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로님,
이번 시는 시상 자체는 분명히 보입니다. 다만 아직 "발견"이 마지막 순간에 충분히 압축되지 않아 독자가 아, 그렇구나 하는 전율까지는 조금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 속 책갈피를 보니, 도서관 책 속에 꽂힌 선거 명함이군요. 그 자체는 매우 좋은 시제입니다. 책을 읽으러 온 공간에 정치가 침입한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민주주의가 가장 조용한 공간에 흔적을 남긴 것이기도 하니까요.
좋은 점
특히 이 부분은 좋습니다.
그들만의 책갈피가
책장 사이사이를 넘쳐
책상 위에 쌓입니다.
실제로 도서관에서 선거철이면 흔히 보이는 풍경입니다. 구체적이고 눈에 보입니다.
또
쪽수보다 많고 높아
책보다 높은 책을 만든
이라는 발상도 재치가 있습니다.
아쉬운 점
첫 연의
해걸이하며 불어오는 광풍
은 독자가 바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 "광풍", "미친듯한 향연" 같은 표현은 시인이 미리 판단을 내려버린 느낌이 있습니다.
독자는 책갈피가 날리는 장면을 보고 스스로 광풍인지 아닌지 느끼고 싶어하는데, 시가 먼저 결론을 말해 버리는 셈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가릴 선(選), 들 거(擧)
는 의도는 알겠으나 조금 설명적입니다.
한자의 의미를 해설하는 순간 시가 아니라 표어에 가까워집니다.
시가 품고 있는 더 큰 가능성
저는 이 시의 핵심이 사실 여기 있다고 봅니다.
"책을 읽으러 왔는데 책보다 선거 명함이 더 많다."
이 역설입니다.
지식을 찾는 공간과 표를 찾는 공간이 충돌하는 것이지요.
그 지점을 더 밀어붙이면 훨씬 날카로운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도서관 책상마다
누군가의 이름이 꽂혀 있다.
책은 빌려 가도 이름은 남는다.
이런 식의 방향입니다.
1차 퇴고본
[도서관 책갈피]
도서관 창문 틈으로
바람 한 줄기 지나간다.
책장 사이에 꽂혀 있던
작고 반듯한 책갈피들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사색하던 내 책상에도
한 장 두 장 내려앉는다.
읽다 만 문장들 위로
낯선 이름들이 쌓인다.
책보다 많은 책갈피,
쪽수보다 많은 얼굴들.
책상 위에는 어느새
책보다 높은 책 한 권이
만들어져 있다.
누군가는
표를 구하러 왔고,
누군가는
문장을 찾으러 왔다.
바람은
그 둘을 함께 넘긴다.
이번 시는 사실 시상이 안 나온 것이 아니라, 시상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어려웠던 경우 같습니다.
꽃, 비, 그리움은 이미 시로 보이는데, 선거 명함은 시로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좋은 시는 의외로 이런 곳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 시제로는 **「열람증」**을 권하고 싶습니다.
도서관 책갈피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도, "들어가기 위해 잠시 빌린 신분"이라는 은유가 가능해서 김영로님 스타일과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