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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세사

고려의 처첩제도

작성자김정현|작성시간05.02.15|조회수271 목록 댓글 0

박유는 충렬왕 때 태부경에 임명되었다. 왕에게 글을 올려 "우리나라는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처는 하나입니다. 아들이 없어도 감히 첩을 두지 않습니다. 근래 외국인들이 와서 인원에 제한없이 처를 두니 인물이 모두 북쪽으로 흘러갈까 걱정됩니다. 신하들에게 첩을 두는 것을 허락하되, 관품에 따라 그 수를 줄여 일반인은 일처일첩(一妻一妾)을 두게 하소서. 여러 처의 자식도 모두 적자와 같이 벼슬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짝이 없어 원망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줄어드는 인구도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고 건의했다. 부녀자들이 이를 듣고 원망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때마침 연등회 저녁에 박유가 왕의 행차를 호위하고 따라가는데 어떤 노파가 손가락질하면서 "첩을 두자고 청한 자가 바로 저 빌어먹을 놈이다."고 하자 듣는 사람들이 서로 손가락질하여 거리마다 붉은 손가락이 무더기 묶음이 되었다. 당시 재상들 가운데는 자기 처를 무서워하는 자들이 있어서 그 논의를 못하게 했고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고려사> 권106, 열전19, 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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