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바람이 옷깃을 스며드는 겨울이 오면 군대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70년대 중반에 입대해서 경기도 연천의 모 포병부대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그때는 상병을 달아 중간 선임이었습니다. 그 무렵 우리부대에 키가 크고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부산이 고향인 박 이병이 전입왔습니다. 한눈에 봐도 순박해 보이고 같은 내무반 생활을 하였기에 상하 관계를 떠나 인간적으로 많은 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박 이병이 조카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큰누나 딸인데, 나이는 저보다 2살 적고, 고향은 경북 칠곡이고, 대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고 주소와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 일요일의 한가한 시간에 정성을 들여 편지를 보냈습니다. 얼마 후 큰 기대는 안했는데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박 이병이 어떻게 소개했는지는 몰라도 호의적인 내용으로 얼마 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저에게 다가오고 있을 즈음 내용이 이상해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씨체도 좀 달랐고, 내용의 분량이 전보다 줄었습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몰라도, 제 편지가 그녀에게 전달되기 전에 누군가가 그것을 먼저 보고 장난스러운 어투로 그녀의 이름으로 보내왔습니다.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 진실을 알 수 없기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가 보낸 한 편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장난을 치려고 대신 답장을 보냈다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정중히 사과하며, 예전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 예상 밖의 편지를 받고 적잖이 당황하였지만, 이를 계기로 서로의 오해를 풀고 전처럼 편지가 이어졌습니다. 어느날 휴가를 언제 나오는지 묻는 다소 절박함이 묻어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영문은 모르지만 마침 두번째 정기휴가가 임박한터라 12월초에 나간다고 답을 보냈더니 바로 답장이 왔는데, 휴가 나오면 대구에 꼭 내려오라고 하면서 회사 전화번호까지 적어 있었습니다. 좀 의아했지만,나 또한 그녀를 보고 싶었기에 꼭 가겠노라고 답장을 했습니다. 드디어 휴가 나와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대구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그녀를 만나러 갔습니다. 12월인데도 길가의 가로수에 겨울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푸름이 그대로 있는 따뜻한 대구 날씨였습니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녀를 만났습니다. 보통 키에 첫인상이 깜찍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였습니다. 우리는 근처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주문해 놓고, 어색함을 풀려고 박 이병안부를 전하면서 금세 편지를 주고 받았던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대화를 나누어보니 그녀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동생과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화가 오가던 중에 그녀가 한 말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제대하면 바로 대학에 복학하겠네요? 편지에는 구릿빛 얼굴이라더니 아니네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박 이병이 조카에게 거짖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내심 당황했지만 그녈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맞장구쳤습니다. 하지만 양심에 걸려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장남으로 태어나 그 당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중학교 졸업후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서 일하면서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어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말 한마디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말에 못다 한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대 후에 직장에 다니면서 주경야독으로 검정고시에 도전하여 고졸학력을 취득하였고, 회사와 관련있는 이과을 선택해 야간으로 대학공부도 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날 그녀와 식사를 하던 중 밖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서 조금 소란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시간도 좀 되었고 어디 갈 데도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다가 과일을 사 들고 집에 있는 동생한테 가자고 했습니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앞장서 가기에 우리는 자취방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남동생과 같이 과일을 먹으면서 신나게 외삼촌 군대생활 얘기를 들려주며 즐겁게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다시 밖이 시끄러웠습니다. 술 취한 고함으로 "야, 군바리 나와!" 누군가가 대문을 걷어차면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보니 중국식당서 웅성거렸던 목소리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그녀가 대구까지 내려오라고 다급했던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술 취한 청년은 그녀를 좋아하는 직장동료였습니다. 그녀는 펜팔하는 군인과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빚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에게 "고종사촌오빠인데 휴가나와서 동생보러 온 것"이라고 안심시켜서 돌려보내라고 말했습니다. 밖으로 나간 그녀는 잠시 후 돌아오고 조용해졌습니다. 시간이 늦어져서 어디로 갈 수도 없어서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군복차림으로 가운데에 동생을 재우고 잠을 청했지만 도통 잠이 오질 않았고, 그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뒤척이는 소리와 동생의 얕은 코고는 소리만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자는둥 마는둥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였고, 동생과 함께 식사하고 동생은 학교로 가고 그녀는 저를 위해 휴가를 내었습니다. 단둘이 방에 있기가 어색해서 시장을 가자고 했습니다. 선물도 사주면서 다정한 연인이 된 것처럼 시장바구니도 들고 그녀와 함께 즐거운 쇼핑을 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 대한 애틋함과 고마움이 밀려와 살포시 안아주었습니다. 그녀는 새색시처럼 금세 얼굴이 붉게 물들였고 그런 모습이 더욱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장만해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순간은 마치 신혼부부가 된 것처럼 착각도 해가며 무한히 행복했습니다. 그녀가 부엌에 나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많은 생각과 갈등이 겹쳐왔습니다. 진정 나를 좋아하는 것인지?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 제대도 일 년 가까이 남았고, 그녀의 기대치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제대해도 확실한 직장도 없고 다시 가장의 짐을 짊어져야 했기에 군복을 입었어도 참으로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더이상 순박하기만 한 그녀를 실망시킬 수 없었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런 약속도 하지 못하고 동대구역까지 배웅 나온 그녀에게 따뜻한 말한마디도 제대로 해주지도 못하였습니다. 재회의 기약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하여 박 이병에게 대구가서 조카를 만났다고 하였더니, 얼굴이 하얗게 될 정도로 놀랐습니다." 박 이병, 걱정마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이렇게 말했지만 박 이병은 그래도 믿지 못하는 듯 불안해 했습니다. 절대로 아무 일도 없었고 그냥 조카들을 보고만 왔다고 하여 안심시켰지만, 끝내 믿지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그 후 그녀를 더 이상 실망시켜주지 않기 위하여 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녀에게서도 다시는 편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쯤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군대시절 한때 마음을 나누며 펜팔했던 그녀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다시 그 모습이 아름답게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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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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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흥호(시샵/세종) 작성시간 26.06.06 음~
우리들 나이에 펜팔이란 단어는 누구던 한번쯤은 접해본 단어죠.
친구님을 글을 읽고 난 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왜?'
'두사람 모두 마음에 들지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유를 들자면,
시장에 함께 다녀온 후 마치 신혼부부처럼 점심까지 해먹은 후이고
그녀가 정말 좋았다면 앞으로 남은 군생활 1년을 기다려 줄수 있겠는가?
라고 물어볼수 있었을테고, 질문을 받은 그녀 역시 그에 상응한 대답을
했을거라는 상상을 해봅니다만.ㅎ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한 후에도 서로가 편지를 주고 받지 않았다는
것은 두사람 모두 미래에 대한 불투명에 마음을 돌렸다는 것인지?
암튼,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분명 안타까운 청춘들의 사랑이야기 같습니다.ㅋ
나 역시 전역을 1년 남겨두고 마지막 휴가에서 친구의 여친에게서 소개받은
여인과 1년이 지나 군 전역후 10개월만에 결혼해서 지금까지 40여년을 넘게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습니다만.ㅎ
암튼,
애틋한 사랑이야기, 즐독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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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곤식(서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6 네 시샵님은 성공 하셨네요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참 고지식 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제대하고나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습니다 세명정도 되는 거같아요 이유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다 떠나갔고 상처도 받았지요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살은 거같아요
펜팔 성공! 축하드립니다! 남은 여생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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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순이 작성시간 26.06.06 순정시대의 러브스토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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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인권 (춘천) 작성시간 26.06.07 아 야 아 ~ 픽션같은 논픽션스토리 ~~
이런 과거속의 추억을 깆고사는? 김곤식 친구님 ~ 오늘도 건강하고 편안하게 잼나는 시간보내세요 ^^~ -
답댓글 작성자김곤식(서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9 네 감사드립니다!
양띠들은 저뿐만 아니라 다들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전쟁끝나고 국가적인 숙명을 함께 했습니다 아마 사연없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저는 글로 표현했을 따름입니다 우리들의 노고가 헛되지않아 선진국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감개무량합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