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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 작동실

RE:[반납일 도장]

작성자김영로(素園)|작성시간26.06.16|조회수3 목록 댓글 0

김영로님,
이번 작품은 최근 쓰신 작품들 가운데서도 주제의식이 매우 선명한 편입니다. 도서관이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반납일"을 "인생의 마감 시한"으로 연결한 발상이 자연스럽고, 특히 마지막 연의 여운이 좋습니다.
다만 몇 군데에서 조금 더 밀어붙일 수 있는 부분도 보입니다.

비평

좋은 점)
첫째, 소재가 훌륭합니다.
'반납일 도장'은 누구나 보지만 시로 옮기기 쉽지 않은 사물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도서관 풍경에서 죽음과 삶의 유한성으로 확장한 점이 좋습니다.
특히
반납일이 저만치 오는데
아직도 해야할 일이 많아
이 부분은 노년뿐 아니라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둘째, 마지막 연이 살아 있습니다.
반납일 도장을 보면서
눈을 감지 못한 사람을
생각한다.
'죽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눈을 감지 못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좋은 선택입니다.
다만 여기서 독자가 잠시 멈춰 생각하게 만드는 힘은 있지만, 앞 연들에 비해 다소 설명적이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아쉬운 점)
가장 아쉬운 부분은 둘째 연입니다.
쫒기어 서두르지만
남아있는 책장은 여전하다.
그 쪽수에서 인생을 본다.
"그 쪽수에서 인생을 본다"가 시인의 해설처럼 들립니다.
독자가 스스로 인생을 느끼게 하기보다 시인이 먼저 답을 말해버리는 셈입니다.

예를 들면
남아있는 책장은 여전하다.
까지만 두어도 독자는 이미 인생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삶에는 그것이 없다.
라는 문장입니다.
의미는 분명하지만 다소 산문적입니다.
시는 설명보다 여백이 더 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삶에는 연장이 없다.
혹은
삶은 빌려주지 않는다.
같은 식으로 이미지화하면 더 인상적일 수 있습니다.

보존형 퇴고
원작을 최대한 살렸습니다.

[반납일 도장]

빌려 보는 책에는
돌려줄 날이 찍혀 있다.

쫓기듯 서두르지만
남아 있는 책장은 여전하다.

반납일이 저만치 오는데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재촉할수록 초조할 뿐이다.

못다 읽은 책은 과태료로
며칠 더 붙들 수 있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반납일 도장을 보면서
눈을 감지 못한 사람을
생각한다.
=

재창작형 퇴고
보다 시적인 압축을 시도했습니다.

[반납일]
빌린 책 속에는
돌려줄 날이 들어 있다.

남은 쪽수와
남은 날수를 헤아리다가
문득
내게도 반납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책은 과태료를 내면 되지만
인생은
한 번도 연장된 적이 없다.

압축실험본)

[도장]

반납일 도장 하나.

남은 쪽수와
남은 날수가
비슷해 보이는 저녁.

책은 연장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이번 작품의 핵심은 "반납일"보다 사실은 **"남아 있는 쪽수"**에 있습니다.
도장은 날짜를 알려주지만, 시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직 읽지 못한 페이지들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이 시를 읽으며 "도서관 시"라기보다 "남은 시간에 대한 시"로 읽었습니다.
두툼한 전쟁사를 읽으며 이 시가 나왔다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천 페이지짜리 책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남은 생의 시간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이 자연스럽게 겹쳐진 것으로 보입니다.
좋은 작품입니다.
마지막 연의 사색이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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