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숭배는 종종 환멸로 이어진다.(존 파이퍼)
지식이 없는 신앙은 미신적 기복적 그리고 비윤리적 반복음적 신자를 양산한다.
종교심은 타락한 인간 내면에 깊숙이 새겨진 창조로서의 회귀를 향한 갈망이다.
인간은 하나님께로 부터 왔고,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본성이 있다.
하지만 이 종교심(영적 간절함)은 죄로 타락한 이후 부패되고 왜곡되었기에 바른 지식과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서는 가망이 없다.
오래 전에 하나님은 한 민족을 택하시고 모세라는 인물에게 율법을 주시고 자신이 '스스로 있는 자' 임을 계시하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심에 있어 율법을 주신 것을 유의해야 한다. 삼라만상 천하만물을 통해 하나님은 명백히 드러나시나 죄로 타락한 인간은 깨닫지 못하며, 종교심은 그 모든 은혜의 산물들을 헛된 우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일반계시의 우주(宇宙)와 천지(天地)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유익이 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상을 만드는 소재와 대상이 되고 말았다.
기독교 신앙은 말씀의 신앙이다. 말씀만이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라고 한다.
경배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있을 때 가능하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요17:3). 지식과 앎이 없는 종교심만으로는 참된 경배는 불가능하다. 타락한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간절함으론 안 된다. 그 헛된 경배는 참된 지식 없는 숭배이고, 두려움과 불안, 형벌을 피하기 위한 기복에 근거한다.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고, 기도를 통해 성령과 교제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정확히 알고 찾을 수 있겠는가? 허공을 치는 것이 아니겠나.
신심(信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것이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열정과 헌신이 없이 그저 마음 속에서 충동되고 올라오는 신심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경배(사랑과 희생에 근거한 엎드림)가 아닌 숭배(두려움과 심판에 근거한 엎드림)가 되고, 그런 숭배는 더욱 혼미케 한다.
신앙이 강한 자가 교회를 잘 떠난다. 신심이 깊은 자들이 쉽게 환멸을 느낀다.
존 파이퍼 목사가 지적한 바처럼 그것은 맹목적인 숭배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경배 대상에 대한 참된 지식이 없기에, 종교심으로 화려하게 치장되나 그 중심에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이해가 얕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