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지 말아라
즐겁게 살아라
잘 사는 것은 생명이 있을 때나 해볼만한 도전이다. 하지만 생명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는 잘 사는 것은 사치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역으로 된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다. 하루 하루 살지만 하루 하루 죽음으로 다가간다.
죽음은 언제 올지 모른다. 갑자기 닥쳐 올지 아니면 수(壽)가 다해 올지 누가 알랴! 분명한 것은 죽음이 순서없이 어김없이 온다는 것이다.
사는 것은 곧 죽는 것이다. 많이 살면 많이 죽어간 것이다. 죽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잘 살려고 아둥바둥한다.
성경에 보니 하나님은 잘 믿어라고 했지 잘 살라고 한 적이 없다. 솔로몬은 잘 살려 하다 인생의 허무함만 절실히 깨달은 인물이다.
잘 사는 것이 나쁜 것이나 틀린 것이 아니지만, 잘 살려다보니 더 못 살고, 잘 살려다보니 더 괴롭고, 잘 살려다보니 하나님까지 버린다.
모두가 잘 살려는 이상과 꿈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그렇게 가르치는지.. 세상에 속은 기분이 든다.
하나같이 다들 잘 살아서, 업적을 남긴 후 죽으려 하는데, 그러다 보니 삶이 고단하고 고난스럽다.
비교, 경쟁, 불만족, 원망, 자학, 자멸... 사실은 잘 살고자 한건데, 정작 잘 살기는커녕 못 살고 만다. 그럴바에야 잘 살지 말라.
즐겁게 살아라. 하루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날을 만족하고 충만하라.
가진 것에 자족하고, 있는 것을 누리고, 주변을 사랑하고, 도움을 받고, 그 분의 안에서 삶을 누려라. 그러면 된다.
암병동 말기 암환자들, 또는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은 느낀다. 깨닫는다.
잘 사는 것이 누리며 즐겁게 사는 것임을...
감사한 하루, 사랑하는 하루, 정리하는 하루, 소망하는 하루, 잠시 여행왔다 본향으로 돌아가는 하루.
그 하루 하루는 어떤 삶의 무게도 짊어져야 할 짐이 없다. 즐기면 또한 남긴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국경이 봉쇄되고 이태리 북부에서 매일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을때, 나 또한 죽을 만큼 아파서 며칠 동안 방 안에 꼼짝없이 격리되어 있었다. 병원에 코로나 확진검사를 받으러 가는 것조차 갈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팠다. 심한 고통 가운데 침대 누워 있는데, 어느 순간 죽음을 느꼈다. 그 느낌은 두려움이나 집착이나 슬픔보다... 홀가분함이었다. 평안함.
시간이 지나니 또 잘 살려는 조바심과 근심이 몰려든다.
"잘 살려 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라"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전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