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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김씨의 역사

신라김씨 시조부터 원주 김씨까지 분파

작성자김기춘(부사공파)|작성시간10.04.13|조회수898 목록 댓글 0

신라 김씨 시조 김알지 부터 원주 김씨 거공 할아버지 까지  분파 세보도
1세 金閼智김알지←新羅 金氏 始祖 大輔公신라 김씨 시조 대보공
18세金大忠김대충←31대 神文王신문왕의 형제
21세金周元김주원←강릉김씨시조(김대충의 고손자이며36대 惠恭王혜공왕의형제)
23세金珦佰김향백←광주이씨시조(47대憲安王헌안왕의子)
26세金裕김유 ←순천김씨시조(47대憲安王헌안왕의고손자)
26세金令貽김령이 ←영동,영산김씨시조(45대神武王신무왕의네째아들金益光김익광의증손자)
26세金順김순←光광산김씨시조(45대神武王신무왕의세째아들金興光김흥광의증손자)
26세金俊龜김준구 ←연안김씨시조(45대神武王신무왕의두째아들金英光김영광의증손자)
26세金武力김무력←당악김씨시조(46대文聖王문성왕증손자)
28세56대 敬順王金溥(경순왕김부)
29세金鎰김일←경순왕의 큰아들 마의태자 부안,통천김씨시조
29세金湟김황(굉)←경순왕의 두째아들 →30세金雲發김운발(김황의아들)나주김씨시조
29세金鳴鍾김명종←경순왕의 세째아들/계림,강화.낙안,경주김씨의시조
29세金殷設김은설←경순왕의 네째아들/안동,김해,수원김씨시조
29세金錫김석←경순왕의 다섯째아들/의성김씨시조
29세金鍵김건←경순왕의 여섯째아들
29세金鐥김선←경순왕의 일곱섯째아들/언양김씨시조
29세金錘김추 ←경순왕의여덟째아들/선산,삼척,온양,희천,진주김씨시조
29세金德摯김덕지←경순왕의아홉째아들/울산김씨시조
原州金氏  선산김씨 분파 계보도
선산김씨 
1세 金錘김추一善君(일선군) 경순왕의8남 金閼智김알지의29세손  
2세金遷 김천一善伯(일선백) 
3세金奉門김봉문
4세金塾김숙
5세金篪김지
6세金亹然김미연

7세金김주 예부시랑(禮部侍郞)대에 이르러 아들 6형제(8세) 중 첫째 김선공

(金善公)이 병부상서(兵部尙書) ·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으로 일선부원군

(一善府院君)에 봉해졌고 셋째 김거공(金巨公)이 예부상서(禮部尙書) · 원주

군주(原州郡主)로 봉해 오늘날 원주김씨(原州金氏의) 시조가 됐다.

또 다섯째 김후공(金厚公)은 영광김씨(靈光金氏)의 시조가 되는 등 자손이 크게

번창하면서 김씨네는 이때부터 각각 분관하기에 이르렀다.

 

 

 

 

 

 

선산김씨는 두 개의 본관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김선궁(金宣弓)의 일선김씨이고, 다른 하나는 
  김추(金錘)계의 선산김씨로 확실한 구분이 필요하며 원주 김씨는 추계 분파이다.
선산 김씨 1 (善山金氏)  
 1> 시조 : 김선궁[金宣弓]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선산(善山)은 경상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신라 눌지왕 때 일선으로 부르다가 
     경덕왕때 숭선,·병정현 등으로 개칭되었으며, 1413년 지금의 선산으로 개칭되었다. 
     선산김씨(善山金氏)의 시조 김선궁(金宣弓)은 김알지의 30세손이며, 문성왕의 8세손이다. 
     [선산김씨족보]에 의하면 그의 초휘는 김 선(金宣)이었는데,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하려 
     남행하던 중 숭선(선산의 옛지명)에 이르러 모병할 때 그가 함께 종군 할 것을 희망하니 
     태조가 기뻐하며 친히 활을 하사하고 선궁(宣弓)으로 사명(賜名)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그는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 하는데 공을  세우고, 개국벽상공신  
     영문하시중, 삼중대광 에 올랐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본관을 일선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하여 왔으나, 조선 태종 때
     지명이 선산으로 개칭됨에 따라 관향을 선산(善山)으로 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면 시조 선궁의  맏아들 봉술(奉術)이 문하시중(종1품)을 지내고,
     둘째  봉문(奉文)은 삼사우윤에 올라 크게 명성을 날리고 가문을 일으킨  중추적인 기틀을
     다졌으며,  봉문의 아들  흥림(興林) 과  흥술[興述]은  이부판서와 호장을 각각  역임했다. 
     조선조에서는  숙자[叔滋], 종직[宗直] 부자가 유명하다.
     숙자는 선산교수, 개령현감 등을 거쳐  성균관 사예을 역임했고,  아들 종직은 이조, 공조,
     형조참판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특히 학문이 뛰어나  영남 학구의 중심이되었고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일찍이 [조의제문]을 지은바 있는데  이것이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어  그는 부관참시[죽은자의 시체를 다시 참수하여 길거리에 내다놓음]를 당하고
     많은 문집이 불태워 졌으며 제자들은 모두 참화를 입었다.
     선산 김씨 2 (善山金氏)
 1> 시조 : 김추[金錘]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선산(善山)은 경상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신라  눌지왕 때 일선으로 부르다가 

     경덕왕때 숭선 또는 병정현이라 하였으며, 고려 성종때 선주로 고쳤고, 조선 태종때 와

     서  지금의 선산으로 개칭되었다. 

     선산 김씨(善山金氏)는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이자 고려

     왕건의 외손인 김추(金錘)가 고려 때 일선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을 선산으

     로 삼게 되었다. 
 
     한편 김선궁을 시조로 하는 또 하나의  선산김씨가 있어 이 계통은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일선김씨(一善金氏)로 칭해왔으나, 최근에 와서 다시 선산김씨로 환원되었으므로 서로

     본관을 구분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광좌(匡佐)의 아들 6형제가 유명했다.  
     일찍이  박영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한 맏아들 취성(就成)은 김안국,·이언적 의 천거로 
     네 차례나 벼슬에  등용되었으나 모두사퇴했고, 의약(醫藥)에 능통하여 명성을 날렸다.  

     광좌의 다섯째 아들인 취문(就文)은 사성(司成)이 되었으며, 선조가 즉위하자 강원도관

     찰사를 역임하고 대사간에 올랐다.

     특히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 청렴강직하기로 유명했으며, 명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영광김씨는 또한두 개의 본관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김심언으로 고려 중기 문신으로 경순대왕
    의 넷째 아들 대안군 은열의 3세손있으며 , 다른 하나는 김추(金錘)계의 선산 김씨에서 분파한

    (영광 김씨 배몰파라고 불린다.) 시조는이름은 후공 이지만 치공으로 하였다. 원주 김씨의

   시조이신 거공 할아버지 형제분으로  6형제중 거공 할아버지는 3째이시고  다섯째로 동생

   분이시다. 

 

진강김씨(鎭江金氏)  시조 :  김거공(金巨公)
원주김씨와 같이 김 거공 할아버지를 시조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원주김씨와 진강김씨는 동원이파라고 하는데 진강은 강화의 다른 이름이다.
현 강화 김씨와는 확연히 틀리다.

김씨분종보(金氏分宗譜)에 의하면 세원(世元, 부호군(副護軍))을 시조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사적(事蹟)이 없어서 그 세계(世系)를 상고할 수 없으며 본관을 진강(鎭江)이라 하였다.

 
진강김씨에 대한 자료 거의 없는 상태이다.

※참고로 위 내용은 본인이 모은 자료를 정리 한것으로 다소

틀린 부분이 있을 것으로 사료되며  틀린부분이 있으면 여려

총친분들이 지적 하여주시면 수정 보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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