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사진임)
도시의 섬
김 흥 호
승강기를 탔다. 뒤늦게 안으로 들어선 사내아이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예사롭지 않은 일에 나도 얼른 답인사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마주치는
사람마다 말없이 마스크만 매만지는 요즘 서로 간의 인사는 실종된 지 오래였기에
모처럼 아이와의 인사는 너무도 반가웠다.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편리한 점도 많지만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에서 무척
안타깝고 아쉽다.
근래 읽은 책 첫머리에 ‘우리는 모두 섬이다’라는 문장은 이웃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생활상을 단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다.
며칠 전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나절 아내와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를
나설 때면 간혹 주민들도 만나게 되지만 늘 데면데면하다. 산책 다니던 길을 돌아 집
앞에 다다를 무렵 아내가 옆 단지에 사는 지인을 만나기로 했다며 먼저 들어가라고 한다.
한참 후에 들어온 아내는 거실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툭 던져 놓는다. 예쁜 꽃 그림이
그려진 파란색의 조그마한 지갑이다.
파란지갑은 어린아이가 가지고 다닐만한 것으로 보였다. 우리 아파트와 옆 단지 사이
산책길에서 주웠다고 했다.
그냥 놔둘까 하다가 잃어버리고 속상해할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수소문해서 찾아줄
요량으로 가지고 왔단다. 인근 지구대에 신고해 볼까도 했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 포기하였고
관리사무소에 전화하니 아파트 관리 규약상 지갑을 보관할 수 없다고 한다.
참 난감하다.
지갑을 열어보니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오십 원짜리 동전이 한 개 들어있다고 한다.
돈은 천 오십 원이지만 주인이 아이라면 큰돈일 수도 있겠다. 지갑은 겉보기에 예쁘게
치장한 것으로 보아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은 것 같았다.
주인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물건이겠다.
생각해보면 나도 선물 받은 만년필, 장갑, 아끼던 우산 등을 잃어버리고 아까워하며
속상해한 적이 여러 번 있지 않았던가. 물건이든 사람 사이의 정이든 시나브로 들어올 때는
못 느끼다가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아깝고 허망하다.
그러니 돈이 들어있던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안타깝고 속상해할까. 아이라면
자신이 걸어 다녔던 길을 여러 번 오가며 찾았을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꼭 찾아주고 싶었다.
마침 아파트 주민들만 보는 모빌이란 앱이 생각났다. 즉시 습득 사실을 모빌에 올렸다.
글을 본 사람이 연락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도 넣었다.
다음 날 문자가 왔다.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하여 습관적으로 전화기를 들여다보는데
그날따라 낯선 문자가 와 있었다. 열어보니 뜻밖에도 지갑을 잃어버린 옆 단지 아이의 엄마가
보낸 문자였다.
너무도 반가웠다.
딸아이 생일날 선물로 준 것인데 받은 첫날 들뜬 마음으로 들고 나갔다가 길에서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지갑을 찾으러 다녔던 길을 여러 차례 오갔으나 끝내 찾지 못해 낙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연락해주어서 감사하다는 글이었다.
지갑을 전해주기로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 퇴근 후 아내와 함께 약속 장소에 갔다.
귀여운 소녀가 엄마의 손을 잡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지갑을
찾아줘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우리 역시 주인에게 찾아주게 되어 다행이라며 건네주었다.
지갑을 받은 소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손에 들고 온 작은 봉지를 수줍게 내밀었다.
몇 번을 사양하였더니 엄마가 조심스레 말한다. ‘아이의 정성이니, 성의로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우리는 더 이상 거절을 못 하고 받았다.
봉지를 건네주고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모녀는 총총히 단지 안으로 사라졌다.
선물 봉지에는 손수 갈아 만든 커피가 들어있다.
정성이 듬뿍 담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고마움의 뜻일 것이다.
모녀는 따스한 여운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갑자기 아파트의 육중한 철재 출입문이 떠올랐다. 아파트의 철문을 닫는 순간 내 거주지는
고도(高蹈)의 섬이 되고 만다. 여느 때는 아늑한 보금자리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때론 나
스스로 만든 섬에 내가 갇혀 산다는 외로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창문 너머로 싱그러운 가을 숲이 비친다.
그러나 나는 모든 창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가동하고 있다. 이웃 간의 소통도 마찬가지다.
아침 출근길에 승강기에서 만난 소년의 밝은 인사 한마디가 나를 섬에서 탈출할 수 있게
다리를 놓아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일찍 집에 돌아가 소녀의 정성이 깃든 커피를 따뜻하게 타 아내와 함께 나누리라.
더하여 풀꽃 하나 따서 옆에 두고.
(2021년 월간 '수필과 비평' 신인상 당선작)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서석붕 (화성) 작성시간 26.06.19 신인상
당선작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지기친구님 -
답댓글 작성자김흥호(시샵/세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9 졸작을 즐기셨다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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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곤식(서울) 작성시간 26.06.19 네 알에서 깨어난 작품이군요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도 애착이 갑니다
신선한 글 감사히 감상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흥호(시샵/세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9 네~ 졸작을 칭찬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글쓰기에 정진 하겠습니다^^ -
작성자채은영(중구) 작성시간 26.06.20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커피의 향이 여기까지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