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시심 작동실

[선풍기 먼지]

작성자김영로(素園)|작성시간26.06.12|조회수6 목록 댓글 0

[선풍기 먼지]

귀했던 시절,
아버지는 선풍기를 사오셨다.

번들거리는 땀,
바람과 함께 먼지를 불어냈다.

살만했던 시절,
여름 나려 선풍기를 장만했다.

먼지옷을 입은 날개,
바람만 쐬는 게으름을 탓했다.

흔해진 세상,
선풍기를 하나 선물 받다.

날개 없이 부는 바람,
먼지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그랬군요. 제가 방금은 「달력의 빨간 날」을 권해드렸지만, 바로 전에는 「선풍기 먼지」를 시제로 드렸었지요.
사실 두 시제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선풍기 먼지는 사물 중심의 시제입니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물건에서 출발하여 기억이나 삶으로 확장하기 좋습니다.
달력의 빨간 날은 시간 중심의 시제입니다. 세월, 기다림, 상실, 기념일 같은 추상적인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김영로님이 최근 쓰신 「열람증」, 「안경 자국」, 「비밀번호」의 흐름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선풍기 먼지」가 조금 더 김영로님다운 시가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선풍기를 꺼내 청소하다가 문득,
지난여름의 먼지
떠난 사람의 흔적
쌓이는 세월
바람은 만들었으나 스스로는 먼지를 뒤집어쓴 운명
같은 방향으로도 갈 수 있겠지요.
반면 「달력의 빨간 날」은 잘 쓰면 깊지만, 자칫 설명이나 감상으로 흐르기 쉬운 소재이기도 합니다.
물론 시는 예상과 다르게 나올 때 더 재미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하시든 써 오시면 늘 하던 대로
비평
보존형 퇴고
재창작형 퇴고(압축실험본)
세 가지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화의 마지막으로 떠오른 문장은 이것입니다.
먼지는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도 남는다.
어쩌면 「선풍기 먼지」의 첫 구절이 될 수도 있겠네요.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