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참 이상하다.
돈이 많은 팀이 이기고, 좋은 선수가 많은 팀이 이기고, 인구가 많은 나라가 이긴다면 우리는 굳이 월드컵을 볼 이유가 없다. 컴퓨터에 선수 몸값과 FIFA 랭킹을 입력하고 결과만 출력하면 된다.
그런데 공은 둥글지 않은가.
대서양 섬나라 카보베르데는 인구 52만 명.
남자 성인만 따지면 10만 명 남짓일 나라다. 그런 나라가 월드컵에 와서 세계 2위 스페인과 비기고, 남미의 자존심 우루과이와도 비겼다.
이게 이변인가.
돌풍인가.
운이 좋은 것인가.
카보베르데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든다.
동네 운동장에서 공 차던 사람들이 갑자기 월드컵에 나타난 느낌이다. 그런데 막상 붙어보니 생각보다 잘한다. 아니, 잘하는 정도가 아니다. 스페인이 당황하고, 우루과이가 고전한다.
마치 그동안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팀이 갑자기 나타난 것 같다.
스페인은 카보베르데를 상대로 골을 넣지 못했다. 우루과이는 리드를 잡고도 승리를 지키지 못했다.
카보베르데를 상대한 뒤 "이변이었다"고 말하면 패배한 팀의 체면은 조금 지켜질지 모른다. 하지만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안다.
카보베르데는 단순히 버틸려고 하지 않았다. 우루과이를 상대로 이길 생각을 했다.
후반전 내내 선수들의 눈빛은 "한번 잡아보자"였다. 그건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다.
물론 카보베르데의 축구 실력은 우연이 아니다.
포르투갈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선수들이 대표팀에 모였다. 감독 부바스타는 화려한 축구 대신 조직력과 희생을 심었다. 아프리카 예선에서는 카메룬을 제치고 조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런 설명을 다 하고 나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40세 골키퍼 보지냐의 얼굴은 볼수록 감동적이다.
스페인전 직후 그는 눈물을 흘렸다. 미국 비자 문제 때문에 어머니가 경기장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평생 꿈꿔온 월드컵 무대를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문제가 해결돼 어머니가 미국으로 날아왔다.
우루과이전에서 아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보지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 표정은 승점 1점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월드컵이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누구는 우승 트로피를 다투고, 누구는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40세에 처음 밟은 월드컵 무대에서 어머니 앞에 서서 행복하게 웃는다.
그래서 나는 어느새 카보베르데를 응원하게 됐다.
그들이 축구를 너무 어렵지 않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강팀을 만나도 겁먹지 않고, 기회가 오면 잡으려고 한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동료들과 기뻐하고, 눈물 흘리고, 가족과 함께 한다.
어쩌면 축구가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모습을, 지금 카보베르데가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