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종인들께,
안녕하십니까?
34세손 나 종주( 鍾 柱 )입니다.
임진년 용띠 해가 밝았습니다.
존경하는 宗人님들 사업과 가정에 금년 한 해 동안 큰 번영과 행복이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작년 한 해에도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에게 많은 사랑과 성원을 보내주시어 깊이 감사 드립니다.
올 한 해는 저희 종인들에게 매우 뜻 깊은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아니 되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여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 동안 서울 종친회의 나남열회장님께서 중심이 되시어 서울종친회의 활성화를 위해, 정말 고군분투하시어
많은 종인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금년 4.21(토) 과학의 날에 거북선을 발명하신 체암 나대용장군의 400주기 추모제를 예전과 같이
나주의 소충사에서 같게 되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해군에서 어느 때보다 관심을 가지고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있으며, 특히 현재 공사중인 소충사 앞의 저수지
( 임진왜란 당시 체암 나장군님께서 거북선을 모형 실험하시던 곳)의 복원 및 거북선 모형진수 시범과 체암 나대용장군의
동상이 완성되어 나주시에서 동상건립식도 함께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4월21(토) 이전에 우리 종인들의 숭모사상과 충효사상을 고취하고자, 현재 진해 해군본부에 있는 실측크기의 거북선과
우리 해군의 자랑감(국내 기술로 최초로 건조 된 잠수함)인 나대용함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하여 해군본부측과 협조하여
4.7(토) 또는 4.14(토)에 진해 해군본부를 견학 할 예정입니다.
종인들께 바라옵는 것은,
이번 과학의 날 행사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미리미리 개인의 일정을 조정하시어 우리 스스로의 근본의 긍지와 위상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때보다 국가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2012년을 보내면서,
국가의 위기가 닥쳤을 때 분연히 일어나 왜구로부터 국가를 지켜낸 나대용장군님의 귀한 뜻을 기리며, 우리도 이 위기의 시간을 극복함은 물론이고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 조상의 위대하심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선용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그 동안 거북선이 이순신장군이 만들었던 것으로 왜곡되어 있던 역사도 바로 잡음으로써 나씨 성씨에 대한 자긍심도 세워
우리 자녀들에게 숭모의 정신과 충효의 사상을 가르치는 귀한 기회로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번 해군본부의 견학행사와 나주 소충사 추모제 참석에 관하여는 서울 종친회에서 구체적인 일정이 발표될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모든 종인 들께서 금년의 계획을 세우실 때, 이번 행사를 참고하셨으면 하는 뜻에서
이 글을 보내드립니다.
아래의 글은, 체암 나대용장군님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종인들께서 이 자료에 보충할 자료나 더 나은 자료가 있으시면 언제라도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서 없는 긴 글을 읽어 주시어 감사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종주배상
010-9895-9100
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 [개설]
나대용은 전라좌수군절도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이 왜적 침입에 대비하여 병선 제작을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종제인 나치용과 함께 고향인 순천에서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 지역으로 내려왔다. 나대용은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전라좌수영 수군의 전선을 건조하는 감조군관으로 임명을 받고 선소에서 전선을 제작하게 된다.
선소는 전라좌수영 본영 선소일 것으로 추정한다. 장생포 선소는 당시 순천부 선소였고, 군내리 선소는 방답진 선소였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 직접 지휘하기 쉬운 본영 선소[현재 여수 진남관 앞으로 매립된 상태이다.]에서 거북선을 제작하였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이순신 장군이 1592년(선조 25) 3월 27일 소포[종포 지역]의 거북선에 올라 대포 쏘는 연습을 했다는 『난중일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나대용과 거북선의 인연은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나대용은 1년여 동안 조선 수군의 주력 전함인 판옥선과 함께 거북선을 제작하였다.
· [가계]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시망(時望), 호는 체암(遞菴).
· [활동사항]
나대용은 1556년(명종 11) 7월 25일 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에서 태어났다. 나대용은 1583년(선조 16)에 28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로 있다가, 32세 때인 1587년(선조 20)에 사직하고 고향인 나주로 돌아왔다. 이후, 나대용은 자신이 거쳐 하는 방 바람벽에다 거북선의 설계도를 수없이 그려 붙여 가며 거북선 연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낮에는 산에 올라가 재목을 베어 왔고, 밤에는 거북선 모형을 제작하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나대용은 1591년(선조 24)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막하 군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나대용은 발포만호진의 군관이 되었고, 거북선을 타고 당포해전에 처음 출전하여 왜군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등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대승을 거두는데 항상 앞장을 섰다.
옥포해전에서는 유군장(遊軍將)을 맡아 적선을 크게 격파하였으며, 적의 유탄을 맞았으나 자신이 직접 칼끝으로 살에 박힌 탄환을 뽑아내며 분전했다고 한다. 부상을 당하고서도 사천해전과 한산도해전에 참가했고,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에서는 삼도 수군이 대승을 거두는데 크게 일조했다. 충무공 이순신은 나대용을 장하게 여겨 조정에 아뢰기를 ‘분발하여 몸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죽을힘을 다해 싸웠으니 나대용의 공이 가장 으뜸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594년(선조 27)에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이 인정되어 강진(康津)현감으로 임명되고, 이후 금구(金溝)·능성(綾城)·고성(固城) 등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1610년(광해군 2) 남해(南海)현령에 제수되어 성능이 우수하고 쾌속선인 해추선(海鰍船)을 만들기도 했다. 이듬해인 1611년(광해군 3)에는 경기도 수군을 관장하는 교동수사(喬桐水使)에 제수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입은 부상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1612년(광해군 4) 1월 29일 향년 57세로 별세하였다.
· [학문과 사상]
나대용은 전공이 혁혁하고 파란이 많은 조선 중기의 수군장이며, 우리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조선 기술자로 평가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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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진 작성시간 12.01.03 나대용장군은 거북선 제작의 창조자로 16세기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탁월한 과학자요 조선(造船)기술자로 평가되니 우리민족의 영원한 자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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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밝 누 리. 나 용 주 작성시간 12.01.04 신양(晨陽)
큰 일을 하고 있으니 반드시 빛이 날 것입니다.
일을 찾아서 서로 도와야 할텐데 아직은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보는이 마다 말하고... 권하고......
.밝 누 리. - 송재공파 흥덕문중 3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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