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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서신

내일을 염려하지 말고, 오늘을 누려라!

작성자김경근|작성시간26.06.19|조회수32 목록 댓글 0

  아끼다 똥 된다. 방송 프로에서 코미디언 이경규 씨가 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과를 먹더라도 좋은 사과를 먼저 골라 먹고, 마지막에 제일 나쁜 것을 먹는 사람이 있고, 나쁜 것을 먼저 골라 먹고, 좋은 것은 나중 먹는 사람이 있다. 반찬을 먹더라도, 국을 먹더라도, 좋은 것 맛있는 것은 아껴서 먹는 그런 습성이 있다. 마지막에 제일 좋은 것을 먹는 기대와 쾌감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아끼다가 결국에는 먹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일본의 어느 거지가 죽었는데 장례 후 그 집에서 자신의 명의로 된 계좌에서 5천만원의 예금과 1억원이 넘는 주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거지는 평생동안 남이 주는 것을 먹고, 얻어서 먹고, 목욕도 돈이 아까워 1년에 한 번 정도 갈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 돈은 이젠 주인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아끼는 것은 좋은 것이나 쓰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평생 아꼈으나 결국은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산 것이다. 물론 그 거지도 죽기 전에는 다 쓰려고 했을 것이 분명하겠지만... 

 

  옛날 어른들 말 중에는 아낀다고 매일 보리밥만 먹는 사람은 힘이 없어 일을 못해 매일 보리밥만을 먹으며 살게 되고, 없어도 쌀밥을 먹는 사람은 힘이 생겨 일을 잘 해 매일 쌀밥을 먹으며 살게 된다고 했다. 사람에게는 모두 불안이란 두려움이 있다. 보험이나 저축, 연금 등이 잘 되는 이유는 이 불안이라는 심리적 적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를 아끼고 절약하여 미래를 대비하려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 미래에 대한 준비가, 도리어 현재를 누리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 되고 만다. 왜나면 미래는 언제나 오늘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오늘을 누리지 못하면 미래도 누리도 못한다.  

 

  사람은 없을 때에 더 아낀다. 지갑을 닫는다. 하지만 아껴서 뭐하는가? 아무리 아껴도 그 아낀 것이 남는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손바닥에 물이 줄줄 새어 나가듯 아낀 것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다.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지 중에 사라진다. 갑자기 써야 하거나, 사고가 생기거나, 충동적으로 소비를 하거나, 허무하게 날아가고 만다. 그러므로 아끼지 말고 누리며 쓰는 것이 지혜다. 근검절약은 미덕이나 누리지 못하며 사는 자들에겐 그 미덕조차 어리석음이고 손해다. 남의 소비를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것을 누려라.

쓸 때 기쁜 사람이 있고 쓰면서도 괴로워 하는 사람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게 허비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에 처지에 매여서 누리지 못하고 평생 사는 자이기도 하다. 둘 다 모두 어리석은데, 후자가 전자부터 마지막에는 더 후회가 많은 인생이 되고 만다. 

 

  아낀다고 해서 아껴지는 것이 하나도 없더라. 재물도, 건강도, 관계도 모든 것도 내게 있는 순간 누리고 즐기고 감사하며 사용하는 것이지, 나중에 쓰겠다고 미뤄두며 언젠가 다 잃어버리고 날아감을 깨닫는다. 서울에 인구가 천 만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서울에 사는 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그 중 몇 명이나 될까? 크로아티아의 젊은이들은 서울과 부산을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돈을 모아 가길 꿈같이 여긴다. 그들이 그렇게 가고 싶은 서울에 사는 서울 사람들은 진정 서울을 누리며 살고 있을까? 서울 사람들은 "이곳은 지옥이다"라고 한다. 누리지 못하면 모든 곳이 지옥이 될 뿐이다.

크로아티아에 사는 나 자신도 이곳을 천국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이곳은 선교지요 광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 많은 한국인들에겐 크로아티아는 오고싶어 안달나는 곳이다. 평생 한번 와 보고 싶은 곳이다. 반면 정작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땅을 떠나 외국으로 이주를 한다. 인간이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다. 개나 고양이, 동물보다 지혜롭긴 하나 태평스럽게 한 사람 주인에게서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는 동물들이 어쩌면 인간보다 더 행복을 누리고 사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사자나 호랑이는 배가 부르면 옆에 토끼나 사슴이 누워있어도 건들이지 않고 잔다. 하지만 인간은 배가 불러 숨이 찰 정도가 되어도 쉬지 않고 계속 끌어 모은다. 평생 쓰지도 못할 것은 재워두고 쌓아두는 것만으로도 그저 만족함을 느낀다. 그 만족때문에 불공평과 분배의 균형이 깨어진다.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는 것은 탐욕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일용할 양식으로 주셨다. 만나는 모아두면 냄새가 나고 벌레가 생겨서 다음 날에는 더 이상 먹지 못하는 유통기한이 하루(一日) 양식이다. 광야는 냉장고가 없다. 그곳에는 쌓아둘 이유도 재워둘 방법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은 누림의 복이지, 미래를 걱정하며 아끼고 쌓아둠의 복이 아니다. 주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내일(來日)은 내일(吾 '나의' + 事 '일')이다. 미래에 다가오는 내일(來日)은 '주님의 일'(吾事)이다. 왜 우리가 주님의 일을 염려하나? 주님이 자기 일이라고 하시며 알아서 하시겠다 염려하지 말라 하는데.. 내일을 너무 염려하므로서 '오늘'(내가吾 항상)조차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게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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