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로님,
이번 작품은 이전에 쓰신 사물시들에 비해 "안경 자국"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사물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좋습니다. 특히 *"무공 훈장처럼 달려 있다"*는 비유는 이 시의 핵심 이미지로 보입니다.
다만 아직 시의 긴장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비평
1. 설명이 앞서는 부분
첫 연입니다.
이미 어른 되어
눈에 눈을 덧대니
세상이 잘보였다.
이 부분은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안경"이라는 물건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눈에 눈을 덧댄다" 정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예를 들면
어른이 되어
눈에 눈을 덧대니
흐리던 것들이 다가왔다
처럼 경험이 드러나면 조금 더 시적이 됩니다.
2. 가장 좋은 부분
타버린 얼굴에는
세월만큼 안경에 눌린 자국이
무공 훈장처럼 달려 있다.
이 연은 살아 있습니다.
"안경 자국"을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인생의 훈장으로 본 시선이 좋습니다.
다만
세월만큼 안경에 눌린 자국이
는 다소 설명적입니다.
오히려
안경이 눌러놓고 간 자국
정도로 구체화하면 힘이 생깁니다.
3. 숫자의 사용
콧잔등에 하나와
양쪽 눈가에 하나 씩,
모두 세 개.
이 부분은 실제로는 맞는 말이지만 시가 잠시 산문이 됩니다.
독자는 이미 세 군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에서는
콧잔등 하나
눈가 둘
정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4. 마지막 연
현재 결말은
검은 얼굴에는
훈장도 안경도 잃는
상실의 아픔만 남아있다.
여기서 "상실의 아픔"이 문제입니다.
시는 앞에서 안경 자국이라는 구체물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추상어로 끝납니다.
그래서 독자가 느낄 여지를 미리 설명해 버립니다.
예를 들면
검게 탄 얼굴에서
안경도 벗겨지고
훈장도 옅어진다
정도로 끝내면 독자가 스스로 상실을 느끼게 됩니다.
1차 퇴고본
안경 자국
어른이 되어
눈에 눈을 덧대니
세상이 한 뼘 가까워졌다.
삼십 년,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는
안경이 눌러놓고 간 자국이
무공 훈장처럼 남아 있다.
콧잔등 하나,
눈가 둘.
세월은 그렇게
얼굴에 셋의 흔적을 새겼다.
어느새 노안이 와
덧댄 눈마저 벗어두니
거울 속 얼굴에서
안경이 먼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았던 훈장도
조금씩 흐려진다.
=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이 시는 사실 "안경"이 아니라 "노년"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퇴고에서는
안경 자국
노안
훈장의 소멸
이 세 가지를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안경은 벗었는데
자국만 남아 있었다.
세월도 그런 것인지
와 같은 방향입니다.
설명은 줄이고, 자국 자체가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작품은 소재 선택이 매우 좋았습니다. 특히 "무공 훈장"이라는 발견은 충분히 시가 될 만한 이미지였습니다. 다음 퇴고에서는 "상실의 아픔" 같은 추상어만 걷어내도 한층 단단한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