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일으키는 바이러스 1백여종
사람은 일생동안 약 3백번 감기를 앓는다고 한다. "그냥 두어도7일이면 낫고, 치료하면 1주일에 낫는다"라는 말처럼 건강한 사람이면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병이 곧 감기다. 그러나 감기는 만병의 근원,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역사를 뒤져보면 감기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10억명에게 고통을 안겨줬고, 2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인도에서는 1천2백50만명이, 미국에서는 55만명이 죽었다.
독일의 인플루엔자연구소가 ‘죽음’의 감기가 곧 닥칠지 모른다고 경고한 것은 그런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1918년 이후 전인류를 죽음으로 몰고갔던 감기가 1957년과 1968년에도 창궐한 바 있다. 우리를 초조하게 하는 것은 1968년 이후 40년 동안 휴지기였다는 사실이다. 어떤 전쟁보다 많은 사망자를 낼 수 있는 감기가 내년, 아니면 10년 후에 올지는 아무도 모른지만 오는 것만은 분명하다.”이쯤 되면 감기가 대수롭지 않은 병이라고 치부하기엔 왠지 꺼림칙한 노릇이다.
물론 감기 때문에 치명적인 단계에 이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약자, 어린이들이다. 특히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감기는 천적이나 다름없다. 마취과 의사들은 감기환자의 전신마취를 피하고 있는데, 감기환자를 전신마취한 경우 합병증에 걸릴 확률이 약 3분의 1에 이르기 때문이다. 즉 3명 중 한사람은 합병증으로 고생한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종종 의사와 환자의 보호자 사이에 수술일정을 놓고 말다툼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보호자는 수술을 서두르고, 의사는 수술을 미루기 때문이다. 환자가 감기에 걸린 경우 성인은 완치된 후 2주, 어린이는 3주 후에 수술을 한다.
과거에는 추위 때문에 감기에 걸린다고 생각했다. 영국에 있는 한 감기연구소의 실험이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을 온탕에 집어넣어 땀을 흠뻑내게 한 후 몸을 닦지 않은 채 바람이 심한 복도에 서 있게 하는 실험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런데 감기에 걸린 사람은 한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또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감기는 바이러스와 세균 때문에 생긴다. 특히 세균보다 바이러스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영국의 의학전문지 랜셋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감기는 20% 정도다. 바이러스는 크기가 1만분의 1mm 정도인 작은 유전자 조각으로 DNA와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약 1백여종. 이중 라이노 바이러스, 아데노 바이러스, RS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이 대표적인 감기 바이러스다.
감기가 추위와 무관하다고 하지만, 감기 바이러스가 있는 경우 추위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기도에서는 이물질을 몸밖으로 내보내는 섬모운동이 일어난다. 날씨가 춥고 건조한 겨울철에는 섬모운동이 위축돼 병균을 몸밖으로 내보내지 못한다. 또 난방이 발달한 요즘 바깥 기온과 방안 공기의 기온차가 커서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것도 감기를 앓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여기에다가 어린이와 노약자와 같은 연령적 요인, 영양부족, 과로, 스트레스, 비타민 결핍 등도 감기의 원인으로 덧붙일 수 있다.
감기 중에서 가장 ‘독종’인 감기를 독감(influenza 또는 flu)이라고 한다. 의학적으로는 감기를 옮기는 바이러스 중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을 말한다. 독감에 걸리면 39℃ 이상의 고열과 누구한테 얻어맞은 듯한 심한 근육통이 일어난다. 또 사계절 어느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일반 감기와 달리 주로 가을과 겨울에 찾아드는 것이 독감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증상만 가지고 감기와 독감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의사들의 견해다.
독감을 옮기는 감기 바이러스에는 인플루엔자 A형, B형, C형 등 3가지 유형이 있다. 그러나 인플루엔자는 뛰어난 변신능력을 가지고 있어 “똑같은 인플루엔자는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인플루엔자의 변신은 매년 또는 몇 년마다 조금씩 변하는 ‘소유행’과 10-15년마다 크게 바뀌는 ‘대유행’이 있다. 스페인독감, 홍콩독감, 일본독감 등은 이런 유행을 지칭한다.
독감은 겨울철에 3-4차례 크게 유행하고 지나간다. 특히 전염성이 뛰어나 지구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는 2년마다 인플루엔자의 유형을 조사해 이에 맞는 예방백신을 맞을 것을 권한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는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이 지구촌을 휩쓸 때면 예방백신도 효력을 잃는 경우가 많다.
<홍대길의 '만병의 근원 감기' 기사 발췌 및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