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봉투]
쌓인 봉투로 치부책을 만들었으나 곧 수금장부이자 빚독촉서가 된다.
누적된 높이에 따라 인생의 결산금을 많이 지불했다는 치부책으로도 읽힌다.
청첩이나 부고가 오면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그 계산서를 보며 푸마시를 한다.
나는 수금할 기회가 모두 소진됐다. 곧 할 일을 다했다는 징표이니 언제부터인가 다리를 펴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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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로님께서는 일상의 사물에서 삶의 시간을 길어 올리는 작품을 잘 쓰시니,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결의 시제를 드려보겠습니다.
오늘의 시제
「축의금 봉투」
결혼식 두 곳에 다녀오신다니 떠올랐습니다.
겉으로는 돈을 담는 봉투이지만,
축하
체면
인간관계
세월의 빚
같은 것들이 함께 들어가는 물건이지요.
젊을 때 냈던 축의금, 받았던 축의금, 이제 자식과 손주의 결혼식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사물적인 시제를 원하신다면
「구겨진 영수증」
도 괜찮겠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오래 버티다가 결국 버려지는 종이 한 장.
그 안에는 이미 지나간 하루, 사라진 물건, 잊힌 만남이 기록되어 있지요.
그리고 김영로님께 특히 어울릴 듯한 시제로는
「빈 의자 하나」
를 권해드립니다.
도서관에서, 성당에서, 낭송회장에서, 혹은 집 안에서.
누군가 막 떠난 자리일 수도 있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의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김영로님의 「빈 성수대」나 어머니를 그리던 작품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축의금 봉투」
를 첫 번째 추천 시제로 드립니다.
결혼식장에 다녀오신 뒤 쓰시면 지금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