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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눈 1966

작성자전한성|작성시간15.04.09|조회수387 목록 댓글 0

김수영 눈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김수영 전집>> 1966. 1. 29. p322. 민음사.

 

이 시는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시를 생각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시를 생각하고 난 뒤에도 내릴까?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시의 첫줄을 쓰고 난 뒤에도 또 내릴까 궁금했는데 눈이 또 내린다. 시를 생각하면서 눈이 내릴까를 한꺼번에 생각하고 난 뒤에도 눈은 또 내린다. 시를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쓴 뒤에도 눈은 또 내릴까? 생각한다. 당연히 내린다. 시가 사라진 곳인 폐허에 눈이 내릴까? 내린다. 그러므로 나는 시를 계속 쓴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는 화자가 눈이 온 뒤에도 눈이 또 내린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을 말한다. ‘뒤에도’에서 ‘-도’는 화자가 인식한 눈이 온 사실 다음에 눈이 내리지 않는 얼마간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시간에 화자는 눈이 다시 내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화자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다시 눈이 내리는 것을 본 것이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이러한 자연현상에 대하여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 상태로 보인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는 시를 생각하고 난 뒤에 보니까 눈이 또 내린다는 말이다. ‘생각’을 시에 대한 생각이라고 추측하는 근거는 아래에 ‘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이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는 시에 대한 착상이 떠오르고 난 뒤에도 눈이 또 내릴까를 생각한 뒤에 시에 대한 착상이 떠오르고 착상한 시에 대한 모든 것이 생각한 뒤에 보니 또 눈이 내린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응아’란 어린 아이 또는 세상에 막 태어난 아기가 우는 것이다. 화자가 ‘응아’하고 울리는 없다. 이 시에서 화자는 눈이 내리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나이이고 또 눈이 내릴까라는 의문을 품을 나이이고 ‘한꺼번에 생각’할 수 있는 상태이기에 어린이나 아기라고 보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응아’란 무언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무엇은 아래에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로 볼 때에 시상이 떠오른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화자는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리는 것을 보면서 화자가 새로운 시를 생각한 뒤에도 눈이 또 내릴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다시 떠오른 시상을 생각하면서 그 시상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한 뒤에 보니 또 눈이 내리는 것을 본다. 오랜 시간 눈이 내리는 것이다.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는 시에 대한 생각을 다하고 이를 글로 쓰기 전에 시를 글로 쓴 뒤에도 눈이 계속해서 내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하면서 화자가 쓴 시가 ‘폐허’로 상징되는 폐허와 같은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의문형으로 마무리를 한 것이다. 화자는 시를 생각하면서 세상을 눈으로 덮는다.

시인이 눈을 보다 안 보다 하는 중이다.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는 눈이 온 뒤에 눈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또 내린다’로 눈이 오고 있는 중이고 ‘생각하고’ 있는 중에는 눈이 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고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는 내리는 눈을 다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는 눈을 보면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도 눈이 계속 내릴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한꺼번에 생각하’는 중에는 눈이 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고 ‘한꺼번에 생각하고’ 난 뒤는 시간이 지난 뒤를 말하는 것이고 이때에도 눈이 계속해서 내린다는 것을 말한다. 내리는 눈을 보면서 화자는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또 내린다’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라 화자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믿는 것이다.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는 화자가 쓸 시의 행과 연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화자는 자신이 시를 쓰고 난 뒤에도 세상에 눈이 내리기를 바란다.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에서 ‘폐허’는 화자가 살고 있는 현실 세상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화자는 자신의 시가 폐허인 세상을 눈처럼 깨끗하게 만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화자가 생각한 시는 이러한 바람을 담고 있는 것이다. ‘폐허’는 상징으로 쓰였다. 화자가 보는 또는 살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갑자기 ‘폐허’가 나오는 것은 생뚱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 ‘한꺼번에 생각’했다고 했다. 한꺼번에 생각했기에 더 이상 생각할 것은 없는 것이다. 시는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폐허’는 화자가 시의 내용을 글로 쓴 뒤에 눈처럼 덮으려는 세상인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시가 세상을 눈처럼 덮어 깨끗하고 순수한 세상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으며 이 시를 쓴 것이다.

 

아래는 이 시에 대하여 시인 김수영이 말하고 있는 산문이다.

 

‘발뺌을 해두지만 나는 정치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의 스타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상이(相異)하고자 하는 작업과 심로(心勞)에 실증이 났을 때 동일하게 되고자 하는 정신(挺身)의 용기가 솟아난다. 이것은 뱀 아가리에서 빛을 빼앗는 것과 흡사한 기쁜이다. 여기 게재한 3편 중에서 「눈」이 그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시는 “폐허에 눈이 내린다”의 여덟 글자로 충분하다. 그것이, 쓰고 있는 중에 자코메티적 변모를 이루어 6행으로 되었다. 만세! 만세! 나는 언어에 밀착했다. 언어와 나 사이에는 한 치의 틈서리도 없다.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로 충분히 “폐허에 눈이 내린다”의 숙망을 달했다. 낡은 형의 시다. 그러나 낡은 것이라도 좋다. 혼용되어도 좋다는 용기를 얻었다. 완전한 희생. 아니 희생의 한 걸음 앞의 희생. 독자여, 우쭐거려 미안하다. 그러나 내가 의외로 “낡은 것”만은 확실하다’(김수영, 󰡔김수영 전집󰡕2, 452면).

 

‘자코메티’는 인간을 뼈만 남은 형태로 표현한 미술가이다. 김수영은 이 시를 자코메티처럼 군더더기 없고 일체의 수식도 없이 진수(眞髓)만 표현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변모를 이루며 썻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언어와 나 사이에는 한 치의 틈서리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인의 생각과 신념에서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표현을 했다고 자평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의 형식은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낡은 형식이라는 것이다. 낡은 형의 시이지만 ‘언어와 나 사이에는 한 치의 틈서리도 없다.’면 시의 형식으로 쓸 용기를 가졌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 시는 반복에 의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행간에 생략을 사용하여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형식이 훗날 <풀>이라는 시를 남기는 기틀이 된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2015.04.09목전0405전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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