세) 수필집 『원주통신』(지식산업사) 간행.
1987년 (62세) 연재가 중단되었던 『土地』 4부를 『월간경향』에 다시 연재 시작(1987.8 - 1988.5).
1988년 (63세) 『土地』 1부 - 4부를 삼성출판사에서 간행. 시집 『못 떠나는 배』(지식산업사) 간행.
1989년 (64세) 『土地』 1부 - 4부 개정판을 지식산업사에서 간행.
 
1990년 (65세) 제4회 ‘인촌상’ 수상. 중국 기행문 『만리장성의 나라』와 시집 『도시의 고양이들』을 동광 출판사에서 간행.
1991년 (66세) 8월 26일부터 2000년 2월 28일까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한국문학의 이해’ 강의.
1992년 (67세) 9월부터 『土地』 5부를 『문화일보』에 연재 시작. 3월 1일부터 8월 23일까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소설 창작론’ 강의.
1993년 (68세) 『土地』 1부 - 4부, 5부 1권(전 13권)을 솔촐판사에서 간행.
1994년 (69세)
8월 15일, 집필 26년 만에 『土地』 탈고, 전5부 16권으로 솔출판사에서 완간. 『土地』 1부를 프랑스 벨퐁출판사에서 불어판 출간(민희식, 앙드레 파브르 공역).
8월 27일,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
10월 6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올해의 여성상’ 수상.
12월 3일, 유네스코 서울협의회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
1995년 (70세)
3월 1일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객원교수로 임용. ‘소설 창작론’, ‘문학 연구 방법론’ (대학원) 등 강의.
『土地』 1부를 영국 키건폴출판사에서 영어판 출간(홍명희 역).
『김약국의 딸들』 불어판 출간(민희식, 지젤 메이어 변 공역).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를 현대문학사에서 간행.
1996년 (71세)
3월 22일, 제6회 ‘호암예술상’ 수상.
4월 26일, 칠레 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 기념 메달(Gabriela Mistral Commemorative Medal)’ 수여.
5월 17일, 토지문화재단 창립 발기인 대회.
1997년 (72세)
1월, 연세대학교 용재(백낙준) 석좌교수로 임명됨.
8월 『시장과 전장』 불어판 출간(권순재, 올리비에 이코르 공역).
8월 15일 ‘토지문화관’ 기공식.
1999년 (74세) 6월 9일, ‘토지문화관’ 개관식. 토지문화관 이사장으로 취임.
 
2000년 (75세) 시집 『우리들의 시간』(나남) 간행. 출판인이 뽑은 20세기 “우리의 최고의 작가”에 선정.
2002년 (77세) 1월 나남출판사에서 『土地』를 총 21권으로 재출간.
2003년 (78세)
1월 『만리장성의 나라』(나남출판) 재출간
1월 청소년 『토지』 발간
새 장편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미완)를 『현대문학』 (4 - 6월, 원고지 440매 분량)에 연재.
4월 문화와 환경전문 개간지 『숨소리』창간(2004년 말 폐간)
7월 첫 장편동화 『은하수』(이룸) 출간
9월 『성녀와 마녀』(인디북) 재출간
2004년 (79세)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이룸) 간행.
2005년 (80세)
11월 팔순잔치
12월 팔순기념 시화전 참석(박경리문학공원)
2006년 (81세) 8월 15일 박경리선생 옛집 토지 집필실 개관(단구동)
2007년 (82세)
5월 만화가 오세영 작 만화 『토지』(마로니에북스)1부 7권으로 출간
5월 13년만의 신작 산문 · 소설집 『박경리 신원주통신-가설을 위한 망상』(나남출판사) 간행
7월 청소년용 『토지』(이룸)12권으로 완간
8월 15일 제1회 ‘소설 토지의날’ 참석(박경리문학공원)
12월 동화 『토지』(이룸) 1부 10권으로 출간
2008년 (83세)
3월 『현대문학』4월호에 ‘까치설’ 등 신작시 3편 발표
5월 5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타계. 고향인 통영시에 안장.
6월 22일 『버리고 갈 것 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선생 유고시집(마로니에북스) 간행
2009년 5월 추모문집 『봄날은 연두에 물들어』(마로니에북스) 출간
 
월요일 휴관이라 문학의집, 북카페는 관람하지 못하였다.
박경리 선생은인생의 아픔을 글로 승화시킨 훌륭한 작가이다.

 

 
[무위당 장일순 기념관]
한살림 공동체를 설립한 무위당 장일순의 기념관을 방문하여고 했으나
주변만 빙빙 돌고 찾지를 못하여 포기하고 말았다.
 
<원주>

용소막성당  강원 원주시 신림면 구학산로 1857  131km 01:40
박경리문학공원  강원 원주시 토지길 1 132km 01:50 동충주ic 넷째주월요일휴관

출렁다리.간현관광지.소금산 강원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산 116-1  130km 01:47 문막ic
무위당 장일순 기념관  강원 원주시 중앙로 83

섬강
삼산천
오형제바위
구룡사
강원감영
상원사
비로봉
영원산성
미륵불상
뮤지엄산
치악산
칠봉유원지
동화마을수목원
원주한지테마파크


<횡성>
풍수원성당 강원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국립횡성숲체원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청태산로 777
안흥찐빵마을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안흥로 27

상안리명품숲.문재옛길 안흥면 상안리 217-1
횡성호수길
횡성민속장
웰리힐리파크
횡성댐
강원쥬라기랜드
올챙이추억전시관
미술관자작나무숲 2만원 강원 횡성군 우천면 한우로두곡5길 186
병지방계곡
태기산전망대 강원 횡성군 둔내면 경강로 6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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