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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서신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작성자김경근|작성시간26.06.14|조회수67 목록 댓글 0

배역에 몰입하는 배우들

 

배우들은 배역을 맡으면 그 영화 제작이 끝날 때까지 그 배역에 빙의된 것처럼 살아갑니다. 어떤 배우는 영화 제작이 끝난 후에도 그 배역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해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훌륭한 배우일수록 배역에 대한 이해와 깊은 몰입, 그리고 인물 구현을 잘하여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2022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여자 변호사 역을 제안받은 배우 박은빈 씨는 사실 이 배역을 제안 받고도 1년 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그 인물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출연을 결정한 후에는 자폐인을 관찰하고, 공부하고, 분석하며 ‘우영우’ 라는 인물을 구현해 냈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고, 배우 박은빈 씨를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배우들은 배역을 정하고 계약하면 그때부터 그들의 노력과 열정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배역을 소화할 수 있을까 볼 때마다 놀라고 감탄하게 됩니다. 연기파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내용을 넘어 그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빠져들게 됩니다. 가끔은 외모로 유명세를 얻은 젊은 배우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연기로 어색함을 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배우들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모릅니다. 아마 그것은 끊임없는 몰입과 노력의 결과일 것입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후 1:4)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계약입니다. 양자로 삼아 주시겠다는 약속이며, 자녀로 받아 주시겠다는 계약입니다. 너무나 보배롭고 큰 약속입니다. 어떻게 이런 약속을 하실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신데렐라 이야기보다 더 극적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결코 파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계약입니다.

좋은 작품을 계약하고 캐스팅되는 것은 배우 개인에게 행운입니다. 작품 하나로 평생 잊히지 않는 배우가 되기도 하고, 명성과 부를 얻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선택받아 캐스팅 된 자입니다.

 

배역을 맡는 그 순간부터  준비해야합니다. 대본을 외우고, 인물을 연구하고 분석합니다. 모방하고 이해합니다. 배역 때문에 몸무게를 10킬로그램 이상 감량하기도 하고, 또 20킬로그램 이상 체중을 늘리기도 합니다. 한 컷을 위해 머리를 자릅니다. 삭발합니다. 

어떻게 미련 없이 밀어버릴 수 있을까요?  배우는 배역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부끄럽게 머리만 깎는 것이 아니라, 옷까지 벗습니다. 그것이 배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떨까요? 하나님이라는 최고급 에이전시에 캐스팅되어 보배롭고 지극히 큰 계약을 맺은 배우입니다. 

맡은 역할은 “정욕과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주인공”입니다.

이 역할은 영화 상영 2-3시간짜리 세상의 연기자와는 달리 삶 전체를 통해 그 역할을 구현해 가는 것입니다.

 

연기가 아니라 변화된 삶

 

1980년대 유명한 미국 시트콤 가운데 「코스비 가족」이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는 흑인 배우들을 중심으로 제작되었지만 5년 연속 미국 시청률 1위를 기록했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 빌 코스비는 작품 속에서 가정과 자녀들을 사랑하며 훈계하는 이상적인 아버지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의 아버지’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이상적인 아버지를 연기했던 빌 코스비의 실제 삶은 전혀 달랐습니다.

연기는 연기일 뿐입니다. 드라마에서 싸움을 잘하는 주인공이 실제로는 싸움을 전혀 못할 수도 있고, 영화 속 박식한 교수가 실제로는 무식한 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배로운 약속은 단지 연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성한 성품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은 “종에서 아들로”, “원수에서 친구로”, “유산이 없는 자에서 상속자로” 변화되는 극적인 승격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연기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욱 힘써 믿음의 덕목을 세우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 1:5-7)

 

베드로 사도는 “더욱 힘써”라고 권면합니다. 수고 없이 얻는 열매는 없습니다. ‘무한부득’이라고 땀 흘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세상에서도 수고하지 않고 게으르면 가난해집니다. 영적인 원리가 그것보다 못할 리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일곱가지 덕목을 권면합니다.

 

믿음에 덕이 있어야 합니다. 덕이란 행함입니다. 실천입니다. 믿음을 말하면서 행함도 없고 실천도 없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덕에는 지식을 더해야 합니다. 행함에 지식이 없어 생각이 악하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선해야 합니다. 동시에 지식에는 절제를 더해야 합니다. 앎은 교만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입니다. 절제에는 인내를, 인내에는 경건을, 경건에는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는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에게 이런 덕목에 대한 몰입과 구현이 있다는 뜻입니다. 약속에는 반드시 실천이 있습니다. 행함이 있습니다. 순종이 있습니다. 사데교회에게 주님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을 가졌지만 죽은 자라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행위의 온전함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데 교회의 교훈을 되새겨야 합니다.

 

 영적 근육을 만드는 사람

 

강원도 태백에는 예수원이 있습니다. 성공회의 대천덕 신부가 1965년에 설립한 영성훈련 공동체입니다. 오래전 예수원에 갔을 때 큰 돌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기도는 노동이요 노동은 기도다.” 

노동은 땀 흘리는 고된 일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고된 세상에서 평안을 얻고 안식처를 기대하며 예수원에 찾아옵니다. 근데 그곳에서는 기도가 노동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노동은 세상의 고난이 아닙니다. 세상의 고난은 일로 인해 분주하고, 쫓기고, 바쁘고, 허망한 것들을 위한 고생입니다. 

기도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한 온전한 수고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기도를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라고 했습니다. 신앙이란 고난도 없고, 고생도 없고, 세상에서 누리는 편안함을 주는 유토피아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영원하고 보배로운 약속으로의 부르심에 대한 거룩한 수고입니다. 그래서 희생과 고난을 오히려 마다하지 않습니다. 

 

유토피아라는 뜻은 ‘좋지만 없는 곳’이란 의미입니다. 인생은 고난과 근심과 염려와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여러분은 유토피아를 꿈꾸며 사는 것이 아니라, 보배로운 약속 위에서 힘써 신성한 성품에 합당한 사람의 역할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과거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처럼, 40년 동안 광야를 인내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보배로운 영원한 약속의 계약 당사자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윤삼열 목사님의 책 『리얼타임 스토리』에는 풍선에 관한 재미있는 예화가 있습니다.

 

풍선이 왜 날아갈까요?. 그것은 풍선 속에 있는 기체 때문입니다. 풍선이 높이 나는 것은 색깔이나 크기나 모양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도 가문이나 출신학교, 외모 그리고 재산 등의 외형적인 것에 따라 삶에 열매를 맺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안에 주님의 능력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입으로 불어 넣은 풍선은 오래가지 못하고 가라앉게 됩니다. 그러나 헬륨으로 부풀린 풍선은 손을 놓으면 바로 하늘로 올라가고 잡아 내리려고 해도 뜨게 되지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과학의 원리이고 법칙의 차이입니다. 입으로 불어 넣은 풍선은 이산화탄소가 들어있어 공기보다 밀도가 높아 금방 가라앉게 되고, 헬륨은 공기보다 밀도가 작아 오랫동안 떠 있을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떠오르는 인생, 풍선은 무엇을 불어 넣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육신의 이산화탄소들.. 즉, 게으름, 무지, 교만, 무절제, 미움, 성급함, 나태, 불경건을 불어 넣는다면 여러분의 인생 풍선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당연히 아래로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반면 그 풍선에 산소같은 덕과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 등을 불어넣는다면 여러분의 인생 풍선은 하늘 위로 둥둥 떠오를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 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 1:8~9)

 

베드로는 이런 덕목과 수고가 권면합니다. 게으름으로 이런 덕목과 열매가 없다면, 맹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나 자신의 죄가 어떻게 씻겨졌는지를 잊은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1:10)

 

베드로 사도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인은 게으른 자가 아닙니다. 하늘만 쳐다보고 모든 것이 은혜라고 하는 인생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 광야에서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에 따라 부르심에 합당한 실천을 통해서 영적 근육을 만드는 자입니다. 

그 근육으로 천국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영적 힘을 갖춘 자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천국 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든 체 허약한 모습으로 천국 문을 기어서 들어오길 원치 않으십니다. 천국 문을 열지 못할 정도로 약한 자가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인생의 광야에서 훈련하시고 연단케 하시며 강하고 정금같이 만드셔서 맞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부르심과 택하심에 굳게 해야 합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1)

 

이규한의 <사랑 칼럼>에 실린 글을 예화로 드리고 마칠까 합니다. 

 

『미국의 시골의 통나무집에 한 병약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때문에 집 출입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때부터 그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바위를 밀었습니다. 8개월이 지났습니다. 점차 자신의 꿈에 대한 회의가 생겼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바위의 위치를 자세히 측량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바위가 1인치도 옮겨지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현관에 앉아 지난 8개월 이상의 헛수고가 원통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찾아와 그 옆에 앉으며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지?”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대로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품고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가 전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한 적이 없단다, 그냥 밀어라고 했을 뿐이야. 이제 거울로 가서 내 자신을 보렴” 거울로 갔습니다. 곧 그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울에 비친 남자는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근육질의 남자였습니다. 동시에 어떤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밤마다 하던 기침이 없었구나! 매일 기분이 상쾌했었고 잠도 잘 잤었지.” 하나님의 계획은 바위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변화는 바위를 옮겼기 때문이 아니라 바위를 밀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바위를 옮기는 표적보다 바위를 미는 순종이 더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약속하시고, 신성한 그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더욱 힘써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굳게 하는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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