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성경의 말씀은 진실로 옳다. 나의 생각, 나의 욕구, 나의 갈망, 나의 염려와 근심.. 이 모두는 내게만 너무나 새롭다. 태어나서 아이가 되고 청소년 시기를 거쳐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어 죽기까지 개인에게 다가오는 삶은 모든 순간은 새롭고 긴장된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 실전만 있을 뿐이다. 생경하고, 경의롭고, 두렵고, 흥분되며 당황스럽기까지 한 삶은 새 날(a new day)처럼 날마다 출현한다. 그것을 하나 하나씩 풀어가다 끝내 죽음으로 마친다. 삶 속에서 누구나 정신이 없다. 전후좌우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밀려오는 해일이고 몰아치는 폭풍이다. 전장의 초병처럼 단단히 마음 먹고 닥쳐오는 적군을 긴장하고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삶은 오직 자신에게만 새로울 뿐이다. 자신이 겪은 모든 생각, 욕구, 갈망, 염려와 근심은 과거 역사 속에 인류가 똑같이 경험했던 것이다. 삶은 전혀 새로울 게 없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다. 지구가 태양 궤도를 돌듯 인생도 과거 현재 미래라는 지점만 다를 뿐 동일한 궤도를 돈다. 그러므로 해 아래 새 것이 없고 삶도 동일하다. 과거 선조들의 겪은 모든 것을 현재 내가 겪고, 미래 내 자손들이 겪을 것이다. 다만 그 연결이 망각과 어리석음과 게으름과 교만으로 단절되고 끊겨있기에 모호할 뿐이다.
그렇기에 모두 자신의 삶이 마치 새롭고 처음이고 놀라운 것 같이 신비하게 여길 뿐이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 다 걸어갔던 길이고, 지금도 누군가가 걷고 있는 길이다. 안타까운 것은 전혀 공유되지 않고 분리되었기에, 나만 외로이 새로 발견한 무인도처럼 개척하며 산다. 마치 행성이 각 자 수백만 광년씩 어둠에 떨어져 존재하기에 자신만 홀로인 것 같은 외로운 기분으로..
역사는 돌고 돌고 그 삶은 반복된다. 수백 억개의 은하가 존재하지만 일정한 법칙에 따른다. 영혼도 모두 다르나 존재의 근원과 법칙은 같다. 그들이 겪는 모든 인생 법칙은 같다. 피부색, 언어, 머리 색깔, 목소리, 얼굴, 성별은 다르고 심지어 같은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조차 다르지만 존재론적으로 같고, 같은 원리와 질서 속에서 살며 뿌리와 근원이 같다.
과거의 인생들의 경험과 지혜를 묵상하면 현재의 삶에 유익이 된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지혜가 없다. 그저 현재 자신에게 닥친 삶이 새롭고 독특하고 특별하고 다르다고 믿고 생각하기에 닫히고 단절되고 말았다. 그토록 역사가 반복적으로 말해주는 인생의 동일반복됨과 유한함, 허무함을 알지 못하기에, 모두가 새 것이라고 믿고 생각하며 개척하듯 호기롭게 살아간다.
그렇게 모두 현재를 살며 곧 먼지가 되고 없어지고, 다음 세대가 나타나서 똑같이 반복하며 시간과 역사가 흘러간다.
삶의 존재 이유란 무엇인가? 꽤나 철학적인 질문이고 아무도 아직 알지 못한 질문이다. 반복하는 세상에서 자연 질서와 법칙, 동일한 본성, 지성, 감성을 가진 인간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유한한 인생의 점을 찍으며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면서도 그 지극히 작은 점이 마치 마치 새롭고 영원한 것인냥 느끼고 호들갑을 떨면서 어리석은 선조들처럼 똑같이 반복하다 허무하게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뭘까? 내가 부족함으로 깨닫기론 '삶은 창조주를 아는 학습장'이라 믿는다. 인생의 새로움과 경의로움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와 고난은 인생을 사는 영혼(사람)이 아래가 아니라 위를 쳐다보게 하게 한다. 그리고 결국 인생을 통해서 창조주를 알게 된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더 쉽다. 창조주가 있기에 인생이 존재하는 필연성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삶이란, 창조주를 알게 되는 현장(field)이다. 그것이 목적이다. 나란 존재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는 곳.. 인생.
해 아래 새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이전에 있었고, 모든 것을 선조들이 경험했고 결국 죽고 사라졌다. 인생은 유한하고 허무하다.
희망은 그런 '인생'이 존재하기 때문에 창조주를 알게 된다. 존재하는 모든 삶이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이며 기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