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스크랩] [우루무치-카스 여행 1 ] 여행 또 한번 그 시작점에 서다.

작성자행운|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여행은 본질적으로 휘발적이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설 때 훅 끼쳐오던 낯선 도시의 냄새,

검게 내린 어둠을 가르며 지나가는 기차 창밖으로 무심히 흘러가던 이름 모를 도시들,

그리고 현지인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공기까지.

그 찬란한 순간들은 셔터를 누르는 찰나에도 이미 과거의 저편으로 달아나 버린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지나온 경로를 복기하는 작업이 아니라,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동의 조각들을 ‘문장’이라는 그물로 건져 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력은 영악하면서도 무책임하다.

 

시간이 흐르면 고생스러웠던 기억은 미화되고, 가장 날카롭게 빛나던 감각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종이 위에 옮겨진 문장은 그날의 기온과 습도, 그리고 요동치던 마음의 결을 있는 그대로 박제해둔다.

훗날 빛바랜 수첩을 펼쳤을 때,

나는 다시금 심양 공항의 북적이는 인파 속으로 돌아가고 우루무치의 서늘한 새벽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신다.

버스를 타고 종일 건너던 타클라마칸 사막공로의 지루함과 고산지대에서 느끼던 지독한 두통까지,

여행기는 나만의 '시간 여행 장치'가 되어 멈춰버린 풍경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기록은 나를 위한 일기인 동시에 타인을 향한 조심스러운 초대장이기도 하다.

내가 느낀 경이로움과 깨달음을 문장에 실어 보낼 때,

누군가는 그 글을 이정표 삼아 또 다른 여정을 꿈꾼다.

서먹했던 동행이 하나의 팀이 되어가는 과정을 기록하며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는 마법 같은 순간을 증명한다.

나의 기록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나설 용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대리 만족의 위안이 된다.

무엇보다 여행기를 쓰는 가장 큰 의미는 '돌아온 나'를 확인하는 데 있다.

낯선 땅에서의 위기와 뜻밖의 행운을 활자로 정리하다 보면, 일상에서는 미처 몰랐던 나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여행 내내 휘몰아치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객관적인 문장으로 다듬는 과정에서 나는 한 뼘 더 성장한다.

여행이 '길 위에서의 체험'이라면, 여행기를 쓰는 것은 '사유를 통한 완성'인 셈이다.

결국 여행기를 쓰는 일은 떠나기 전의 나와 돌아온 후의 나 사이에 튼튼한 다리를 놓는 작업이다.

풍경은 사라져도 문장은 남는다.

그 문장들이 모여 나의 인생이라는 지도를 채워갈 때, 비로소 그 여행은 끝나지 않는 영원한 여정이 된다.

 

나는 여행을 세 번 한다고 믿는다. 자료를 모으고 책자를 프린트하여 제본하며 설렘으로 한 번,

일행들과 함께 비행기와 기차에 몸을 싣고 먼 거리를 이동하며 또 한 번.

그리고 이제,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여행의 온기를 문장 속에 가두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아 마지막 세 번째 여행을 시작한다.

풍경은 끝났지만, 나의 문장은 이제 막 다시 출발선을 넘어서고 있다.

 

마실정회동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히말라야여행동호회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