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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근세사

대동법의 실시의 배경과 영향

작성자김정현|작성시간06.12.27|조회수1,476 목록 댓글 0
 대동법의 실시 배경, 내용, 영향을 모둠별로 조사하여 발표하고,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다.

 

Ⅰ. 서  론


  조선 왕조는 후기에 이르러 여러 가지 면에서 구조적인 모순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모순은 크게 보아 신분 제도와 토지제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은 부세 제도가 잘못 운영되는 가운데 농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이를 통하여 지배 체제의 안정을 기하려는 목적으로 부세제도를 개편한 것이, 영정법, 대동법, 균역법의 시행이다. 이 가운데 대동법은 농민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됨은 물론, 세제의 발전적 측면과, 상공업의 발전으로 인한 지배체제를 붕괴시키고, 근대 사회를 지향하는 일면으로 작용하는 등 많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대동법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제 위에 설명한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면서 대동법 실시의 배경을 비롯하여, 내용, 영향을 항목별로 설명하고자 한다.



Ⅱ. 본  론      


1. 대동법 실시의 배경

대동법은 공납제도의 폐단이 심화됨에 따라 이를 시정하고자 시행된 제도이다. 공납은 관청 수요품이나 특산물을 민호를 기준으로 마을 단위로 현물로 징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납 제도하에서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 호구지책을 마련하면서 현물을 구하기란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16세기에 이르러 현물 대신 공납가를 부담하는 방납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이 또한 관리와 상인의 협잡으로 터무니없는 공납가의 요구, 생산되지 않는 공물의 배정, 공안의 증가 등으로 농민의 부담을 가중시켰고 국가수입을 감소시켰다. 이에 대한 모순을 시정하기 위하여 조광조․이이․유성룡 등은 공물의 세목을 쌀로 통일하여 납부하도록 주장하였다. 특히 이이는 그의 저서 《동호문답》에서 대공수미법(貸貢收米法)을 건의하였으나 실시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 드디어 대동법아 시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2. 대동법의 내용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전국의 토지가 황폐해지고 국가수입이 감소되자, 1608년 이원익(李元翼)과 한백겸(韓百謙)의 건의에 따라 방납의 폐단이 가장 심한 경기도부터 실시되었다. 중앙에 선혜청과 지방에 대동청을 두고 이를 관장하였는데, 경기도에서는 세율을 봄, 가을 2기로 나누어 토지 1결(結)에 8말씩, 도합 16말을 징수하여 그 중 10말은 선혜청으로 보내고 6말은 경기도의 수요에 충당하였다. 1624년 조익(趙翼)의 건의로 강원도에서도 실시되었는데, 연해지방은 경기도의 예에 따랐고, 산간 지방에서는 쌀 5말을 베 1필로 환산하여 바치게 하였다. 1651년 김육(金堉)의 건의로 충청도에서 실시, 춘추 2기로 나누어 토지 1결에 5말씩 도합 10말을 징수하다가 뒤에 2말을 추가 징수하여 12말을 바치게 하였다. 산간 지방에서는 쌀 5말을 무명 1필로 환산하여 바치게 하였다. 전라도에서는 1658년 정태화(鄭太和)의 건의로  토지 1결에 13말을 징수, 연해지방에서부터 실시하였다. 산간 26읍에서는 1662년부터 실시하였는데, 부호들의 농간이 적지 않아 1667년에 폐지되었다가 다음해에 복구되었고, 뒤에 13말에서 1말을 감하여 12말을 징수하였다. 경상도는 1677년(숙종 3)부터 실시하여 1결에 13말을 징수하였는데, 다른 지방과 같이 1말을 감하여 12말을 징수하였다. 변두리 22읍은 쌀을, 산간 지방 54읍은 돈․무명을 반반씩, 그 외 4읍은 돈과 베로 반반씩 바치게 하였다. 1708년 황해도에 대동법을 모방한 상정법을 실시하였는데, 1결당 쌀 12말을 징수하는 외에 별수미라 하여 3말을 더 받았다. 대동법이 전국적으로(함경도와 평안도는 제외) 실시된 뒤 세액도 12말로 통일하였다. 그리하여 대동법은 1608년에서 1708년까지 100여년의 긴세월을 거쳐 비로서 완성되었다. 산간지방이나 불가피한 경우에는 쌀 대신 베․무명․돈으로 대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동법 실시 후에도 별공과 진상은 그대로 존속하였다.


3. 대동법 실시의 영향

대동법의 실시의 영향은 직접적인 면에서 볼 때 별공과 진상이 존속함에 따라 농민들에게 이중 부담을 지우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였으나, 호당 징수가 결당 징수로 되었기 때문에 양반 지주의 부담은 늘고 가난한 농민의 부담은 줄었으며, 국가의 전세 수입은 증대되었다.

간접적인 영향으로 공납 청부업자인 공인이 새로운 계층으로 등장하여 국가를 상대로 대규모의 관수품을 취급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산업자본가로 성장하여 수공업과 상업발달을 촉진시켰다. 나아가 상품의 유통이 촉진되고 화폐 경제가 발달하기도 하였다.


Ⅲ. 결  론


지금까지 대동법의 실시 배경을 비롯하여 내용, 영향을 살펴보았다. 실시 배경은 공납 제도의 폐단을 시정하여 농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아가 지배 체제의 안정을 기하려는 의도에서 실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시 내용은 별공과 진상을 제외한 상공만을 토지를 기준으로 1결당 쌀 12두를 바치도록 하였다. 그 결과 농민의 부담은 줄고, 국가 수입은 증대되었으며, 양반 지주의 부담은 증가되었다. 또한 공인의 등장은 상공업 발달을 가져왔고, 유통경제를 촉진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동법의 실시에 대한 의의는 자못 크다. 호를 기준으로 하던 것에서 토지를 기준으로 변화됨으로써, 부세가 인두세 적인 성격에서 재산세 적인 성격으로 발전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공인의 활동의 결과 경제적으로 상공업이 발전하고, 산업 자본가가 성장하는 것은 자본주의로 이행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상인 계층의 지위를 향상시켜 폐쇄적인 신분 제도의 변화를 가져와 시민사회를 지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근대사회로의 움직임의 일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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