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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서신

여호와의 소리

작성자김경근|작성시간26.06.21|조회수31 목록 댓글 0

사람은 듣는 존재다

 

태교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좋은 것을 들어야 아기는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바르게 자랍니다. 아기는 임신 후반부가 되면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배 속에 있지만 밖에서 일어나는 소리와 말을 듣고 자극을 받으며 자랍니다. 좋은 것을 들으면 건강하고 나쁜 것을 들으면 아픕니다.

 

한 다큐프로에서 물을 갖고 실험을 했습니다. 한 쪽 컵에는 물을 담아 좋은 말을 하고, 다른 한 쪽 컵에는 나쁜 말을 합니다. 일주일 동안 그렇게 합니다 놀랍게도 좋은 말을 한 컵 속의 물은 상하지 않지만, 나쁜 말을 들은 컵의 물은 오염되었습니다. 밀림 속에서 원주민들이 큰 나무를 베려고 때 먼저 그 주변에서 나무에 대고 저주를 계속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면 나무가 어느 순간부터 약해져서 쓰러진다고 합니다. 말 같이 않지만 실제입니다. 신비하지요.

 

이처럼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서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영향을 받습니다. 사람은 계속 들으며 삽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화기 알람 소리에서부터 시작해서, 밖에서 들리는 새소리,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차량 소리, 바람 소리, 부모님이 밥 먹으라는 소리, 등등..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계속 소리를 듣고 삽니다.

 

눈에 보이는 존재 중 소리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광고 중에 ‘용각산’이란 약 광고가 있었습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저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광고나 그렇지 모든 것은 소리를 냅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공기, 산소, 이산화탄소 이런 기체는 소리가 없지요.

하지만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모든 존재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소리입니다. 죽으면 소리가 없습니다. 잠잠해집니다. 무덤은 조용합니다. 그러므로 소리란 존재의 실제를 증명합니다.

시편 29편에는 여호와의 소리라는 표현이 무려 7번이나 나옵니다. 칠(7)은 성경에서 완전수를 말합니다. 이 의미를 해석하자면 하나님의 실제, 현존하심을 강력하게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냥 들립니다. 왜냐면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귀에 장애가 있어 못 듣는 사람은 들을 수 없을까요? 아닙니다. 그들도 듣습니다. 그들은 청각으로 듣지 못해도, 마음으로 듣습니다. 눈빛으로 듣습니다. 감각과 태도와 몸짓으로 듣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듣는 존재이고 들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모든 소리를 다 듣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을 듣습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깨끗한 물이 되기도 하고 오염된 물이 되기도 하고, 꼿꼿한 나무가 되기도 하고 썩어지는 나무가 되기도 하고 또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모두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어머니들이 자녀를 깨우면 잘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이 놈아. 빨리 일어나.. 게을러빠진 놈”라고 하며 그 아이는 자라면서 자신이 게으르고 가치 없는 존재로 느끼게 됩니다. 마음 속에 ‘게으른 놈’이란 소리가 각인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어서 일어나서 맛있는 밥 먹자! 공부한다고 수고 많지? 사랑하는 우리 아들”라고 격려한다면 그는 자신이 사랑 받는 존재로 각인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듣느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남아프리카의 정글의 바벰바 족은 누가 범죄를 하면 그를 마을 광장에 세우고 모든 마을 사람이 그 주위에 모여들어 큰 원을 만들어 섭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그 범죄한 사람의 장점이나 그가 과거에 행한 좋은 일을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합니다. 과장도 안되고 비난도 안되고 진지하게 사실을 말해 준다고 합니다. 그러고 난 후 축제를 벌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정말 새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그 부족 사회에는 범죄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1994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직원이었던 김현양은 어린 시절 무척 가난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학교 미술 시간에 집이 가난하여 팔레트 등 준비물을 가지고 가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를 심하게 나무라며 체벌했고, “훔쳐서라도 가지고 와!”라고 했습니다. 이 소리는 김현양의 인생을 바꾸는 슬픈 상처가 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그는 사회에 적의를 가진 자가 되고 말았지요. 그가 죽기 전에 복음을 듣고 회개했다는 것이 다행일 뿐입니다.

 

소리는 안 들을 수 없습니다.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외부의 소릴 뿐 아니라 내부의 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모든 소리를 다 들어서는 안됩니다. 소리는 걸러서 들어야 합니다. 마음에 담아야 할 소리가 있고, 마음에 버려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들리지만 다 담지 않습니다.

 

사람은 소리를 내는 스피커입니다. 늘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는 안에서 나옵니다. 사람의 안은 깨끗하지 않습니다. 깨끗하면 향기로운 소리가 나겠지만, 죄의 본성으로 오염된 사람은 타락하고 악취 나는 소리를 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밖으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바벰바 족처럼 좋은 소리도 내기도 하지만, 그릇된 교사처럼 나쁜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들리는 소리라고 해서 다 듣는 것이 아니라 가려서 들어야 합니다. 외부의 소리뿐 아니라, 내부의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는 시원한 여름 바다의 파도소리같이 상쾌하고 청량한 소리가 아닙니다. 죄와 마귀의 소리가 있습니다. 어둠의 속삭임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 또한 가려서 들어야 합니다. 어둡고 부정적이고 거만하고 사악한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진실되고 겸손하며 소망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소리

 

다윗은 여호와의 소리의 크고 장엄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우렛소리와 같은 소리입니다. 그 소리는 힘이 있고 위엄차며, 백향목을 꺾고 화염을 가르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에 나무들이 송아지처럼 춤을 추며 뛰게 합니다. 그 소리에 광야가 진동하며 그 소리에 놀라서 암사슴이 낙태하고 살림이 말갛게 벌거숭이가 됩니다.

 

다윗은 마치 여호와의 소리를 하늘에서 폭풍우가 오기 전에 뇌우가 치고 천둥소리가 나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편 29편의 여호와의 소리에 대한 묘사는 마치 요한 계시록의 천상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천군 천사들과 24장로들, 그리고 수많은 증인들 가운데 나팔이 불고 하나님의 심판이 맹렬이 일어날 때의 울려 퍼지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다윗이 지금 그 소리를 듣고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소리를 이렇게 강력하게 들은 적이 있습니까?

다윗이 사도 요한처럼 계시를 받으면서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지금 환상 중에 계시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여호와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얼마나 크게 듣고 있는지, 천둥같이 들립니다.

 

그는 이 땅의 충만한 여호와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사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의 강력한 음성을 들었으나 주변의 사람들은 빛만 보고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한 것처럼.. 다윗에게도 여호와의 소리가 강력하고 장엄하게 들리는데, 사람들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게 다윗과 여러분의 차이입니다.

 

저는 과거에 라디오 설교 방송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섬겼던 교회에 집사님 한 분은 극동방송 애청자였습니다. 그 분이 라디오 방송 자랑을 그렇게 할 때에도 난 시큰둥하게 반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제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그 라디오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병상에서는 라디오 방송의 설교가 꿀처럼 들렸습니다. 너무나 사모하게 된 것입니다. 찬양이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 소리가 없으면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하기까지 했습니다. 드디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들은 여호와의 소리를 여러분도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과 사람들의 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 소리는 온 땅에 충만하고 그 소리 또한 작지 않습니다. 그 소리는 강력한 우레와 같이 울려 퍼집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른 소리에 너무 집중하느라, 우뢰와 같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마음이 시끄러워 들을 수 없습니다. 탐욕과 집착의 소리 때문에 들을 수 없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다윗은 그렇게 크게 들리는 데, 여러분들에게는 안 들리거나 아주 희미하게 들립니다.

 

어느 곤충학자가 뉴욕을 맨해튼의 도심 거리를 걷게 되었습니다. 차들의 경적과 사람들의 소리, 도시의 온갖 잡다한 소음이 울려 퍼집니다. 근데 어디에선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립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곤충학자가 주위를 둘러 보니 귀뚜라미 한 마리가 건물 구석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변을 지나쳐 가는 어느 누구도 귀뚜라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곤충학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양의 내 음성을 듣나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곤충 학자가 귀뚜라미 소리를 듣듯이, 아주 작은 소리라고 하더라도 곤충학자 귀에는 그 소리가 크게 드립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도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들려오는 세상의 소리가 아무리 커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아니 들어야 합니다.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들리는 소리, 듣고 싶은 소리, 들어야 하는 소리

 

세상에는 들리는 소리가 있고, 듣고 싶은 소리가 있고, 또 들어야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들리는 소리는 자연에서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소리까지입니다. 그 소리는 자연 발생적이고 우발적이며, 동시에 무책임하고 즉흥적이며 감정적 소리입니다. 오늘은 이 소리를 내다가, 내일 저 소리를 내는 예측불허의 소리입니다. 그 예측 불허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자신의 맡긴다면 대단한 위험한 일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는 마치 다섯 살짜리 사내 아이에게 자동차 핸들을 맡기고 바캉스 여행을 가는 동승자와 같습니다.

들리는 소리는 지나가는 공허한 소리입니다. 흔적도 없는 소리가 잠시 들렸다가 사라지는 것은 그렇게 들어라는 것입니다. 모든 소리를 다 담아둘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듣고 싶은 소리는 나를 세우고 나를 돕는 소리입니다. 미움의 소리, 좌절의 소리, 낙심의 소리, 절망의 소리는 죽이는 소리이기에 마음에 떨어지기 전에 빨리 날려 보내야 합니다. 반면 위로의 소리, 용서의 소리, 감사의 소리, 격려의 소리, 사랑의 소리는 늘 붙잡아 두어야 합니다. 손에 적어서라도 가까이 둬야 합니다.

왜 우리가 성경을 암송합니까? 그 소리가 나를 돕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암송하고 쓰고 적고 붙이고 담아두면, 유익이 됩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암살 당했을 때, 그의 주머니에서 몇 가지 유품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것들은 자수를 놓은 손수건, 시계, 그리고 몇 푼의 돈..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누더기가 된 신문 기사 조각이었습니다.

그 신문조각은 링컨을 칭찬하고 그의 결단력을 격찬하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링컨은 그 기사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낙심되고 우울할 때마다 읽었던 것입니다. 그 소리는 자신이 듣고 싶었던 소리였던 것이지요.

듣고 싶은 소리가 있다면 기록하십시오. 그리고 가까운 곳에 두십시오. 늘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꼭 들어야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는 들리는 소리도 아니고 듣고 싶은 소리도 아닙니다.

세상 소리는 여러분을 온전한 목적지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세상 소리는 종종 여러분을 만족케 하고, 용기도 주고, 위로도 줍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그저 소리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소리의 근원을 들어야 합니다. 그 소리는 온 세상을 창조한 소리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2). 여호와의 소리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그 말씀으로 인해 창조되었고, 그 소리 안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들어야 하는 소리는 여호와의 소리입니다. 들리는 소리가 아닌 듣고 싶은 소리가 아닌 들어야만 하는 소리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 소리는 온 땅에 충만한 소리이고 장엄하고 우뢰와 같이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다윗처럼 들어야 합니다. 진정 들어야 할 소리는 듣지 못하고, 듣지 않아도 되는 소리를 듣는다면 결국에는 망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듣고 따라 가야 하는데, 사단의 소리, 유혹의 소리, 유흥의 소리, 거짓의 소리를 듣고 따라 간다면 그 마지막은 자명합니다. 파멸과 죽음..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시편 29편은 아무런 부제 없이 단지 다윗의 시라고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수많은 모함과 비방에 시달린 한 인간입니다. 그는 충성스럽게 사울의 부하 장군이 되었지만, 사울은 그를 죽이기 위해서 모함하고, 모략하고, 음해하고 험담하고, 날조하고 왜곡했습니다. 아니 사울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이새도, 자신이 낳은 아들 압살롬도 다윗을 음해하고 모략하고 거짓 증거했습니다.

다윗 주변에는 절망의 소리, 낙심의 소리, 죽음의 소리가 평생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 소리는 그에게 모기 소리처럼 작았습니다.

그는 대신 여호와의 소리에 집중하여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에게 여호와의 소리가 얼마나 큰지.. 천지를 진동할 정도로, 온 세상은 뒤 엎을 정도로 크게 들렸습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듣는 그는 그 두려움과 무서운 세상 소리 한 가운데서도 강력하고 평안함을 누리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29편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적으로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29:11)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듣는 백성들은 힘을 얻습니다. 그 소리의 힘이 세상의 소리를 이겨냅니다.

들리는 소리에 집착하지 않고, 듣고 싶은 소리에 애타지도 않습니다.

여호와의 소리는 강력한 힘을 주십니다. 그 소리는 그의 백성들에게 평강을 줍니다.

그 소리는 불안과 염려와 근심을 몰아내고 확실한 약속 위에서 평안을 주는 위로와 소망의 확실한 소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 천지에 울려 퍼지는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세상 소리가 아니라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그 소리를 듣는 백성들은 힘을 얻고 평강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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